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다[청년이 외친다, ESG 나와라](15)
2022. 4. 5. 16:22
#1 새벽이를 구하다
2019년 경기도 화성시의 한 종돈장. 악취와 오물이 가득한 농가에 수천 마리의 돼지가 사육되고 있었다. 어미 돼지는 좁은 스툴에 갇혀 꼼짝하지 못했다. 젖을 찾아 달려드는 아기 돼지들은 비명소리를 질러댔다. 동물해방공동체 ‘직접행동 디엑스이(Direct Action Everywhere Korea)’ 활동가들이 구조한 한 아기 돼지는 ‘새벽이’라는 이름을 달고 철창 밖으로 나왔다. 새벽이는 그곳에서 ‘고기’가 되지 않고 살아남은 첫 번째 동물이 됐다.
디엑스이는 농장과 도살장을 넘나들며 우리나라의 동물권을 끌어올리려는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다. 소속 활동가들은 축산동물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는 데 힘을 집중하고 있다. 은영 활동가는 “우리가 현장에서 본 아기 병아리는 뼈가 으스러진 채 고통받았고, 태어난 지 6개월밖에 안 돼 우리에 갇힌 아기 돼지는 눈알에 염증이 있거나 아예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섬나리 활동가는 “다른 전시ㆍ야생ㆍ실험동물에 비해 축산동물을 향한 폭력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일상적이다”며 “축산업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눈앞에 드러나지 않을 뿐 아니라 너무 당연한 관계로 인식된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디엑스이가 구조한 새벽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축산동물 생추어리인 ‘새벽이생추어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생추어리(sanctuary)는 공장식 축산 등 동물 착취 산업의 피해 동물이 살아가는 ‘피난처’이자 ‘안식처’다. 섬나리 활동가는 “새벽이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다른 감금된 동물의 이야기를 환기하고 확산해 인간과 동물의 새로운 관계를 보여주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2 물고기 아니고 물살이
“물고기 아니고 물살이” 동물해방물결(동해물)이 ‘2021 동물권 행진’에서 내건 슬로건이다. 2021년 동해물은 일상 속에서 동물을 도구화하거나 비하하는 종(種)차별 언어 표현을 찾은 다음 이에 대항하는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물에서 사는 고기를 뜻하는 ‘물고기’ 대신 물에서 사는 존재를 뜻하는 ‘물살이’라는 표현을 제안한 게 대표적이다. 동물의 수를 세는 단위로 ‘마리’가 아니라 ‘명(命)’을 사용하자는 것도 종차별적 언어 표현을 개선하려는 시도다.
동물운동가 수나우라 테일러에 따르면 종차별주의는 인간이 다른 모든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신념을 말한다. 종차별주의는 약이나 가정용품 실험에 동물을 사용할 때, 재주를 부리게 하려고 코끼리에게 불훅(bullhook)이라 불리는 쇠갈고리를 사용할 때, 동물원에서 우리에 갇힌 동물을 바라볼 때, 우리의 이익을 위해 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할 때, 우리의 이익을 위해 동물을 도살장에 보내거나 그 몸을 상품화할 때 모습을 드러낸다. (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
동해물은 이러한 종차별 철폐와 동물해방을 내세우며 2018년 발족한 동물권 단체다. 동해물은 2020년 11월 경남어류양식협회 관계자들이 집회 과정에서 살아있는 방어와 참돔을 바닥에 내던지고 비닐에 묶어 행인들에게 배포한 행위를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은 3개월의 조사 끝에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어류 동물에 대한 동물 학대 혐의를 이례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동해물 이지연 대표는 “‘동물’이 예전에는 인간이 아닌 다른 모든 동물을 통칭하는 말이었는데 이는 인간과 동물을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단절된 인식을 보여준다”며 “인간을 포함해 지각력 있는 모든 존재들을 동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면 ‘물살이’도 고통을 느끼는 지각력 있는 존재다. 동해물 자문위원이기도 한 전범선 풀무질 대표는 “‘우리는 모두 동물이다’가 동물해방 운동의 중요한 슬로건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동물은 고통을 느끼는 존재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15년 이후 동물권은 우리나라에서 동물 문제를 다루는 주된 담론으로 부상했다. 동물의권리를옹호하는변호사들 김도희 변호사는 “최근 나오는 동물 담론은 주로 동물권에 기반해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선 두 사례는 각각 축산 동물과 어류 동물이라는 전혀 다른 동물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고통을 느끼는 동물이 인간에 의해 이용된다는 점에서다. 김 변호사는 “사람들이 동물을 용도에 따라 임의로 구획해 동물에게 그 역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인간 중심적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통상적인 동물권의 개념은 동물이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을 공동 번역한 박진영ㆍ오창룡 역자는 책에서 “동물권에 따르면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는 주체이며, 인간은 동물의 권리를 존중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은영 활동가는 “동물권은 축산업을 비롯해 동물을 감금ㆍ학대하고 죽여서 이윤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이므로 의식의 변화가 동반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동물해방을 추구하는 이들은 동물권을 쾌고감수능력(快苦感受能力)에 근거해 설명한다.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끼는 ‘지각력’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전 대표는 “고통을 피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부여된 기본권을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도 동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쾌고감수능력이 동물권 담론의 전부는 아니지만 가장 상식적이고 확실한 동물권의 기본”이라 말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권리인 생명권과 행복 추구권에서 동물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쾌고감수능력은 동물해방운동 선구자인 철학자 피터 싱어를 통해 동물권 논의에서 대중화한 개념이다. 싱어는 자신의 저서 〈동물 해방〉에서 “인간 이외의 동물도 고통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로서 보호받기 위한 도덕적 권리를 지닌다”고 말했다. 쾌고감수능력은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윤리적인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동물 윤리의 기본 전제다.
