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선 못 내려요"..장애인 이동 제약 지하철역 분석해보니

CBS노컷뉴스 임민정 기자,CBS노컷뉴스 백담 기자 2022. 4. 6.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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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이동권②]
'1역사 1동선' 미충족 역 21개.. "열차 내려도 밖으로 나갈 방법 없어"
2호선 신설동역·6호선 새절역.. '승강장 한쪽에만 엘리베이터 설치, 반쪽 짜리 역'
교통의 '요지' 7호선 고속터미널역 휠체어 탄 장애인에겐 '험지'
편집자 주
출근길 지하철. 장애인들의 '휠체어' 시위를 마주한 시민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다. 이해한다는 반응부터 시민들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전문 시위꾼' 아니냐는 격앙된 반응까지 나온다. 장애인들이 왜 이렇게 간절하게 시위를 할까. CBS노컷뉴스는 정국의 핵심 이슈가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시위 이유를 면밀히 분석해봤다. 그들의 삶은 어떤지 직접 동행하고 관찰했다. 모두에게 편리한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의 숨겨진 '장벽'들을 낱낱이 해부해봤다.


▶ 글 싣는 순서
①가파른 경사에 '휘청', 작은 턱에도 '덜컹'…장애인 출근길 동행해보니
②"여기선 못 내려요"…장애인 이동 제약 지하철역 분석해보니
(계속)

2001년 겨울,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사고로 귀성길에 오른 장애인이 사망했다. 장애인들은 더 이상의 사고를 막기 위해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했다. 이후 21년이 지났지만, 이들은 여전히 지하철을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없다. '1역사 1동선'이 확보되지 않은 역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공사)는 장애인의 지하철 이용 편리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1역사 1동선'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1역사 1동선'은 교통약자가 타인의 도움 없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상 출구부터 승강장까지 하나의 동선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공사에 따르면 1~8호선 275개 역 중 254개 역(92.3%)에 '1역사 1동선'이 확보돼있다. 나머지 21개 역에선 엘리베이터만으로는 지하철 이용이 불가능 하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동선이 확보되지 않은 역들을 직접 찾아가 동선이 어디서 단절되는지, 대안이 있는지 등을 분석했다. '1역사 1동선'이 확보되지 않은 21개 역은 장애인들의 지하철 이용이 원천 차단되는 모습이었다. 한 방향 승강장에만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출발 혹은 도착만 가능한 반쪽짜리 역도 있었다.

엘리베이터 대신 휠체어 리프트를 타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휠체어리프트를 통한 이동은 '1역사 1동선'에서 제외된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휠체어 리프트가 아무래도 사고가 난 적이 있어 이동 동선 개념으로는 넣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1역사 1동선' 미충족 지하철역 현황. 그래픽=김성기 기자

"대합실까지만 운행해요" 동선 끊긴 역들

"휠체어를 이용하는 승객께서는 회현역이나 충무로역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4호선 명동역에 가까워지면 이런 방송이 나온다. 명동역 승강장에 내리면, 대합실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탓이다. 휠체어 리프트조차 공사를 이유로 수년 전 철거돼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명동역에 내려 대합실까지 올라갈 방법이 없다. 그래서 공사 측은 장애인들에게 명동역 대신 회현역이나 충무로역에 내릴 것을 권한다.

명동역 승강장에 내리면, 대합실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백담·임민정 기자

'1역사 1동선'이 확보되지 않은 21개 역 중 19개 역에는 총 29대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 대부분의 지하철역은 '지상과 대합실 그리고 열차를 타는 승강장'으로 이루어진 구조인데 '1역사 1동선'이 확보되지 않은 역에서는 '지상과 대합실' 혹은 '대합실과 승강장' 등 일부 구간에 엘리베이터 설치가 안 돼 있다. 지하철역 출구에서 승강장까지 이동이 막혀있는 셈이다.

노들자립센터 유진우 활동가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명동역이 가까워지면 '엘리베이터 설치 중이라 휠체어 승객은 충무로역이나 회현역에서 내리라'고 하는 방송이 나온다"며 "장애인들은 명동역에 약속이 있어도 전 역인 회현역에 내려서 20분 동안 전동 휠체어를 타고 가야 한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싶다"고 했다.

이처럼 장애인들이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갈 수 없는 역들엔 4호선 명동, 1호선 청량리, 6호선 봉화산 등이 있다.

'출발' 혹은 '도착' 둘 중 하나만 가능한 곳도

한 방향 승강장에만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출발 혹은 도착만 가능한 역들도 있다.

지선구간인 신설동역이 대표적이다. 장애인들은 2호선 신설동역에선 성수행 열차를 탈 수 없다. 지하 1층 대합실과 지하 2층 성수행 방면 승강장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성수에서 신설동으로 도착한 방향 승강장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어 대합실과 지상으로 나갈 수 있다. 휠체어에 탄 장애인이 신설동역에 내려 바깥으로 나가는 데엔 문제가 없지만, 정작 같은 역에서 성수행 열차를 탈 수는 없다.

장애인들에겐 한쪽 동선만 확보된 반쪽짜리 역사인 셈이다.

6호선 새절역도 마찬가지다. 응암행 방면 승강장에만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어 증산행 방면에서 내릴 경우 장애인들은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만약 새절역에서 내려야 하지만, 증산행 열차에 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가능하진 않다. 먼저 새절역을 지나쳐 한 정거장을 더 이동한 후 증산역에서 내려야 한다. 이후 역사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해 반대 방향 열차를 타고 새절역으로 되돌아오면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반쪽짜리 동선조차 확보되지 않은 역도 있다. 남구로역 용답역 2곳은 엘리베이터가 단 한대도 설치돼 있지 않다. 용답역과 남구로역 엘리베이터는 각각 다음 달과 2024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비장애인에겐 교통의 '요지', 장애인에겐 '험지'

철도 길과도 연결된 청량리역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에겐 그저 편히 이용할 수 없는 역 중 하나다.

1호선 청량리역의 경우 대합실에서 밖으로 나가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휠체어를 탄 승객이 청량리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개집표기를 총 3번 찍어야만 한다. 개집표기를 찍고 1호선을 벗어나 환승통로로 이동한 뒤 중앙선 개집표기를 거쳐 외부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한다.

3·7·9호선이 겹쳐 있어 환승이 용이하고 경부선·호남선 고속버스 터미널이 있는 교통의 요지, 고속터미널역도 휠체어를 탄 이들에겐 대표적인 교통의 '험지'다.

7호선 고속터미널역의 경우 밖에서 역사로 들어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3호선이나 9호선 출구쪽 엘리베이터를 통해 역사 내로 진입하더라도 문제다. 길고 복잡한 역사 통로를 거쳐 7호선 환승통로에 다다르더라도 길고 가파른 계단과 휠체어 리프트뿐이다.

가파른 경사를 휠체어 리프트에만 의존해야 하는 역은 또 있다. 6호선 구산역은 승강장과 대합실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대합실까지 가기 위해선 63개의 계단, 15m의 높이를 휠체어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6호선 구산역은 승강장과 대합실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대합실까지 가기 위해선 63개의 계단, 15m의 높이를 휠체어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백담·임민정 기자

역설적이게도 끝에 다다르면 계단 주변 난간에 혹시 모를 사고를 우려한 듯한 '전동 휠체어 접근 금지' 팻말이 붙어있기도 했다.

한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선전전 및 삭발식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장애인들의 이동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휠체어 리프트에 기대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 하는 현실도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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