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볼'의 도시에서-다양성·동화 그리고 평행적 삶..'이주노동자의 도시' 음성[5%의 한국]⑥
[경향신문]
수도권 가깝고 땅값 싸 공장에 최적
음성군 내 기업체 22년 새 3배 증가
한국인 기피 일자리 이주민이 채워
혁신도시로 빠져나간 주민들 자리
내국인 1인 가구·이주민들이 대체
음성군 내 원룸 4년 새 10% 넘게 ↑
삑- 삑- 삑삑-. 편의점 주인 장윤식씨(63)가 익숙한 손길로 빠르게 바코드를 찍어나갔다. 카운터 너머 카드와 현금을 내민 손들이 빵과 우유, 소시지를 서둘러 집어든 뒤 편의점 밖에 세워진 전세버스에 올라탔다. ‘A자동차부품회사’ ‘○○바이오’ 등 회사 이름이 적힌 버스들이다.
1시간 가까이 정신없이 물건을 판 장씨가 고개를 들자 시곗바늘은 오전 8시를 가리켰다. “오늘 아침엔 80~90명 정도 왔네요. 120~130명씩 왔었는데 코로나로 줄어든 거예요.”
충북 음성군 음성읍의 한 아파트 단지 앞 편의점의 주요 고객은 아파트에 사는 이주노동자들이다. 평일 아침 편의점과 단지 앞은 읍내에서 가장 붐빈다.
지난 3월31일 오전 7시, 단지 앞 왕복 4차선 도로는 양방향 모두 전세버스가 들어찼다. 은색 스타렉스 6~7대도 정차해 있었다. 40여분간 족히 200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차를 타고 단지를 떠났다. 출근한 노동자의 절반은 A사 이름이 새겨진 군청색 점퍼를 입었다. 대기업 1차 협력업체인 A사는 이 아파트 수십채를 기숙사로 쓴다.
‘작업복의 도시’. 충북 음성의 첫인상이었다. 평일 낮 식당에서는 작업복 차림의 손님들이 국밥그릇을 빠르게 비워낸다. 땅거미가 지면 흙투성이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들이 낮 동안 한산했던 거리를 채운다. 꽃무늬 농사모자를 쓴 여성들은 1t 트럭 화물칸에서 뛰어내려 인력사무소로 들어간다.
여느 제조업 도시나 농촌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얼굴이 낯설다는 차이가 있다. 음성의 외국인 주민(귀화자 포함) 비율은 14.6%(2020년 기준)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전국 평균(4.1%)의 3.5배다. 미등록 외국인을 더하면 20%에 달할 것이다. 주민 다섯 중 하나가 이주민인 ‘샐러드볼’(샐러드 속 재료처럼 다양한 문화가 특징을 보유한 채 조화되는 상태) 도시는 어떻게 굴러갈까. 지난달 28일부터 일주일간 음성에 머물며 도시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음성이라는 도시
음성은 동쪽으로 충북 충주와 괴산, 서쪽으로 진천, 북쪽으로 경기 안성과 이천·여주시에 이웃해 있다. 남쪽으로는 증평과 경계를 이룬다. 고속도로 나들목(IC) 4곳(음성·대소·금왕꽃동네·감곡)과 하이패스IC(삼성) 1곳으로 총 5개 IC가 지나는 교통 요충지다. 서울까지 109㎞, 고속버스로 1시간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수도권이 지척이고 도로는 사통팔달, 땅값까지 싸니 공장들이 들어서기 최적의 장소다.
1998년 975개였던 음성군 내 기업체는 2020년 2694개로 3배 가까이 늘었다. 2021년 9월 기준 산업단지(산단)는 16개다. 동원과 풀무원 등 대기업 물류센터, 오뚜기 등 식품기업의 공장도 음성 대소면에 있다. 금왕 테크노밸리 산단에는 3만평 규모의 쿠팡 첨단 물류센터가 들어올 예정이다. 2019년 기준 음성 인구 52.5%(4만360명)가 제조업 종사자다.
2022년 2월 말 기준 인구는 10만511명이다. 제1번화가인 금왕읍이 2만1491명으로 가장 많고, 산단이 몰려 있는 대소면에 1만8189명, 군청 소재지인 음성읍에 1만7228명이 산다. 이웃 지자체 진천군과 충북혁신도시를 나눠 가진 맹동면 인구는 1만3736명이었다.
일자리가 늘면 이주노동자도 많아진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제외한 외국인 거주자 통계(2020)를 보면, 대소가 4454명으로 가장 많았고 금왕(3656명), 삼성(2358명)이 뒤를 이었다.
