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 디지털 일기장은 지속가능한가?[인스피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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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싸이월드가 웹서비스를 종료한지 약 2년반만에 모바일 버전으로 돌아왔습니다. 1년쯤 전 복원 소식이 있을 때도 꽤나 떠들썩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이번에는 진짜 모바일로 옛날의 싸이월드 추억을 이어갈 수 있게 되어 한층 이슈가 되는 듯합니다. 화려한 ‘컴백’ 소식에 주식 시장도 덩달아 들썩입니다.
▶[관련기사]‘추억의 SNS’ 싸이월드 2년6개월만에 서비스 재개
그런데 저는 이 소식 옆에 쭈그리고 앉아 다른 방향으로 한번 해찰해보고 싶었습니다.
재개장이 눈길을 끈다는 것은 뒤집어 생각해보면, 과거 서비스가 사라졌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영영 우리의 사이버 ‘미니홈’을 찾을 수 없었을지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흑역사든 뭐든 그 시기 나의 ‘역사’가 영원한 어둠 속으로 사라질 수 있었다는 거죠. 실제로 과거 프리챌, 미투데이 등 서비스들이 종료할 때마다 기존 이용자들의 항의가 이슈가 되곤 했고요. 2020년 6월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누구에게는 사진첩, 누구에게는 일기장, 누구에게는 자녀 성장앨범”이라며 싸이월드의 데이터를 복구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청와대청원]미니홈피~ 싸이월드 추억소환~ 심폐소생~ 부탁드려요!!!!!!!
우리는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에도 25억기가바이트의 ‘어마어마한’ 정보가 생산된다고 합니다. 이 숫자는 10년전에도 그랬듯 똑같이 우리를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질문을 바꾸어 ‘10년 전에 생산된 정보 중 지금까지 정보가 얼마나 남아있는가?’라고 생각해봤을 때 과연 우리 시대는 ‘정보의 홍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종이로 된 일기장을 사려면 동전을 지불해야 하지만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건 ‘공짜’이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잊곤 합니다. 디지털 데이터도 엄연히 생산, 저장, 관리 비용이 들어가며, 대부분 이것이 ‘공짜’가 될 수 있는 건 플랫폼 기업의 유지 비용이 수익보다 적을 때일 뿐이라는 사실을요.
오늘 레터에서는 애비 스미스 럼지의 <기억이 사라지는 시대> 등을 지팡이 삼아 디지털 기록과 아카이브에 대해, 기업의 시점이 아닌 김스피나 연구자님 개인의 시점으로 해찰해보려고 합니다.
■데이터의 홍수인가?
인터넷엔 정보가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어떤 정보를 ‘오래’ 그리고 ‘안전하게’ 보존하는 데는 창고와 마찬가지로 각별한 관리, 유지 비용이 필요합니다.
디지털 문헌학자 애비 스미스 럼지는 <기억이 사라지는 시대>에서 디지털 정보를 ‘보존’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통상 디지털 데이터 관련한 책들이 대부분 자산으로서의 ‘빅데이터’ ‘개인정보’ ‘데이터 활용’ 등에 대해 다루고 있는 반면, 이 책은 디지털 정보의 보존 및 아카이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제 눈길을 사로잡았던 책입니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시대에 더는 못먹겠다고 배를 두드리지만 저자는 되레 ‘정보를 생산, 관리해오던 4만년 역사’ 가운데 현재가 가장 큰 위기 상황이라고 주장합니다. 흔히 디지털 정보의 생산이 ‘공짜’(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보존’의 중요성을 잊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어떤 정보가 중요한지 사회적으로 논의한 뒤 이를 안전하게 보존하려는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너무 많은 노이즈가 생겨나는 반면, 너무 많은 중요한 자료들은 맥락을 잃고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세계가 넘쳐나는 정보로 과부하에 걸렸다고 우리가 주관적으로 경험할지 몰라도, 미래에도 이 디지털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보장하는 기억 체계를 세우지 않는 한 집단 기억은 모두 잠재적으로 위험에 처해 있다. -에비 스미스 럼지, <기억이 사라지는 시대>(이하 동일)
조금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가 블로그 글들 사이에 너무나 많은 ‘복붙’ 및 광고 정보에 시달리곤 하는 것을 떠올리면 금세 이해가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초록창에 ‘다이어트’나 ‘신당동 맛집’을 검색해보면 거의 대부분이 광고 정보들일 것입니다. 그중 정작 정말 중요하고 신뢰할만한 정보는 얼마나 될까요? 아니 과연 그런 정보가 있기는 할까요?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할 때, 우리는 과연 ‘풍요로운 정보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반면 정말 개인에게 소중한 데이터는 어느샌가 훌쩍 사라져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앞서 머리말에서 예로 들었던 싸이월드 미니홈이 있겠고요. 개인이 관리 비용을 내지 못할 때, 혹은 플랫폼 운영사가 돈을 충분히 벌지 못할 때 개인의 데이터는 언제든 감쪽같이 사라져버릴 수 있는 것이죠.
