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구해준 아저씨, 엄마 망친 마약상이었다..아이는 그를 손절했을까 [씨네프레소]

박창영 2022. 4. 1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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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30] 영화 '문라이트'

앞으로 더 큰 주가 하락을 예상해 손해를 감수하고 주식을 판다는 '손절(손절매)'은 인간관계에서 절교를 지칭하는 단어로 의미가 확대됐다. 가치 있는 주식이라면 절대 보여주지 않았을 가격 흐름을 나타낸 종목을 계좌에서 신속히 잘라내듯, 신뢰가 있는 친구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을 보여준 인간을 하루빨리 잘라낼 때 손절한다는 표현을 쓴다.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몇 가지 확실한 기준만 갖춘다면 투자에서 손절은 경제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주식 투자에서처럼 명확한 원칙을 세워 신속하게 손절해나간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는 샤이론(왼쪽)은 아버지처럼 자신을 보살펴주는 후안에게 위로받는다.<사진 제공=A24>
성소수자·흑인·빈민인 주인공과 그를 친아들처럼 사랑해준 아저씨

'문라이트'(2016)는 미국 빈민촌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 흑인 주인공의 성장기를 통해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사유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주인공 샤이론의 인생을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의 세 가지 챕터로 나눠 그가 주변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는지 따라간다. 그리고 엄마, 친구, 아저씨 등 그의 곁에 있었던 사람들이 샤이론을 사랑하면서, 또 어떻게 아프게 했는지 살펴본다. 세상 앞에 나서기 부끄러워 늘 뒤로 숨던 주인공은 소중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남긴 상처를 자양분 삼아 커나가며 주변인을 돌볼 수 있는 어른이 된다.
영화는 감각적인 영상으로 샤이론의 일상을 훑는다. `문라이트`를 연출한 배리 젠킨스는 왕가위 감독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사진 제공=A24>
영화는 소년 샤이론을 토끼몰이하듯 쫓는 또래 집단의 뒤를 따라가며 시작된다. 왜소하단 이유로 '리틀'이라고 불리는 샤이론이 그들을 피해 숨어들어간 곳은 그 동네에서 큰 비즈니스를 하는 후안이 관리하는 공간이다. 소년이 굳게 걸어잠근 문을 후안이 열어 빛을 들게 하는 장면은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지 암시한다. 학교에선 괴롭힘당하고, 집에선 엄마에게 방치되던 샤이론은 후안에게서 사랑을 느낀다. 특히 후안이 그에게 수영을 가르쳐줄 때, 샤이론은 상대를 의심하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관계에서의 안정감을 경험한다. 그건 친아버지에게선 받지 못했던 것이다.
후안(오른쪽)은 샤이론에게 "어떤 사람이 될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라고 알려준다.<사진 제공=A24>
섬세한 배려로 외톨이 주인공을 지지해준 친구

동네 친구 케빈은 그를 외톨이로 만들지 않는 또 다른 버팀목이다. 또래들끼리 공을 차다 은근히 샤이론을 괴롭힐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될 때, 케빈은 장난스러운 태도로 자신에게 시선을 돌린다. 부끄러움 많은 샤이론에게 그것은 큰 배려로 다가온다. "샤이론을 가만히 둬"라고 하면 샤이론에게 주의가 집중되지만, 케빈은 자신이 관심의 중심이 됨으로써 샤이론에게 몰린 시선을 걷어 내주는 것이다.
케빈(왼쪽)의 배려는 세심하다. 그는 티나지 않는 방식으로 샤이론을 돕는다.<사진 제공=A24>
반면 모친은 그에게 위로가 되지 못한다. 약에 절어 있는 모습으로 그에게 고함을 친다. 남자를 불러들여 집을 엉망으로 만든다. 정리하는 것은 항상 샤이론의 몫이다. 그렇기에 샤이론은 집에 있을 때면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던 후안과 그의 여자친구가 생각나고, 학교에서 폭력적인 동급생에게 둘러싸여 있을 땐 어디선가 케빈이 나타나진 않을까 기다리게 된다.
모친(왼쪽)은 약에 절은 모습으로 자주 그에게 고함을 친다.<사진 제공=A24>
날 구원해준 아저씨, 우리 엄마 망친 마약상이었네