쾌고감수능력은 현실의 법과 제도를 설계하는 기준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김 변호사는 “전 세계에서 동물보호법을 비롯해 관련 동물법이 있는 나라에서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를 중심으로 동물의 법적 적용 대상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동물보호법 제2조 제1호에서 동물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 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로 정의한다. 포유류와 조류를 비롯해 파충류, 양서류, 어류를 포함하는 조항이다. 김 변호사는 “고통 중심의 시각으로 동물 관련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 있다 보니 쾌고감수능력은 보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다뤄지는 문제이기도 하다”고 부연했다.
■착취와 폭력에 저항하는 동물권
동물권은 동물에게 가해지는 착취와 폭력에 반대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은영 활동가는 “여성ㆍ장애인 등에 가해지는 부당하고 끔찍한 폭력에 맞서기 위해 권리 운동이 생겨났듯, 동물에게 어떤 권리를 부여하자는 주장에 앞서 ‘동물을 착취하고 학대하는 현실이 존재했기에 동물권 운동이 있다’는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섬나리 활동가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고 동물을 폭력적으로 대해도 된다는 위계적 이분법을 극복하는 게 동물권 운동의 중요한 목표”라 밝혔다.
동물해방 활동가들은 축산업의 폭력적 구조에 균열을 내고자 한다. 다른 동물 운동에 비해 급진적이다. 이들은 축산업을 지탱하는 약한 고리로 동물복지 축산농장을 든다. 동물복지 축산농장은 동물이 본래의 습성 등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도록 정부가 인증해 관리하는 농장이다. 전 대표는 “인도적으로 도살하고 살처분한다는 얘기를 할 때 주로 동물복지가 등장한다”며 “동물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동물복지를 운운하는 건 사실상 논의를 동물권까지 끌고 가지는 않겠다는 것”이라 말했다. 은영 활동가는 “집단적으로 동물이 고통받는 상황에서 횃대를 하나 더 설치해 동물복지 인증을 받는다고 해서 동물의 고통과 죽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동물복지 선진국으로 알려진 스웨덴의 한 도축장에서 일한 수의사 리나 구스타브손의 이야기는 축산업의 동물복지에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곤돌라 위에 서서 옆과 위에 창살을 두른 철통에 갇힌 암퇘지들을 본다. (…) 녀석들은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빠져나가려고, 숨 쉬려고 안간힘을 쓴다. 곤돌라 전체가 흔들거린다. (…) 동물보호를 외치면서도 우리는 쉼 없이 그런 짓을 한다. 바닥이 젖었다고, 동물들이 울타리에 부딪혀 다칠 수도 있다고 보고서를 쓰면서 우리는 연신 그런 짓을 한다. 새삼 새로울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알던 지식이 살아 움직인다.” (리나 구스타브손,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
현장에서는 동물권이 확장돼야 동물복지가 가능해진다고 입을 모은다. 전 대표는 “여태까지는 동물복지가 기본이고 동물권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며 “인권이 확대된 게 복지인 것처럼 모든 동물의 권리가 있은 다음에야 동물복지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물권과 동물복지가 현실에서 충돌하는 이유에 대해 박진영ㆍ오창룡 역자는 “동물복지 개념이 인간의 관점에서 정의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이익을 위해 곧 희생될 동물의 고통을 사는 동안만 덜어주는 것이 동물복지라는 설명이다. 이들은 “동물 처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확산하는 국내의 현시점에서 동물권 혹은 동물복지를 과잉으로 대비시키는 접근은 불필요하다”며 “동물에 대한 생명 존중을 확대하는 큰 방향에서 여러 긍정적인 흐름을 만들어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닭, 돼지, 소 등 축산동물의 고통을 줄여주는 정책은 기본적인 동물권 보장의 하나로 추진할 수 있는 사안이며 동물 실험, 동물 학대, 동물 엔터테인먼트, 야생동물 관리 등의 쟁점 역시 동물의 생명과 가치를 존중하는 동물권 논의로 접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찾아
동물권 논의 내부에서도 다양한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박진영ㆍ오창룡 역자는 “동물권은 그 어떤 외부적인 기준에 구애받지 않는 동물 본연의 내재적 가치로, 개체의 생명과 삶을 존중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면서도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어떤 범위까지 존중해야 하는지는 지속적인 논쟁의 대상이다”고 말했다.