우리 각자는 일생에 걸쳐 우리자신만의 도서관을 짓고 온갖 정보와 지식, 음악, 우리가 결코 결별할 수 없는 예술의 컬렉션을 만든다. 그 컬렉션의 형태가 무엇이든, 그것이 어디 저장되든, 종이거나 컴퓨터칩이거나 서가이거나, 클라우드이거나 우리는 그것을 우리가 바라는 대로 쓰고 통제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 말한다. 당황스럽고 두렵게도 우리는 온라인에서 개인적인 공간이 침략당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일단 온라인에 들어가면 우리 자신의 콘텐츠라고 하는 것을 통제하기가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지 알아가는 중이다.
‘디지털 세대’는 과거 추억의 상당 부분을 가상 공간의 것으로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추억들은 상당부분 ‘유통기한’이 짧기에 현재는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저는 옛날 학교에서 직접 만든 ‘김스피 월드(가명)’ 홈페이지가 떠올랐습니다. 실기 수업 과제였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사진 등으로 직접 개인 홈페이지를 꾸미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과제긴 했지만 꽤나 정성들여 꾸몄습니다. 좋아하는 배경 음악이나 공들여 만든 움짤(gif) 아이콘도 넣고, 예쁜 자동차나 우주, 블랙홀 사진이나 직접 쓴 에세이 등을 실었습니다. 당연히 이제 와서 홈페이지 주소가 기억날리도 없고, 알아도 남아있을리가 없습니다(김스피 월드를 철거당하지 않기 위해선 도메인 유지비를 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몇년 전엔 10년 넘게 틈틈이 운영해오던 개인 블로그의 배경음악 플레이리스트가 서비스 종료를 맞으며 고스란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음악을 사느라 들인 돈은 둘째치고 그 시절 조금씩 돈을 모아 직접 가장 좋아하는 노래들로 엄선한 음악 목록이 사라져버렸지만 어디에도 하소연을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무료로 얼마든 가상 저장 드라이브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구글 드라이브 등은 몇년간 접속하지 않았을 경우 데이터가 삭제된다는 약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요.
그런데 한편 만약 내가 중학교 졸업앨범을 가지고 있는데 앨범 맨 뒷면에 깨알같이 ‘3년 동안 앨범을 열어보지 않을 경우 혹은 사진촬영 업체가 파산했을 경우 너의 졸업 사진은 모두 사라짐’이라고 쓰여있다면 꽤 황당한 일일 것입니다.
디지털 세대에게 있어 이런 사라져버린 ‘사소한 조각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만약 기록이 한 사람을 정의한다면 디지털 세대의 기억엔 검은 구멍이 뻥뻥 뚫려있을 겁니다. 그리고 상당 부분은 구멍의 존재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채 영영 잊혀지고 말겠죠.