이주민이 많은 곳에 이주민이 몰리는 경향까지 더해지면서 음성은 이주민들의 도시가 됐다. 미등록 이주민까지 합하면 통계보다 2배 넘는 외국인이 음성군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소피아 음성외국인도움센터장은 다국적 도시로의 변화를 20년 가까이 지켜봐왔다. “음성이야말로 다문화사회라 할 수 있어요. 특정 국가가 압도적으로 많은 서울 대림이나 구로와 비교하면 구성원이 훨씬 다양하거든요.”
내·외국인 ‘경제공동체’
음성의 한국인과 이주민은 경제공동체로 끈끈하게 묶여 있다. ‘이주민들이 일시에 빠져나가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주민들은 “음성이 마비된다”며 손사래를 친다. 매출액의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40% 이상 차지한다는 가게가 흔했다.
마트도, 택시도, 미용실도 이주민들의 씀씀이에 의존한다. 금왕읍 B미용실의 고객 3명 중 1명, 택시를 모는 김영찬 대소면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47)의 주말 승객 70%가 이주민이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음성에서 자차가 없는 이주민은 주요 택시 이용자다.
금왕읍 외곽의 C아파트 단지 앞에서 10년째 편의점을 운영해온 D씨(76)는 이주노동자들의 공장별 월급날뿐 아니라 주머니 사정까지 꿰고 있다. “52시간제 이후 카드의 ‘잔액 부족’이 뜨는 시점이 닷새쯤 당겨졌네요.”
5일장이 서는 금왕읍 무극시장 상인들은 몇해 전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법무부 직원들이 불시에 나타나 미등록자들을 모조리 잡아갔다. 대형마트가 없는 음성에서 이주민들은 장날에 일주일치 장을 본다. 한바탕 난리가 난 뒤 시장에 이주민의 발길이 뚝 끊겼다. “외국인 손님이 다시 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제 그렇게 (단속) 못하죠. 기업이나 농촌이나 일손이 달리는데 그 원성을 어떻게 버티려고요.”(김상오 무극시장상인회장)
2000개가 넘는 음성군 내 공장들의 이주민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사업체가 작고 노동환경이 열악할수록 한국인 노동자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이주민들이 한국인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흔한 오해는 적어도 음성에선 통하지 않는다.
맹동면에 있는 송암철강은 25년 된 제강업체다. 코로나19 이전 74명이던 직원은 53명까지 줄었다. 비자가 만료돼 귀국한 이주노동자를 대체할 인력이 코로나로 입국하지 못한 것이다. 현장직을 뽑지 못하면서 새 기계를 들여와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없다.
이서희 이사는 “기계가 손에 익을 때면 비자가 만료돼 귀국해야 한다. 숙련이 무의미한 상황”이라며 “자재값 올라가는 건 둘째 치고 일손이 없으니 발주를 받아도 납기를 못 지킨다. 공장 증설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농촌은 더 심각하다. 맹동 수박은 달기로 유명한 음성의 특산물이지만, 지난해 일손이 달려 제때 순을 치지 못하자 수박 뿌리를 아예 뽑아버린 농가들이 속출했다.
공장은 느는데 일손은 귀해지자 유료 인력사무소가 급증했다. 2015년 36개에서 2022년 105개로 불었다. 사람 구해달라는 공장들의 아우성이 커지면서 사무소들끼리 ‘노동자 쟁탈전’도 벌어진다. 코로나 이후 일당이 10~25%가량 뛰자 소개소가 챙기는 수수료의 규모도 커졌다. 눈치 빠른 인력사무소들은 군청을 상대로 로비도 서슴지 않는다. 농번기를 맞아 단기 계절근로자를 들여와달라는 농민들 호소에 군청이 모집에 나서면, 브로커들이 “우리가 주선해주겠다”며 매일같이 전화를 한다.
군민들 사이에서 ‘이주노동자가 돈이 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천윤미 음성노동인권센터 홍보차장(39)은 “‘돈 벌려거든 직업소개소를 차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했다. ‘인력사무소 몇년이면 원룸 건물이 한 채’라는 말이 돈다.
