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판다] "그들은 악마" 여전히 생생한 그곳의 기억 (풀영상)
제2의 형제복지원 수두룩
<앵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가서 불법으로 가두고 노역을 시켰던 시설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부산 형제복지원인데, 당시 전국에 있던 다른 수용시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정부 용역 연구 결과를 저희 '끝까지판다'팀이 단독으로 입수했습니다.
먼저, 원종진 기자가 그 내용부터 정리해드리겠습니다.
<기자>
[황송환/수용시설 피해자 : 이것도, 이것도 하도 맞아가지고 이빨이 없습니다.]
[김세근/수용시설 피해자 : 뭐 '나룻배'나 '히로시마' 이런 기합은 뭐 말도 못 하고요. 잊어 먹을 수가 없지. 지금도 자다가 그 악몽 꾸고요.]
[황송환/수용시설 피해자 : 그 사람들, 사람이 아닙니다. 악마지 악마.]
[김세근/수용시설 피해자 : 파란 대문으로 시체 창고가 있거든요. 그럼 죽으면 군용 담요 둘둘 말아 거기 가져다가… 일주일에 대여섯 구씩 나갑니다 시체가. 직접 봤습니다 제가.]
50여 년 전 서울시립아동보호소 생활 당시 비슷한 경험을 말하는 두 사람.
머리에는 그때 맞아서 생긴 흉터가 여태 선명하고, 지금도 공황장애와 폐쇄공포증 약을 먹지 않으면 삶을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떠올리기 싫을수록 기억은 생생합니다.
[김세근/수용시설 피해자 : 낮에는 산에 끌고 가서도 (성폭행을) 하고. '양동빨대'라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심했지요.]
전국의 집단 수용시설 실태에 대한 정부의 용역 연구 결과가 처음으로 나왔습니다.
1차 연구 대상은 서울, 경기, 인천, 강원의 수용시설 11곳입니다.
연구진은 각종 시설 내부 기록과 수용자와 종사자 면담을 통해, 공공과 민간위탁 가릴 것 없이 모든 수용시설에서, 입소와 수용 전 단계에 걸쳐 인권 침해가 존재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일부 시설에서는 경찰 단속으로 들어온 사람 가운데 가족 등 연고자가 있는 비율이 80~90%를 넘기도 했습니다.
갈 곳 없는 고아나 장애인 등을 보호하기 위해 수용한 것이 아니라, 역, 정류장, 광장 등에서 도시 하층 계급을 소위 '부랑인'으로 규정해 마구잡이로 단속했다는 뜻입니다.
[김재형/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 도덕적인 처벌을 할 사람들 역시 무분별하게 잡아들여 가지고 시설에 수용을 시킨 것입니다.]
연구진은 인권 침해의 구조적 요인을 규명하기 위해 '수용자 거래'에 주목했습니다.
일례로 1983년과 1984년,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평균 연령 38세의 남성 91명이 인천 삼영원으로 옮겨 왔다가 90~200일 뒤에 형제복지원으로 돌아갔습니다.
시설 인가를 받기 직전이었던 삼영원 건물 공사에 동원됐던 것입니다.
배경에는 전국 수용시설을 확충하는데 입소자 노동력을 활용해 공사비를 절감하라는 정부의 지침이 있었던 것이 확인됐습니다.
국가가 집단 수용시설을 도시 하층민과 소수자에 대한 감시와 통제 네트워크로 활용했기 때문에, 모든 수용시설에서 인권 침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는 것이 연구진의 결론입니다.
[김재형/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 국가와 시설이 이들을 사회 복귀시킬 어떠한 의지라든가 프로그램, 이런 것들이 전혀 없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권 침해 사실과 국가의 관리, 감독 책임이 규명된 만큼 정부 기구의 직권 조사와 배·보상 논의가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영상취재 : 김태훈, 영상편집 : 김준희, VJ : 김준호, 디자인 : 심수현·김홍식)
<앵커>
이번 연구에서는 수용시설의 진료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숨졌는지 의학적인 분석도 사실상 처음으로 이뤄졌습니다. 시설에서 지내는 사람들의 사망률은 보통 사람들보다 몇십 배 높았고, 수명도 훨씬 짧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어서 정반석 기자입니다.
