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경사에 '휘청', 작은 턱에도 '덜컹'..장애인 출근길 동행해보니[영상]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로 '장애인 이동권' 뜨거운 감자
대중교통 타고 출근 시간대 장애인과 동행해보니.."작은 턱도 큰 장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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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가파른 경사에 '휘청', 작은 턱에도 '덜컹'…장애인 출근길 동행해보니 (계속) |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가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부각 시켰다. 혼잡한 출근길 지하철 한 칸을 장애인들이 점거하자, 일부 시민들은 불편을 얘기했고 공당 대표는 시위 방식을 문제 삼았다.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장애인들이 이동하자 그 자체로 눈길을 끌었다.
해당 시위를 두고 논쟁이 거세지는 가운데, CBS노컷뉴스는 실제 장애인들이 지하철 등에서 마주치는 '장벽'이 무엇인지 직접 동행하고 분석했다. 같은 길을 가더라도 장애인들은 비장애인과 비교해 2배 정도의 시간이 더 걸렸으며 일부 지하철 역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아 휠체어로 이동하기 어려웠다. 또 시각장애인은 활동지도사 없이 외출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인도 대신 차도로…"휠체어는 갈 수 없는 길"
동이 트기 전인 지난달 31일 새벽 6시, 지체장애인 류호상(34)씨는 전장연 삭발식 참석을 위해 일찍이 외출에 나섰다. 그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장애를 가졌다.
'장애인 이동권'을 외치는 시위에 참석 하러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의 '이동'은 위태로웠다.
오피스텔 1층 로비와 인도를 잇는 경사로부터 문제였다. 가파른 경사 탓에 휠체어에 속도가 붙어 순식간에 방향을 잃었다. 중심을 잡으려 급히 땅에 댄 두 발이 브레이크 역할을 했다.
류씨는 흔들리는 휠체어에 놀란 취재진에 "괜찮다"고 미소 지으며 "매번 이런 식으로 내려와서 다치지 않는 요령이 생겼다. 하지만 매번 긴장된다"고 했다.
이어 "여길 내려오다 골목길을 지나는 차량과 부딪히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며 "이후 구청측에 반사경 설치를 부탁했다"고 말했다. 현재 그의 오피스텔 입구엔 2개의 반사경이 설치됐다.
인도에 올라 300m 남짓 이동한 류씨는 이내 차도로 이동하는 방법을 택했다. 인도에는 전동 휠체어가 다닐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이동하기에도 좁아 보이는 인도에는 근처 가게에서 내놓은 것으로 보이는 쓰레기와 박스 등이 도보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다.
차선책으로 차도로 넘어온 류씨는 "울퉁불퉁한 인도가 많아 도로가 더 편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류씨 옆으로는 대형 버스와 자가용이 속도를 내며 달렸다. 도로의 패인 부분이나 작은 턱을 넘을 때면 그의 온몸이 흔들렸다.
현재 전동휠체어는 도로교통법상 보행자로 분류된다. 휠체어를 이용자 신체의 일부로 보기 때문에 인도로만 주행할 수 있다.
1호선 안양역에 도착해서도 난관은 끝나지 않았다.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간격이 넓지 않은지 확인해야 했다. 류씨는 "휠체어 앞바퀴의 경우 틈보다 작은 경우가 있어 틈에 빠지면 앞으로 고꾸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류씨는 "경복궁 역처럼 틈이 넓은 경우엔 차라리 뒤로 돌아 탄다"며 "뒷바퀴가 앞바퀴보다 너비가 넓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바퀴로 탑승하다 고꾸라지면 나도 다치지만 넘어지는 휠체어에 다른 승객도 다칠 수 있다"며 "승강장 문을 등지고 돌아 지하철을 타는게 공포스럽지만 꾹 참고 탄다"고 했다.
그는 이날 열차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지인을 만났지만, 나란히 곁에서 얘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노약자석 맞은편에 마련된 휠체어 칸이 휠체어 2대를 수용할 수 없는 탓이다.
류씨는 종로3가 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 타야 했다. 비장애인들은 바로 보이는 계단을 이용해 5분이면 환승이 가능하지만 류씨의 경우 엘리베이터를 찾아 10분 정도를 이동한 뒤 승강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사 내에 설치된 휠체어 리프트에 대해 류씨는 "리프트는 아무래도 안전장치가 잘 안 돼 있다는 생각에 타는 걸 꺼리게 된다"고 했다.
류씨는 이날 오전 7시 40분경 경복궁 역에 도착했다. 비장애인이 이동할 경우 1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었지만 류씨에겐 1시간 40분이 필요했다.