같이 사는데, 같이 안 산다
선주민과 이주민이 경제공동체임에는 틀림없지만 공간적으로는 ‘분리 상태’다. 평일 낮 시간대 음성읍과 금왕읍 번화가에서는 이주민의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음성읍 주민자치센터 직원 이부월씨(67)는 “일주일 내내 한 명도 안 마주칠 때도 있다”고 했다. 이주민의 생활 패턴을 보면 의문은 풀린다. 이주노동자들은 보통 주 6일 주야간 2교대 장시간 근무를 한다. 공장은 땅값이 싼 외곽에 있고, 이들은 대개 공장에 딸린 숙소에 거주한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데다 코로나로 ‘집콕’이 일상화되면서 시내에서 이주민의 모습은 더욱 찾기 힘들어졌다.
‘공간 분리’는 충북혁신도시가 들어선 이후 한층 뚜렷해졌다. 자녀 교육 등 정주 여건을 이유로 혁신도시의 새 아파트로 이사가는 주민이 늘었다. 오래된 아파트의 빈자리는 이주민이 채웠다. 2021년 통계청 조사에서 음성에 있는 회사를 다니는 사람은 8만4000명이었지만 음성에 사는 취업자는 6만2000명이었다.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의 미스매치가 군단위 지자체 중 가장 크다. 비수도권 지역 대부분이 인구 유출에 시달리지만, 음성은 ‘일자리는 느는데, 사는 사람은 줄어드는’ 조금 다른 유형의 고민을 안고 있다.
가족 단위로 떠난 자리를 새로 들어온 1인 가구들이 채운다. 2017년 3334개였던 음성군 내 원룸형 주택 수는 2021년 3712개로 10% 이상 늘었다. 한국인은 신축 원룸으로, 이주민들은 싸고 낡은 원룸으로 들어간다.
이주민이 늘면서 다양한 국적의 음식점이 들어섰지만 한국인 손님은 많지 많다. 대소면 중심가의 한 네팔·인도요리점에서 만난 사비(29·네팔)는 “이곳에 한국 사람은 거의 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 식당은 이주민들이 주로 외출하는 주말에만 문을 연다. 국내 지도 앱에 등록돼 있지 않거나 리뷰가 0개인 식당도 많았다. 농촌 지역인 생극면에서 가장 큰 아시아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다가 10여분간 유일한 한국인이 돼 이주민 수십명의 시선을 느끼기도 했다.
문화 차이에 따른 갈등이나 충돌(의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역 맘카페에는 ‘외국인이 많아 밤늦게 다니기 무섭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동네 기반 앱 당근마켓에는 약속 시간에 늦는다는 이유 등으로 ‘외국인 사절’을 내건 유저들이 꽤 있었다.
택시·오일장까지 이주민이 주고객…“이들 없으면 경제 마비”
가게 매출의 최대 40% 이상 차지
미용실 등 이주민 씀씀이에 의존
미등록자 단속에 손님 뚝 끊긴 적도
슈퍼마다 ‘아시아 코너’ 갖추거나
업체들 공장에 기도실 만드는 등
따로 또 같이 사는 곳으로 진화 중
음성에 머문 일주일간 특정 국가나 인종에 대한 선입견이나 막연한 두려움을 비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2021년 경찰이 실시한 종합체감안전도 조사에서 음성은 72.6으로 전국 평균(76.5)보다 낮았다. 군민들은 ‘OO아파트 주변 외국인 노동자가 많아서 순찰 강화 바람’ ‘대여성 범죄에 대한 불안함이 있다’ 등으로 응답했다. 하지만 2021년 음성 관내 내국인의 강력범죄 비율은 1.42%(49건)으로 외국인 0.087%(3건)보다 16.3배 높았다. 이주민이 전체 인구의 20%(미등록 포함)에 달하는 것에 비춰보면 실제 외국인 범죄율은 더욱 낮다고 할 수 있다. 음성서 이천호 외사계장은 “외국인 범죄는 많지 않고 그나마도 대부분 경범죄인데 주민들 공포는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네팔에서 온 바부(34)는 한국 생활 12년차로 음성에 산 지는 5년이 넘었지만 한국인 친구가 없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다 60살 넘었어요. 친구 하려면 부장님이랑 해야 해요(웃음).” 젊은 한국인이 기피하는 일자리를 이주노동자가 채우니 또래를 만날 기회가 아예 없다.
일자리는 인종화됐다. 일거리가 넘치는데 한국인이 선호할 만한 일은 없다. ‘65세 이하 누구나 가능’이라 적힌 구인 정보가 읍내 전봇대마다 붙어 있지만 “놀면 놀았지, 그런 일은 못 한다”고들 한다.
한국 청년들은 혁신도시로, 멀리는 수도권으로 눈을 돌린다. 혁신도시가 구도심의 편의·교육시설을 빨아들이면서 ‘남겨졌다’는 박탈감도 커지는 듯했다.