<기자>
[똥 차서 죽는다 이런 표현들을….]
1990년 8월 사망한 57세 여성 수용자의 의무 기록.
복통을 호소해 병원에 데려갔더니 '변비' 외에 특이 소견이 없었는데, 수용시설 복귀 이틀 만에 숨졌습니다.
정신병원을 함께 운영했던 해당 시설에서 '클로르프로마진'이 많이 처방됐던 관행 등을 종합 검토한 연구진은 정신과 약물의 부작용을 의심합니다.
[김관욱/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전문의) : 그 약에 의해서 변비가 생기고 변비로 인해서 장 괴사로 사망하는 경우들이 드물지 않게 보고가 되고 있는….]
20여 년 수용시설을 전전하다 지난 2007년 가족에게 인계된 한 여성.
복수가 찬 듯 배가 잔뜩 불러 있었고, 남은 치아는 서너 개뿐이었습니다.
[오충빈/강제입소 피해자 아들 : 담석 제거 수술을 하고 나서 배변 활동이 안 되는 부분 때문에 굉장히 고생을 하시다가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게 매일같이 자기 전에 약을 하나씩 줬다고 하는데 그걸 먹고 나면 다음날 사람이 옆에 죽어 있고….]
이 여성, 가족 품에 돌아온 지 3년 만에 사망했습니다.
결핵약 부작용으로 숨졌다는 53세 여성의 증상 기록지에는 이런 호소가 적혀 있습니다.
"정신과에 넣지 마세요."
수용시설에서 입소자들이 어떻게 다뤄졌는지 보여주는 사례들입니다.
[굉장히 충격적인 결과였습니다.]
기록 입수가 가능했던 인천, 경기, 강원 수용시설 다섯 군데의 사망률은 8.2~12%.
당시 성인 사망률의 20배에서 30배에 달합니다.
입소 전부터 영양 상태가 열악했던 점과 정신질환 비율이 높았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수치라는 것이 연구진의 지적입니다.
해외에서도 수용시설 사망자에 대한 분석은 거의 없었는데, 노숙 상태 조현병 환자의 사망률이 일반인의 4배 수준이라는 호주의 연구 결과와도 큰 차이가 납니다.
조기 사망 경향도 뚜렷이 확인됐습니다.
시설에 따라 남성 사망자는 최대 20년, 여성 사망자는 최대 30년 가까이 수명이 짧았습니다.
조현병 환자의 수명이 일반인보다 10년 정도 짧다는 미국의 추적조사 결과와도 비교됩니다.
[김관욱/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전문의) : 폭력 이외에 영양 상태라든지 진료라든지 처방의 적절한 관리가 이루어졌는지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전혀 그 책임 여부를 묻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상취재 : 김태훈, 영상편집 : 김준희, 디자인 : 서동민·엄소민)
<앵커>
이 내용, 원종진 기자와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Q. 실태 조사 어떻게 이뤄졌나?
[원종진 기자 : 이번 연구는 8명의 교수와 박사급 연구진들이 9개월 넘게 진행을 했습니다. 195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국가 기록과 시설 내부 자료 등 수만 페이지를 검토를 했고, 또 시설 경험자나 운영자 십수 명을 면담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형제복지원 같은 문제가 일부 시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의도적으로 구축한 도시 하층민에 대한 감시 통제 네트워크를 통해 구조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이 점을 규명한 것이 이번 연구의 성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연구 결과,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을까?
[원종진 기자 : 지금 전국 수용시설을 거쳐간 아동들이 수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이것을 위한 직권 조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제가 피해자들을 만나보니까 60대에 벌써 치매가 오거나 또 폐쇄공포증에 걸려서 겨울에도 창문을 다 열어놓고 살아야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좀 전에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이랑 통화도 했는데, 이 시설에서의 경험이 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계속해서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에 나온 정부 공식 기록에는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부랑인들을 거리에서 없애 국민들의 혐오감을 해소해야 한다.'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오늘을 사는 우리도 역사적 경험을 통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희 취재진 생각입니다.]
원종진, 정반석 기자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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