■취약한 데이터들 : 데이터의 물성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는 2012년 루브르박물관 장서관 2층 난간에서 <장미의 이름> 종이책과 전자책 기기를 함께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당연히 기계는 산산조각이 났고, 책은 (모서리가 조금 구겨졌을진 모르겠지만) 멀쩡했죠. 이 실험의 의도는 명확했습니다. 우리가 영원할거라 생각하는 디지털 데이터쪽이 사실은 종이책에 비해 훨씬 취약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데이터도 결국은 물성에 의존한다는 사실이죠.
위에선 ‘데이터’ 자체의 취약성에 대해 둘러봤다면, 여기선 데이터의 ‘그릇’(물성)에 대해 한번 해찰해볼까합니다. 데이터 자체가 ‘날아가버리기’ 쉬운 것과 별개로, 데이터를 담는 그릇 역시 꽤 위태위태한데요. ‘데이터 판독기’와 ‘연료’라는 두가지 차원에섭니다.
왠지 알쏭달쏭해보이지만, 요는 우리가 아무리 간편하게 폰카를 수천장 찍어도 폰이 부서지거나 혹은 폰을 충전할 수 없으면 말짱 헛것이라는 얘깁니다. 아래에서 조금 더 자세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먼저 데이터 판독기의 차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쉽게 말해, 아무리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읽어낼 기계, 기술이 사라지면 기존의 데이터가 모두‘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예로 2013년엔 전화기를 만든 그레이엄 벨의 목소리 파일을 무려 128년만에 재생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간 벨의 목소리를 담은 저장 매체가 있었지만 너무 취약해서 섣불리 재생을 시도했다가는 데이터 자체가 깨져버릴 위험 때문에 못듣고 있었는데요. 레이저를 활용한 섬세한 재생 기술이 개발되면서 약 1세기 후에야 그의 육성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 이 판독 기술이 없었다면 그의 육성은 영영 역사의 어둠 속으로 묻혔겠죠.
▶[영상]그레이엄 벨 128년만의 목소리 복원
우리 주변에서도 많은 예시를 금방 떠올릴 수 있습니다. 팀장님이 HWP 파일을 보냈는데 제 컴퓨터가 한글 파일을 열 수 없다면, 수십년 전 구동 게임 파일을 가지고 있는데 별도의 에뮬레이터(지원되지 않는 소프트웨어 등을 구동하기 위한 프로그램) 등이 없다면, 혹은 옛날돌잔치 비디오 테잎을 소중히 가지고 있더라도 비디오 재생기가 없으면 이를 따로 파일로 추출하지 않는이상 재생이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런 부분에 신경써야 하는 이유는, 데이터가 데이터 생산 등에 있어 여러모로 종이책에 비해 효율적이긴 하지만 그만큼 기계 의존도가 높고, 이 때문에 한순간의 변수로 인해 모든 것들이 유실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에코는 생전에 종이책을 전자책이 대체할 수 없는 독자적인 발명품이라고 주장해오기도 했습니다. 가성비, 안전성이 디지털 기기에 비해 종이책 쪽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었죠.
둘째로 ‘연료’의 문제입니다. ‘판독기’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아무리 최첨단의 정보라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데이터 센터 유지에 들어가는 연료가 갑자기 사라지면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흔히 극한 재난상황의 서바이벌, SF 영화에서 구조 키트가 대부분 전기나 건전지를 사용하는 복잡한 기계가 아니라, 태엽이나 동력 에너지를 활용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꼭 지구와 전신주가 함께 빵 터져버린 아마겟돈 같은 상황을 상상하진 않더라도, 만약 당장 연료비가 높아지면, 기업은 유지비용을 높이고 중요도를 기준으로 ‘어떤 데이터를 살릴지’ 우선 순위에 따라 취사선택을 할 것입니다. 개인의 ‘사사로운’ 정보들은 저장하는 값이 높아지기 때문에 사라질 것이고, 돈이 되지 않는 정보들의 주기는 더 짧아질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문득 저는 최근 ‘친환경’을 위해 옛날 메일을 삭제하자는 운동이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이 주장은 그 아래 한가지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개인의 데이터는 공중에 무료로 떠도는 먼지같은 것이 아니라 데이터센터를 젖줄로 하고 있으며, 데이터센터는 실제로 (환경이든 돈이든) 막대한 비용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메일 삭제로 지구환경을 보호한다고?!