도시도 사람도 진화한다
도시도 사람도 변화하고 적응한다. 선주민과 이주민 모두 조금씩 서로를 배워가고 노하우도 쌓여간다. 정육점 주인들은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찾는 돼지 머릿고기나 염통 따위를 종류별로 갖춰놓는다. 무슬림이 많은 아파트 앞 편의점 사장은 돼지고기 대신 새우패티 버거를 발주한다. 어느 슈퍼마켓이든 작게라도 ‘아시아코너’가 있고, 입구에는 러시아어로 ‘러시아 제품 팝니다’라고 적힌 메모가 붙어 있다. 미용실 원장 서정아씨(47)는 “동남아 여성들이 웨이브보다 생머리를 선호하고, 남성들은 투블록보다 뒷머리를 길게 빼는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음성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걔들(이주민)도 이제 약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주민들이 초기와 달리 합리적 선택을 하는 경제주체로 진화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30대가 대부분인 이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소비에도 적극적이다. 토요일 아침 서울행 버스에 오르던 태국 청년들은 국내 스포츠 브랜드의 운동화를 맞춘 듯 신고 있었다. 이주민 규모가 커지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활발해지면서 ‘그들만의 시장’이 형성됐다. 차를 태워주거나 짐을 실어주는 영업을 하는 이주민들도 등장했다. 외곽 공장에는 향신료 등을 파는 ‘이동식 아시아마트’가 다닌다. 통계에 잡히는 이주민 운영 자영업만도 2012년 4곳에서 2021년 57곳으로 14배 뛰었다. 어느 인력사무소가 수수료를 많이 떼는지, 임금을 100원이라도 더 주는지, 일이 편한 곳은 어딘지 같은 정보도 빠르게 공유된다.
소이면에서 플라스틱 업체를 운영하는 정은희씨(54)는 “1인실 숙소와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주방을 갖춰야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인 사장들은 면접 시 업무 강도를 알 수 있는 동영상과 숙소 사진을 보여주는 요령도 터득했다. 일부 업체들은 식사를 제공하고 월급에서 식대를 제하는 대신, 노동자들이 식성에 맞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도록 한다. 기도실이나 체력단련실을 갖춘 업체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이주민들은 음성 곳곳의 풍경을 조금씩 바꿔놨다. 2020년 5월 금왕읍행정복지센터 야외주차장에는 ‘이드 알피트르’(이슬람 성월인 라마단이 끝났음을 축하하는 축제) 행사가 열렸다.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등의 무슬림 500명이 거리 두기를 한 채 기도하는 이국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점이라 금왕읍과 음성경찰서, 보건소의 협조 없이는 성사될 수 없었다. 외국인도움센터가 10년간 외국인 자율방범대와 청소활동으로 선주민들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려는 노력도 한몫했다.
도시 분위기는 나아졌지만 안전한 노동환경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음성에 머물던 지난 2일에도 생극면 버섯농장에서 600㎏짜리 탱크에 깔려 캄보디아 출신 E씨(27)가 숨졌다. 알려지지 않는 죽음은 더 많다. 인력사무소를 통해 일자리를 찾는 경우가 많다보니 산재 신청은 언감생심이다.
천윤미 음성노동인권센터 차장은 음성군이 산단 유치 등 몸집 불리기엔 적극적이면서도 ‘일자리의 질’ 관리에는 무관심하다고 했다. 연차 사용 등을 지키지 않는 업체가 많지만 노동 환경 조사는 전무하다. 인력사무소 난립과 함께 수수료 중간착취는 심각한 수준이다. 2016년 센터 조사에서 법정 수수료의 2.5~5배를 떼어간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군 차원의 실태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음성 거주 이주민의 절대다수가 노동자이지만 행정은 ‘다문화가정’에 쏠려 있다. 충북도가 이상정 충북도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도내 외국인 노동자 관련 사업 예산은 6000여만원이다. 2019년 음성군은 외국인지원팀을 설치하고 2020년에는 금왕읍에 충북 유일의 외국인지원센터를 열었다. 고소피아 음성외국인도움센터장은 그러나 이주민들은 여전히 행정에서 배제돼 있다고 비판한다. “코로나 초기 마스크가 모자랄 때 군청에서 마스크를 보냈는데, 저희가 받은 물량이 고작 200장이었습니다. 다른 사회복지단체들에는 2000장씩 보냈고요.”
