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부실 점검'이 부른 시신 상온 방치
"그게 말이 돼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상식적으로…."
구청도, 시청도 그랬다. 지역에 있는 장례식장에서 시신 13구를 상온에 둬 일부는 심하게 부패했단 취재 내용을 전하자 돌아온 반응이었다.
수화기 너머 응답에 처음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있을 법한 일이 아니니까,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짓이니까 아무리 담당자여도 놀라는 건 당연했다. 문제는 이런 반응이 반복됐단 거다. 구청도, 시청도 놓친 부분을 자꾸 취재해서 전할 때마다 매번 같은 식으로 답했다.
'아, 이 사람들 일 쉽게 하는구나.' 그제야 이해가 됐다. 일주일 사이 경기 고양시에서만 장례식장 2곳이 시신 상온 방치 문제로 적발된 이유를 말이다. 리포트에 담지 못한 내용이 많은데 그냥 두면 두 번이나 겉치레용 '부실 점검'을 한 데 대해 부끄러운 줄 모를까봐, 그래서 반성도 개선도 없을까봐 이렇게나마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구민도, 시민도 "상식적으론 그럴 수 없다"는 막연한 믿음보단 '상식적인 일 처리'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시작하기에 앞서,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임할 이 지역 대다수 공무원분들이 이 글에 유감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노고에 늘 감사한 마음이다.)
3월 29일과 30일, <SBS 8뉴스>는 시신 13구를 상온에 둔 고양시 덕양구의 한 장례식장에 대해 다뤘다. 일부 시신은 이 과정에서 심하게 부패해 냄새가 진동할 정도였다고 한다. 장례식장 측은 섬유탈취제를 뿌려 냄새를 지우려 했다고 한다. 유가족이 알지 못 하도록 입막음을 했단 증언도 확보했다.
"심하게 부패한 냄새" 취재의 시작
현장을 찾았다. 여러 날 장례식장 주변을 서성였다. 장례식장을 드나드는, 직간접적으로 상황을 알고 있는 여럿을 만나 상황을 물었다. 생각보다 안치실 상황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증언뿐만 아니라, 부패가 심하게 진행된 시신 모습을 여러 장 확보했다. 일부는 그저 며칠 상온에 방치됐다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해 보였다.
"빈 관" 말만 믿고 돌아선 첫 점검
지침상 시신은 영상 4도 이하로 보관되어야만 한다. 이 장례식장의 안치실에는 저온 안치 냉장고가 6개뿐이었다. 나머지 관들은 상온인 이 장례식장 안치실 바닥에 여러 겹으로 쌓여 있었다. 10구가 넘는 시신이 든 관이 걸리지 않았다는 게 놀라웠다. 당시 구청 직원들은 "빈 관이다", "내일 나갈 관이다"라는 말만 믿고 그냥 돌아섰다고 한다.
해명을 요구하자 담당자는 "그렇다고 유가족의 동의 없이 관을 열어볼 순 없지 않느냐"고 했다. 이해가 갈 법했다. 점검 나온 공무원이 가족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누운 관을 열어봤다면 그 자체로도 뉴스감일 테니까. 3월 29일 첫 보도에서 점검 당시 발견하지 못 하고 그냥 지나친 점을 문제 삼지 않은 이유다.
"정상 처리했다" 또 말만 믿었다
다음 날인 3월 29일 아침에도 구청과 시청 직원들은 다시 장례식장을 찾았다. 안치실에 있던 13구의 시신은 자취를 감춘 채였다. 업체 측은 "13구의 시신이 이미 발인과 화장 절차를 거쳐 남아있지 않다"고 밝혔다. 직원들은 이 말을 믿었다. 13구의 시신이 정상적으로 처리됐다면 응당 남았을 서류를 확인하는 노력은 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이날 오후엔 "언론 보도를 통해 적발된 장례식장에서 시신 13구를 정상적으로 처리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보도자료까지 내려 했다. 보도자료가 배포되기 직전, 취재진이 "주차장에 있는 차량에 시신 여러 구가 놓여있으니 다시 나가보라"고 알리면서 배포는 무산됐다.
"수사 사안 아닌데…" 확인도 부족했다
고양시청은 SBS 연속 보도 다음 날인 3월 31일, 장례식장 측을 경기 고양경찰서에 수사 의뢰했다며 보도자료를 냈다. 혐의는 시신을 위생적으로 관리하지 않은 장사법 위반 1개였다.
하지만 다음 날 경기 고양경찰서 수사 담당자는 SBS와의 통화에서 "장사법 위반은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니라 과태료 사안이고, 따라서 수사가 이뤄질 수 없다고 전날 구청에도 말했다"고 했다. 애초 수사 사안이 될 수 없는데 수사 의뢰를 했다고 대대적으로 알리는 보도자료를 낸 게 눈속임을 위한 건지, 아니면 수사 사안이 못 된단 걸 정말 몰랐던 건지 구청과 시청에 문제 제기했다. 어느 쪽이든 양쪽 다 문제였다.
담당자는 "거짓으로 단속을 방해한 (형사 처벌이 가능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추가해 재차 수사 의뢰하겠다"고 사과했다. 또 "매일 시내에 있는 장례식장 9곳에 대해 현장 점검을 실시하겠다"면서 "앞으로 미비한 부분이 없도록 잘 챙기겠다"고 거듭 이해를 구해왔다. "이번 일은 이제 마무리가 된 사안이니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고도 했다. "지금 마무리가 된 건 없고, 어떻게 처리되는지 계속 지켜보겠다"고 답했다. ('경찰서에 확인해 따져 묻지 않았더라면, 그냥 넘어갔더라면 과연 추가 조치가 이뤄졌을까'하는 의구심은 남았다.)
이곳만의 문제일까
코로나19 이전, 우리나라의 일평균 사망자는 700-800명대였다. 코로나19 하루 사망자가 요즘은 많을 땐 400명이 넘기도 한다. 오늘(5일)은 209명, 엿새 전엔 432명…. 최근 일주일간 코로나19 일평균 사망자는 320명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초과 사망자 수까지 합치면, '코로나19 관련 사망자'는 2배 이상 많을 수 있다고 내다본다. 확진 판정을 받기 전 숨지거나 완치된 이후 합병증으로 숨지는 경우 등은 질병관리청의 코로나19 사망자 통계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하루 평균 320명보다 2배가 많은 640명이 매일 코로나19와 관련해 숨진다고 가정하면 기존의 화장, 장례시설 규모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정부는 초과 수요를 따라 잡기 위해 잇따라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장례 대란을 막기엔 역부족이란 게 현장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사각지대는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한 장례식장이 양심을 져버렸다고 해서 탓하기만 할 수 없는 건, 수요를 못 따라잡는 구조적인 배경이 있어서다. '비단 이곳만의 문제일까'란 질의에 여러 장례지도사들은 "저온 안치 냉장고가 부족한 장례식장은 많고, 알게 모르게 조금씩은 시신을 상온에 방치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발각되지 않은 채 상온에 방치되고 있는 시신이 더 있을 수 있단 얘기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이런 장례 대란은 전례에 없던 일이라고, 장례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렇다고 이 사태가 어서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건 무책임한 처사다. 상온에 방치되다 부패하는 시신 한 구 한 구가 일평생을 헌신하고 사랑한 가족이고, 이웃인 걸 잊어선 안 된다. '코로나19 하루 사망자 ○○○명'이란 수치 속엔 한 명 한 명의 존엄한 사연이 있듯 말이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 사회의 수준을 볼 수 있단 말이 있다. 우리는 과연 어디쯤 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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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희 기자chef@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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