가령 쾌고감수능력이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일 수 있을까. 현행 동물법상 이 기준에서 제외되는 동물이 있다. 축산동물이 대표적이다. 김 변호사는 “식용으로 키우는 축산동물은 ‘먹으려고 키우는 동물인데 살아있는 존재로 봐야 하느냐’는 사람들의 인식 때문인지 현행 동물보호법 적용에서도 제외돼 있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법 시행령 제2조에서는 파충류, 양서류, 어류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동물의 범위에 포함하고 있으나 “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제외한다”는 단서 규정을 두었다.
축산동물의 생명권을 보장하려면 소비자의 시선에서 벗어나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 고민하고, 공장식 축산과 동물 생명 경시가 인류를 어떻게 공멸의 길로 내몰고 있는지 공론화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동물을 단순히 고통받는 수동적인 존재로 바라본다는 지적도 있다. 천명선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만이 동물을 설명하는 전부는 아니다”며 “동물도 나름의 목적을 갖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인간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천 교수는 “쾌고감수능력이 동물과 인간에게 같이 적용되면 ‘살아있는 동물보다 쾌고감수능력이 없는 식물인간에게 실험하는 게 낫다’는 논리로 연결될 수 있다”며 “이때 사회가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굉장히 많은 얘기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물권을 쾌고감수능력에서 나아가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섬나리 활동가는 “쾌고감수능력이라는 기준은 ‘동물이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다’거나 ‘고통을 느껴도 인간보다 열등하니 괜찮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데 유용했으나, 한편으로 동물권을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이 아닌 개별적인 윤리 문제로 축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은영 활동가는 “인간의 권리를 내려놓고 동물의 권리를 올리자는 게 아니다”며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들과 동떨어진 채 ‘어떤 동물의 고통이 있느냐 없느냐’ 논하기보다는, 동물과 인간의 재설정된 관계와 공동체를 중심으로 동물을 대변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관계성을 회복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물권을 폭넓게 고민하는 일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뿐 아니라 공동체를 구성하는 방식에 커다란 질문을 던진다. 전 대표는 “영미권에서는 동물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더 나아가 정치적인 주체로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동물의 기본권부터 시작해 동물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대의할 수 있을지 차츰 논의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동물에게도 정치적 권리가 있다
여기서 윤리적인 잣대 너머 동물이 사회구성원으로 갖는 정치적 권리를 논의하는 장이 열린다. 동물의 정치적 권리는 ‘동물 윤리’에서 ‘동물 정치’로 동물권을 확장한다. 셰필드대학교 정치ㆍ국제관계학과 앨러스데어 코크런 교수는 자신의 저서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에서 “이는 동물이 정치 공동체 내에서 어떤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시민과 정부 당국 등이 동물을 위해 무엇을 제공할 의무가 있는지 등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동물권의 정치화’는 동물의 권리를 정치적으로 대표하려는 시도다. 현행법부터 정치적 결사체까지, 동물에 관한 인식을 전환하기 위한 구조적 변화를 동반한다. 천 교수는 “그동안 동물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윤리적으로 얘기해왔다면, 이제는 동물의 존재를 인식하려는 움직임이 현실적인 정치 안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동물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법적ㆍ제도적 노력은 동물들의 상태를 실질적으로 나아지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근 몇 년간 동물 관련 법 개정이 급물살을 타면서 2021년 농림축산식품부는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공포했다. 법무부가 같은 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조항을 담아 입법 예고한 민법 개정안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현재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동물을 물건으로 간주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동물보호법은 축산동물처럼 매일 죽음을 앞두고 착취당하는 동물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위반해도 처벌 규정이 없어 있으나 마나 한 선언적인 법이며 개정안도 반려동물 관리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김 변호사는 “민법이 바뀌더라도 동물 절도나 강도가 발생하면 동물이 형법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개별법을 구체적으로 정비하려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개정안이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한다’고 한 것으로 미뤄볼 때 반려동물에만 초점을 맞추고 다른 동물이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동물은 우리나라 법체계에서 권리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다뤄진다. 