그러나 인생은 샤이론에게 느닷없이 그들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에게 기둥이 돼주던 친구들도 실제론 나약한 인간이었을 뿐이란 사실이다. 어린 샤이론이 알게 되는 것은 그를 아들처럼 아껴주던 후안이 사실 엄마에게 약을 팔던 마약상이었다는 것이다. 엄마가 약에 취해 샤이론을 내쫓을 때, 후안은 언제든 그에게 방 한 칸을 내줬지만, 애초 그가 엄마에게 약을 팔지 않았더라면 샤이론이 집 밖으로 나와야 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샤이론은 `키다리 아저씨`처럼 늘 자신을 챙겨주던 후안(오른쪽)이 사실 엄마에게 약을 팔던 마약상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사진 제공=A24>
또 케빈은 결정적인 순간 그를 밀친다. 케빈은 학교에서 모두가 두려워하는 남학생과 내기를 하다가 샤이론을 때려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케빈은 샤이론과 달리 학교에서 누구와도 잘 어울리며 원만한 교우 관계를 유지했지만, 비행 청소년 패거리와 맞설 만큼 강하진 못했다. 케빈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목적으로 한 대 때리는 시늉만 하려 했으나 그것은 샤이론의 영혼을 할퀴기에 충분했고, 샤이론은 패거리의 우두머리 격인 아이를 의자로 내리찍어 상황을 종결시킨다. 나약했던 샤이론은 졸지에 소년원에 끌려간다.
비행 청소년 무리는 샤이론을 콕 집어 괴롭힌다. 그러나 다른 친구들이라고 해서 이 패거리가 두렵지 않은 건 아니다. 이들의 눈에 띄어 샤이론과 같은 신세가 되는 것을 무서워한다. 케빈 역시 그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샤이론에게 주먹을 날린다. <사진 제공=A24>
"강해지지 않으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없다"

3장 구성으로 이뤄진 이 영화의 각 챕터 제목은 모두 주인공의 이름이다. 1장 '리틀'은 그를 괴롭히던 이들이 붙인 별명, 2장 '샤이론'은 그의 본명, 3장 '블랙'은 케빈이 그를 불러준 애칭이다. 2장에서 3장으로 넘어가며 주인공은 앞선 챕터에서 없었던 강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악몽을 꾼 이후 눈물을 흘리는 대신 곧바로 운동을 하며 몸을 단련한다. 직장 후배가 어디 가서 무시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더 혹독하게 교육한다. 근육질의 샤이론은 뒷골목 세계에서 자기 영역을 구축하고 살아간다.
영화는 `리틀` `샤이론` `블랙`의 3장 구성으로 이뤄져 있다.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연기한 세 배우의 얼굴은 각기 다르면서도 묘하게 닮아 있다.<사진 제공=A24>
그건 샤이론이 성장 과정에 깨달은 한 가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바로 착하기만 해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의 엄마는 속으론 아들을 많이 사랑했음에도 정신이 약해서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 케빈 또한 샤이론을 사랑했지만, 충분히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친구를 배신했다. 샤이론은 가족과 친구가 필요로 할 때 적절한 도움을 주기 위해선 자신이 강해져야 한다고 마음에 새기게 됐다. 이제 그는 비록 떳떳하지 못한 직업을 갖고 있을지언정, 주변인을 보호할 수 있다.
나이가 든 샤이론은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줬던 이들을 이해한다. 그들 역시 나약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샤이론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늘 자신을 단련한다.<사진 제공=A24>
부족한 사람이었을지언정 모두 내게 필요한 사랑이었다

샤이론이 깨달은 건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유년기에 자신에게 사랑을 주지 못한 엄마, 그리고 청소년기에 자신을 내친 친구 케빈을 차례로 찾는다. 그리고 두 사람이 과거 자신에게 준 상처와 상관없이 그들을 보듬는다. 비록 부족한 사람이었을지언정 모두 그가 특정한 순간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해준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후안처럼 뒷골목에서 생계를 꾸리게 된 샤이론은 이제 후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을 것이다. 온갖 윤리적인 인간들이 샤이론의 고통을 외면할 때, 윤리적이지 못한 직업을 갖고 있었던 후안은 자신을 살게 해준 것이다.
샤이론(왼쪽)은 자신을 중요한 순간 배신했던 케빈을 찾아간다. 그는 자기만큼이나 케빈도 나약했단 사실을 알기에 이제 친구를 품을 수 있다.<사진 제공=A24>
후안의 어린 시절, 한 할머니가 바닷가에서 그에게 해줬단 이야기는 이 영화의 중요한 테마를 형성한다. "달빛 속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이지. 너도 파랗구나." 조금 어두운 곳에서 보면 다들 푸르게 보이듯이, 조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보면 인생은 대부분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조금만 관대한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면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손절을 고민하기 전에 말이다.
`문라이트` 포스터.<사진 제공=A24>
장르: 드라마
감독: 배리 젠킨스
출연: 알렉스 R 히버트, 애슈턴 샌더스, 트리반테이 로즈, 마허셜라 알리, 나오미 해리스
평점: 왓챠피디아(3.8/5.0), 로튼토마토 토마토지수(98%), 팝콘지수(79%)
※2022년 4월 15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 왓챠, 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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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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