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소스 고마워" 한글 글꼴 다양성에 날개 달았다

김대은 2022. 4. 13.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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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 26자만 만드는 영어와 달리
한글, 가부터 �R까지 1만 글자 달해
컴퓨터 한글 글꼴 개발비용 컸지만
누구나 쓰고 바꾸는 오픈소스 덕에
프리텐다드 등 다양한 무료글꼴 나와
리멤버·카카오뱅크 등 기업서도 채택
프리텐다드 글꼴. [사진 제공 = 길형진 디자이너 깃허브]
26자 vs 1만1172자.

각각 영어, 한글 컴퓨터 글꼴에 필요한 글자의 개수로,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차이가 난다. 영어는 ABC부터 시작해 Z까지 총 26개 글자만 만들면 되지만, 한글은 '가갸거겨'부터 시작해 '�R'까지 1만개가 넘는 글자를 일일이 다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영어권에는 1957년 만들어진 헬베티카(Helvetica) 등 역사와 전통을 지닌 수많은 글꼴이 있는 데 반해, 한국은 개발 비용 등의 문제로 선택의 폭이 꽤나 적은 상황이다. 그 때문에 정보기술(IT) 기업들은 2004년 맑은고딕(마이크로소프트), 2008년 나눔고딕(네이버), 2012년 산돌고딕네오(애플) 등 각자에게 맞는 글꼴을 자체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들 기업에서 만든 글꼴은 사용 목적이 제한되어 있어 무단으로 사용할 경우 자칫하면 소송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기업이 아닌 개인이 직접 자신에게 맞는 글꼴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고, 역으로 이를 각종 기업에서 채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프리텐다드 제작과정. [사진 제공 = 길형진 디자이너 블로그]
대표적인 사례는 2021년 개발된 프리텐다드(Pretendard)다. 프리텐다드는 디자이너 길형진 씨가 만든 글꼴로, 한글 글꼴인 '본고딕'과 영문 글꼴인 '인터(Inter)'를 기반으로 모양·굵기·위치 등을 조금씩 조정해 만들었다. 길 디자이너는 "글꼴 제작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만드느라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며 "주위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지금 모습으로 공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당 글꼴이 공개된 이후 길 디자이너 블로그에는 "가독성이 좋고 작업하기 용이하다" "제작자가 들숨에 건강을, 날숨에 재력을 얻길 바란다" 등 9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프리텐다드가 사용된 대표적인 사례는 명함 관리 애플리케이션(앱) 리멤버다. 리멤버는 과거 iOS와 안드로이드에서 서로 다른 글꼴을 쓰고 있었다. 각 운영체제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글꼴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글꼴의 크기와 자간 등이 달라, 앱을 디자인할 때 똑같은 화면을 운영체제마다 2개씩 만들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리멤버를 운영하는 드라마앤컴퍼니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업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무료 글꼴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후보군에는 여러 글꼴이 올랐으나, 최종적으로는 프리텐다드가 채택됐다. 강민석 리멤버 프로덕트디자이너는 회사 블로그에 "유료 글꼴을 구입하기에는 비용 면에서 부담스러웠다"며 "다양한 굵기를 지원하고 글자의 높낮이가 적절한 프리텐다드를 사용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선 2015년, 스타트업 스포카는 자사의 글꼴인 '스포카 한 산스'를 공개했다. 스포카는 원래 자영업자를 위한 비용 관리 서비스를 하는 업체로, 사내에서 사용하려고 만든 글꼴을 누구나 쓸 수 있게 공개한 것이다. 스포카 관계자는 "기존에 사용하던 글꼴이 한글·영문·숫자의 크기가 제각각이라 이를 통일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토스, 타다 등 많은 업체가 이 글꼴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 이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또 다른 글꼴은 수트(SUIT)가 있다. 수트는 'UI에 최적화된 글꼴'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윤병선 디자이너는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기존 글꼴의 여백·자간 등이 UI 제작에는 부적합한 경우가 많아 이에 맞는 글꼴을 직접 만들었다"며 "본고딕의 한글을 조금씩 수정하고, 이에 어울리는 영문·숫자·특수문자를 직접 디자인해 합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많은 글꼴이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기업에 의해 채택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오픈소스' 덕분이다. 오픈소스란 개발자나 디자이너가 만든 결과물을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해 놓는 것을 말한다. 공개된 결과물은 누구나 자유롭게 수정해 사용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이를 다시 사람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본고딕은 2014년 만들어진 오픈소스 글꼴로, 상대적으로 글자 수가 많은 한글·한자에 적당한 무료 글꼴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문제 의식에 따라 제작됐다. 산돌커뮤니케이션(한국)·창저우 사이노타이프(중국)·이와타(일본) 등 3개 국가의 글꼴 제작 업체가 모두 뛰어든 탓에, 발표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오픈소스 글꼴로 주목받았다.

한국의 프리텐다드·수트·스포카 한 산스뿐만 아니라 미나모토노 마코토 고딕(일본)·타이페이 산스(대만) 등 수많은 글꼴이 어도비와 구글에서 만든 본고딕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산돌커뮤니케이션 관계자는 "본고딕은 애초에 무료 배포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글꼴로, (프리텐다드처럼) 수정 배포하는 것에 대해 문제 삼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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