샐러드볼의 도시
영국 인류학자 랠프 그릴로는 2010년 다문화사회 영국을 분석한 논문 ‘영국인과 타자 : 인종에서 종교로’에서 “문화적 다양성과 동화, 그리고 ‘서로 만나지 않는 평행적 삶’이 공존한다”고 했다. 취재팀이 일주일간 관찰한 음성과도 닮아 있다.
주말이 되면 도시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불금’을 즐기려는 이주민들이 중심가로 집결한다. 1일 오후 7시 금왕읍 한 태국식당 주방. 사장 서린야(47·태국)의 손놀림이 부산하다. 고향 음식으로 한 주의 피로를 씻으려는 태국인 예닐곱 명이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음식을 주문한 것이다.
블랙박스 제조공장에 다니는 카녹완(29)과 버섯농장 노동자인 락카나(28)는 솜땀과 해물볶음밥, 태국식 누룽지탕 등 테이블이 가득 찰 만큼 음식을 시켰다. 2년 만에 만난 옛 직장동료 둘은 번쩍이는 조명과 태국 유행가요의 높은 볼륨 속에서 오래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산단이 집중된 대소면의 풍경은 더 다이내믹하다. 2일 오후 5시20분쯤 시내를 가로지르는 오산교를 중심으로 한 오대로 일대 왕복 2차선 도로가 택시와 자가용, 셔틀버스로 북적거렸다.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행인 10명 중 7~8명꼴로 외국인이었다. 일찌감치 씻고 슬리퍼에 반바지, 후드티셔츠로 갈아입은 이들이 맥주와 과자가 담긴 장바구니를 들고 오갔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복권가게에서 신중하게 번호를 고르는 이도 눈에 띄었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알렉스(35)는 편의점 앞 파라솔 의자에 앉아 친구와 병맥주를 마셨다. 동남아의 휴양지 같은 광경이다.
반면 코로나 이후 숙소에서 차분하게 주말을 보내는 이주민도 크게 늘었다. 이날 저녁 대소면에서 약 16㎞ 떨어진 생극면의 한 렌즈 제조회사 직원 숙소에서 베트남 출신 한(26)이 노트북을 켰다. 매주 토·일 오후 8시 비대면 한국어 수업이 시작될 시간이다.
오후 5시에 잔업을 마친 뒤 동료 뚜(27·베트남)와 ‘분짜’를 만들어먹고 뒷정리를 하자마자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탄호이와 압바스벡, 라나 등 학생 14명의 얼굴이 컴퓨터 화면에 떴다. “코로나 걸렸던 우리 아마르, 잘 지냈나요?” 고소피아 센터장의 인사로 시작된 수업은 한국어 중상급자 반이다. 좋은 글을 쓰는 요령의 이날 강의에서 그는 ‘짧게 쓸 것’ ‘자주 쓸 것’ 등을 강조했다. 주경야독은 11시까지 이어졌다.
주 6일 근무를 했던 이주민들이 유일하게 쉬는 일요일은 거리에서 이주민의 모습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날이다. 지난 3일 오전 무극리 중심가의 안경원 건물 4층에서 낯선 언어의 기도 소리가 울려퍼졌다. 2015년 만들어진 무슬림 기도실이다. 라마단 3일차인 이날 산토소(44)와 아구스(35) 등 10여명의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은 식사도 거른 채 하루 다섯 번 기도했다.
일요일의 무극리 외국인지원센터는 음성에서 가장 바쁜 곳이다. 한국어 교습부터 운전면허, 요리, 요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매주 일요일 80~100명이 찾는다. 센터 1층에서 파란 조끼를 입고 안내를 하던 알람(38·방글라데시)은 ‘1365 자원봉사포털 사이트’에서 자신의 봉사내역을 보여줬다. 639시간30분이었다. 한국살이 12년차인 그는 정주 비자를 목표로 한국어 공부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 계속 살고 싶어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오후 5시, 금왕과 대소터미널에 도착한 서울과 안산, 청주발 버스에서 이주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버스와 택시를 타고 보금자리를 향해 뿔뿔이 흩어졌다. 택시기사는 짐이 많은 이주민 승객을 위해 트렁크를 재빨리 열었다.
음성공용터미널 벽에는 발음을 헷갈려 하는 이주민들을 위해 ‘청주(Choengju)’와 ‘충주(Chungju)’를 구분해 적은 종이가 붙어 있다. 음성의 사람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일요일 저녁을 맞이했다. ‘샐러드볼’의 도시는 오고 있다. 느리고도 빠르게.
■기획취재팀 배문규·김원진·최민지(스포트라이트부) 이두리(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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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지·김원진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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