■데이터 주권을 ‘저장권’ 차원으로 비틀어 보기
이상의 해찰을 통해 제가 주목하고 싶었던 핵심 메시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기억이 도구에 의해 환기된다고 할 때, 50년 뒤 우리는 어떤 기억들을 ‘실제로’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
기억은 애매하고 취약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선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마들렌 과자라는 방아쇠가 필요했듯 먼 훗날 기억을 되살려내는 데도 기록이나 물건이 필요합니다. 낡은 물건들은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해주는 한 골동품이 아닌 사람의 연장된 기억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엔 그런 것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제가 읽어낸 <기억이 사라지는 시대>의 핵심 결론은 ‘데이터 주권’을 정보의 저장-유지-관리 차원에서 보자는 것입니다.
실제 국내 데이터 관련 책들은 거의 모든 책들이 데이터를 ‘자산’ ‘비용’의 차원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데이터 오너십 관련된 이야기들의 경우에도 대부분 ‘자산(데이터 프라이버시, 빅데이터, 데이터 저작권)’으로서의 권리를 강조하는 것들이었죠. 실제 정보통신법 29조에선 플랫폼 서비스가 종료될 경우 지체없이 개인정보를 ‘삭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 개인 정보의 보존 및 ‘저장권’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물론 프라이버시권 등도 굉장히 중요한 이슈지만, 저는 저장이 유지될 권리, 필요한 데이터에 언제든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애비 스미스 럼지는 만약 사적 기업, 플랫폼에만 인류의 기억을 선별해 관리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맡긴다면 어떤 정보가 공익에 중요한 것인지, 어떤 정보를 유지시킬 것인지 등의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때문에 저자는 디지털 아카이브를 책임있게 맥락화하고 유지, 관리하는 기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요. 특히 ‘디지털 리터러시’와 시민권을 데이터 저장의 문제와 연결한 후반부의 한 대목은 주목할만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웹에 개설된 결혼식 사이트는 신혼여행보다는 간신히 더 오래가겠지만, 확실히 50년 뒤에 자녀와 손주들과 같이 볼 정도까지 남아있지는 못할 것이다[...]하드드라이브에 들어있는 문서들은 10년 후면 해독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우리는 페이스북페이지나 링크드인 프로필을 보면서 우리만의 개인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들은 기업의 자산이기도 하다. 기억을 기록하는 근본적인 목적, 즉 우리가 지구에 머무는 짧은 시간보다 기억이 더 오래 가게 하려는 목적은 우리가 자신의 데이터 관리자가 되지 않는 한 덧없는 디지털 세계 속에서 유실되고 말 것이다. 일생에 걸쳐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능력은 디지털 리터러시와 시민권의 기본이다.
우리의 사적 아카이브들이 비용 관계보다는 권리로서 지켜진다는 보장이 없다면, 우리는 ‘정보의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 순 없을 것입니다.
■맺음말
다닐로 키슈의 소설 <죽은자들의 백과전서>엔 한 작은 사람의 일생을 시시콜콜하게 적어둔 백과전서가 등장합니다. 어떤 남자가 어렸을 때 몇월 몇일 무슨 군것질을 했고, 언제 기차의 몇번째 칸에 타서 무엇을 보았는지, 어느 날 누구와 어떤 내용으로 잡담을 했는지 등에 대한 아주 잡다한 그 사람에 대한 기록들을 모조리 적어둔 책입니다.
