[줌인] PC 논란 피하려다 정치 갈등 중심에 선 디즈니

유병훈 기자 2022. 4. 1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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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간 현실 속의 갈등에서 비껴왔던 디즈니가 정치 사회적 논쟁에 휘말렸다. 다양성과 평등 등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 가치를 작품과 회사경영에 적극적으로 투영해 온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디즈니의 새 영화 '인어공주'에 인어공주 역으로 출연하게 될 헤일리 베일리 /디즈니 트위터 캡처

뉴욕타임즈(NYT)는 17일(현지 시각) ‘꿈과 동화 속의 디즈니가 현실과 마주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추악한 현실 세계가 마법의 왕국에 스며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1923년 창사 이후 ‘현실의 정치·문화적 갈등을 열심히 피해’ 미국 문화 그 자체를 상징하던 디즈니였지만,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양대 정당 모두로부터 공격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NYT는 디즈니가 스스로 문화적 논쟁에 뛰어든 사례를 소개했다.

먼저 지난여름에는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에서 나오는 안내방송 문구인 ‘신사, 숙녀, 소년, 소녀 여러분’을 젠더(Gender·사회문화적 의미의 성별) 중립적으로 바꾸겠다며 ‘모든 꿈 꾸는 분들’로 바꿨다. 이같은 변화를 두고 미국 내 진보 진영은 환영했지만 극우 진영으로부터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또 유치원∼초등학교 3학년생에게 학교에서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주제로 한 수업·토론을 금지하도록 한 플로리다주의 동성애 교육 금지법이 논란이 되자, 디즈니는 처음에 침묵하다가 회사 안팎의 비판이 쏟아진 후 플로리다주에 대한 정치자금 기부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플로리다주와 미국 보수진영에서 디즈니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플로리다 주의회는 디즈니월드에게 지방정부에 준하는 권한을 줬던 법률을 55년 만에 폐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2019년 시작한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 플러스’의 준비 과정에서는 PC적 관점에서 디즈니 판권의 작품들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즈니 내부의 제보자에 따르면, 인어공주에 나오는 마녀를 어두운 색상으로 표현한 것이 인종 차별 소지가 있을 수 있고 피터팬의 후크 선장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는 내부 분석이 나왔다.

이에 디즈니 사의 한 임원은 “PC 코드를 통해 작품에 접근하는 것이 창의성을 억누를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고 NYT는 전했다.

디즈니의 PC 행보가 창사 초기부터 내려왔던 전통은 아니었다. NYT는 창립자 월트 디즈니가 노동조합에 반대하면서 디즈니 테마파크의 미국 거리(Main street USA)에서 나타나듯 애국심을 강조했고, 크리스마스 때 성경 구절을 읽는 등 보수주의자였다고 했다.

디즈니의 ‘변신’은 지난 2005∼2020년 재임한 로버트 아이거 전 CEO가 배우 캐스팅과 서사에서 다양성과 평등 등을 강조하면서 본격화했다. 아이거는 정치적 논쟁에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으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사회 운동의 일환으로 이해했다. 아이거 전 CEO 지휘 아래의 작품들은 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디즈니를 정치 사회적인 논쟁으로 끌어들였다.

아이거 전 CEO의 뒤를 이은 밥 체이펙 CEO는 정치적인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달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다양성이 담긴 우리의 이야기는 바로 기업으로서 우리의 선언”이라며 “그리고 그것은 어떤 트윗이나 로비 활동보다 더욱더 강력하다”고 밝혔다.

유아용 애니메이션 ‘머펫 베이비즈’에서 주인공들이 통상적인 남녀 복장을 뒤바꿔 입은 에피소드는 극우 진영으로부터 “어린이들에게 트렌스젠더 의제를 밀어붙인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면 디즈니플러스의 드라마 ‘로키’에서는 성 소수자에 대한 표현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갔다는 이유로 성 소수자들이 항의했다.

디즈니 주주총회에서도 체이펙 CEO를 두고 양쪽 모두에서 공격이 이어졌다. 체이펙 CEO는 주주들에게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어떤 입장을 정하는 것은 마치 바늘을 꽂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했다.

NYT는 이같은 현상을 두고 “디즈니가 누구의 기분도 상하게 않게 하려다 모든 사람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디즈니 스튜디오 임원 출신인 남가주 대학교의 마틴 캐플런 교수는 “디즈니 브랜드의 임무는 항상 가족 고객을 기분 상하게 하거나 혼란스럽게 할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오늘날에는 모두들 너무 분열돼있고 격앙해있어 디즈니조차도 단합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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