동물권을 보장하려면 동물의 법적 당사자성이 필요하다. 2021년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동물을 ‘법인(legal person)’로 인정했다. 미 법원은 콜롬비아 마그달레나강 유역에 거주하는 하마가 소송의 원고로서 요청한 사안을 받아들였다. 김 변호사는 “지금껏 동물은 원고로서 판단조차 받지 못해 퇴소하거나 각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동물보호법을 발전시켜 동물의 소송 당사자성을 인정한다면 동물의 권익을 보다 잘 대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물의 권리를 헌법적으로 보장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독일은 지난 2002년 헌법에 동물권을 명시했다. 독일 헌법 20a 조항은 “국가는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으로서, 헌법 질서의 범위 내에서 입법을 통하여 그리고 법률 및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행정과 사법을 통하여 자연적 생활기반과 동물을 보호한다”고 명시한다. 독일은 이 조항에 ‘동물(und die Tiere)’을 삽입했다.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독일이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미래 세대에 물려주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동물에 대한 책임이 국가에 있음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헌법에 동물권을 반영하는 게 모든 동물 문제에 종지부를 찍는 건 아니다. 박진영ㆍ오창룡 역자는 “독일에서 수평아리 분쇄 문제는 여전히 답보 수준인 반면 프랑스는 헌법에 동물권을 명시하지 않지만 최근 달걀의 성별 감지기를 도입해 수평아리 분쇄 논란을 종식했다”며 “헌법의 동물권 명시가 만능은 아니지만, 인간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동물이 쉽게 희생되는 걸 막고자 최소한의 방향과 개념을 제시하는 헌법 수준의 원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민사회에서 동물권을 위한 정치ㆍ사회적인 변화를 길어 올리기도 한다. 디엑스이를 비롯한 시민 활동가들은 ‘모든 동물의 불가침한 기본권’을 명시한 동물권리장전 제정 운동을 이끄는 중이다. 동물권리장전은 동물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 기본권을 골자로 한다.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양계장에서 구조된 닭 ‘로즈’의 이름을 따 ‘로즈법’이라고도 불린다. 은영 활동가는 “동물권리장전 법제화는 많은 시민이 합의를 만들고 결집하는 과정을 동반한다”며 “단순히 의제를 올리고 국회의원에게 청원하는 게 아니라 ‘동물과의 관계가 잘못됐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고 거리에 나와 함께 외치면서 시민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정치적 노력”이라고 말했다.
동물 관련 법안의 더딘 진척 상황을 고려하면 국회에 ‘동물을 위한 정치’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동물의 정치적 권리를 대변하는 동물당을 창당해 동물의 법적 지위를 개선하자는 논의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시작되고 있다. 동해물은 동물법비교연구회와 합동 세미나를 열어 동물당의 필요성을 논하고 온라인 비건 커뮤니티 ‘비건 클럽’을 기획하는 등 창당에 필요한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김 변호사는 “구체적인 방법론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동물당이라는 결사체를 통해 정치적 합의를 모아내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20개 정도의 국가에서 동물당을 실제로 창당해 동물권을 지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물의 성원권과 참정권 등을 논의하려면 당내 위원회 차원을 넘어 동물의 정치적 주체성에 관한 최소한의 합의를 이뤄낼 수 있는 동물당을 우리나라에서도 장기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관련 시민단체들은 판단한다.
동물권은 개체의 윤리를 넘어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꾸리는 정치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박진영ㆍ오창룡 역자는 “인간과 동물을 거대한 생태계 각각의 평등한 주체로 인식하고, 바람직한 공생 방법을 모색하는 다양한 논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같은 책에서 짚었다. 동물의 지속적인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가 미래의 상생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동물의 생명과 권리를 존중하는 것과 인간 중심성 사이의 까다로운 방정식을 풀고 있다.
〈공동기획 주간경향·ESG연구소·(사)ESG코리아·감신대 생명과평화연구소〉
청년ESG프로젝트팀 김현식 연세대 경영학과 4학 복건우 연세대 행정학과 4년 ESG연구소 안치용 소장 이윤진 연구위원
▶ 최신 뉴스 ▶ 두고 두고 읽는 뉴스
▶ 인기 무료만화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주간경향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