처음 작가가 소설을 썼을 당시엔 이런 ‘상상’이 꽤나 허망한 아이디어라고 여겨졌을 겁니다. 왕이나 중요한 정치인도 아닌 일개 서민에 불과한 작은 사람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죄다 적어둔 책이 생길리도 없고, 그것이 도서관에 세대를 지나 보관될 리도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 세대엔 디지털 발전으로 인해 이런 것이 망상이나 은유에만 그치지 않게 됐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시시콜콜한 정보들을 시시때때로 수집당하고, 관리당하고 있죠. 하지만 정작 그 정보들은 도서관은 커녕 문앞에서 아무렇게나 흘려 버려지고 있고, ‘시시콜콜한’ 정보 뿐 아니라 아주 소중한 추억조차도 마구 버려져 훗날 추억할 기록들을 갖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
싸이월드로 시작한 해찰이 약간은 거창해진 느낌입니다만, 이번 주제의 경우 사실 제가 깊은 관심을 가져왔던 이야깃거리라 평소에 비해 조금 더 책의 안과 밖에서 자유롭게 해찰을 해보았습니다.
꼭 싸이월드가 아니라, 당장 블로그, SNS 계정 등이 사라진다고 하면 곤란한 일이 많을 것입니다. 점차 플랫폼들은 충성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일상 블로그(SNS)화, 커뮤니티화하고 있습니다. 당근마켓이나 오늘의집 등은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난 활용으로 인해 주목을 받고 있는 경운데요. 플랫폼 기업은 공동의 지식과 일상 기록, 네트워킹을 상업적으로 활용할 권리는 있지만, 이를 공동선을 위해 가꾸고 50년 넘게 지속시킬 의무는 없습니다.
물론 이 모든 걸 플랫폼 기업의 ‘나쁜 욕심’ 탓으로 돌릴 생각은 없습니다. 문제는 아예 정보의 저장 및 소유권을 시민권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우리 시대 상상력의 부족입니다. 이런 부분을 보고 있자면 어쩌면 이 시대는 우리 중 누구도 50년 후에 사람이 살아갈 것이라는 예상을 못하고 있는 사회는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땐 그 시대의 지구와 그 시대의 구글이 나올테니까요. 그렇다면 리셋된 정보들 사이에 과연 후세 사람들은 우리 시대의 무엇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
최근 본가의 서랍에서 ‘금다래신머루’ 캐릭터가 그려진 사진첩을 발견했습니다. 불과 5년 전 핸드폰 사진들, 10년 전 SNS에 올렸던 사진들은 제 ‘부주의’로 인해 영원히 사라졌는데 수십년 전 가족과 찍었던 사진들, 잡지에서 오려낸 마음에 든 사진들은 고스란히 낙엽과 함께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어쩌면 최근 MZ세대 사이 LP나 다이어리, 필름 카메라, 카세트 테이프 등의 유행은 비단 부박한 레트로 복고 유행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런 손가락으로 빠져나가는 추억들 사이 어떻게든 소중한 것들을 잊지 않고 내 곁에 두려는 노력의 일환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지나간 추억의 실마리를 단단히 붙잡고 싶은 마음, 붙잡으려는 노력은 비단 ‘디지털 러다이트(혹은 디지털 디톡스)’라는 유행어로만 설명할 순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그건 이미 4만년 넘는 세월동안 인류가 마음에 품어왔던 마음이니까요. 추억을 붙잡으려는 공동의 마음을 ‘디지털 맹신’과 ‘디지털 러다이트’ 그 사이 어디쯤 닻 내리는 것이 어쩌면 우리 시대에 정말 필요한 일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경향신문의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링크) 4월 13일자에 게재된 글입니다. 뉴스레터에는 해당 주제에 대해 추가로 읽을만한 책과 글 소개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편의 글로 하나의 깊은 영감을 드리는 〈인스피아〉를 구독해 주세요. 혹시 링크가 연결되지 않으면 괄호 안의 주소(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07426)로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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