이날 류씨가 참석한 시위에선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용기 회장이 삭발에 나섰다. 그는 머리카락을 잘라내기 전 "내가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은 정말 대단하지 않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다. 이동하고 싶고, 이동할 때 떨어져 죽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거리는 정글"… "시각장애인이 혼자 나서기엔 불친절한 거리"
지체장애인뿐 아니라 시각장애인들도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다. 지난 1일 오전 시각장애인 곽남희(31)씨의 출근길을 취재진이 함께했다. 그는 "시력은 거의 잃었고 밝음과 어두움을 인지할 수 있는 정도"라고 했다.
이날 오전 9시쯤, 집 앞에 미리 나와 있던 곽씨는 "오늘은 일찍 나오셨네요"라는 활동지원사 박대석씨의 말에 고개를 돌려 인사했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 곽씨는 한 손엔 흰지팡이 들고 활동지원자의 팔에 나머지 한 손을 올린 채 걸었다. 그는 출근 시엔 대부분 활동지원사와 동행한다고 했다.
"활동지원사 없이 나오시는 시각 장애인들은 정말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늘 가는 길이어도 이동하는데 위험이 엄청나게 많아요"
곽씨와 동행하던 활동지원사 박씨가 말했다. 곽씨 또한 몸에 익은 출근길이지만 활동지원사 없이는 이동이 어렵다고 했다.
곽씨는 "혼자 나올땐 흰 지팡이를 짚으며 집중해서 걸을 수밖에 없다. 중간에 주차장이 나온다든가 하면 유도블럭이 끊겨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경우 방향 감각을 잘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아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걷는 동안, 박씨는 남희씨의 눈이 되어 그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인도에 턱이 있는 경우 박씨가 미리 파악하고 동선을 옮겼다. 또 차량 진입을 금지하는 의미로 세워놓은 주차방지턱(볼라드)이 눈 앞에 있을 경우 곽씨가 부딪히지 않도록 미리 살짝 방향을 틀었다. 활동지원사는 연신 "앞에 턱이 있어요. 이번엔 이쪽으로 가야해요"라고 말했다.
곽씨는 "홀로 이동할 땐 버스가 올 때마다 매번 버스를 세워 몇번 버스인지 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버스 노선도를 볼 수 없어 서울시내 버스들의 노선을 다 외웠다.
직장까지 바로 가는 710번 버스에 탑승해 곽씨가 제일 먼저 하는 건 버스 카드를 찍는 단말기를 찾는 것. 곽씨는 "버스마다 단말기 위치가 다른 탓에 카드를 찍는 단말기가 어디에 있는지 찾는게 늘 어렵다"고 했다.
이날도 곽씨가 단말기가 있을 법한 위치에서 손을 좌우, 위 아래로 10여초간 흔들고 나서야 '삑'하는 소리가 울렸다. 곽씨가 허둥지둥하는 모습에 버스 탑승객들의 시선은 금방 그에게 집중됐다. 곽씨가 단말기를 찾는 동안 출근길 버스를 타려는 승객들로 금세 줄이 늘어섰다.
그는 버스에 타서도 정류장을 놓칠까 안내 방송에 집중해야 했다. 그럼에도 때론 정류장이 아닌 곳에 내린다고 했다. 곽씨는 "빨리빨리 문화 탓인지 정류장보다 훨씬 전에 내려 줄 때도 있다. 도로 한가운데 내리기도 하는데 이곳이 어디인지 파악할 수 없어 당황스러웠던 적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CBS노컷뉴스가 이틀 간 장애인들의 대중교통 이용길을 동행해보니, '예전보다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장애인의 이동을 단념 시키는 현실은 여전했다.
2020년 국토교통부 '교통약자 이동편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 응답자의 61%가 가장 개선이 시급한 교통수단으로 버스를 꼽았다. 장애인 택시(11.9%)와 지하철(8.8%)이 뒤를 이었다.
또 가장 개선이 시급한 여객시설로는 버스정류장(47.1%)이 1위로 꼽혔다. 다음으로는 여객자동차(버스)터미널(25%)과 택시정류장(11.2%), 지하철역(10.2%)가 뒤를 이었다.
곽씨는 비장애인이 보는 교통 표지판에 비해 점자 안내도 늦게 바뀐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선이 연장된 5호선의 경우) 스크린도어에 묵자(墨字)는 5호선 하남검단산 ·마천으로 바껴 있지만 점자(點字)는 여전히 상일동 ·마천 방향으로 표기돼 있다"며 "비장애인이 읽는 글씨는 금방 바꾸는데 점자는 빨리 안 바뀐다"고 했다.
그는 "비장애인의 편의를 위해 즉각적으로 표지판을 바꾸는 것 처럼 장애인의 편의도 같이 고려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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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백담 기자 da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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