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쉽] 북한은 뭘 믿고 '레드라인'을 넘었을까?
북한이 올해 들어 12차례 미사일 시험 발사를 단행했다. 김정은 집권 뒤 가장 잦은 횟수다. "한국은 세계에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핵무기 등에 대해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유일한 곳이다" 몇 년 전 한국에 머물렀던 외신기자의 말이다. 북한 미사일을 쐈다는 기사보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는 기사가 더 충격이 크다는 우스갯 소리도 나온다. 그런데 이번 미사일은 왜 언론에서 호들갑스럽게 보도를 했을까? ICBM 그게 뭐길래 며칠째 톱 뉴스를 장식하는가? 북한이 넘었다는 '레드라인'은 무엇인가?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지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정리했다.
ICBM, 그게 뭐길래?
신형 ICBM 화성-17형은 무엇?
북한은 2월 27일과 3월 5일, 16일 세 차례에 걸쳐 북한의 신형 ICBM인 화성-17형 시험 발사를 진행했다. 지난달 27일과 지난 5일 출력을 줄여 발사한데 이어, 지난 16일 최대 출력으로 쐈지만, 시험 발사는 실패로 돌아갔다. 한미 정보당국은 20km도 못 올라가고 폭발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보통 신형 미사일을 쏜 다음 날 대성공을 거뒀다는 대대적인 보도를 하는데, 당시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는 완전히 침묵했다.
그리고 3월 24일. 북한은 다시 ICBM을 발사했다. 북한이 발사한 화성-17형은 정점고도 6,258.5km까지 상승하며 거리 1,090km를 날아갔고 비행시간은 1시간 7분 32초였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제원은 한미일 정보당국의 분석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형 화성-17형 발사에 성공했다는 영상이 다음날 북한 주민들에게 공개됐다.
탑건? 강남스타일?…블록버스터급 홍보 영상
외신들도 이 영상에 주목했다. 영국 가디언은 '김정은, 북한 미사일 보도에서 탑건 대우받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 영상과 관련해 각종 밈(인터넷에서 패러디나 재창작의 소재로 유행하는 이미지나 영상)이 등장했다고 소개했다. 할리우드 영화 '탑건'(1986)이나 K-팝 '강남스타일'을 따서 '탑 김정은'이나 '평양 스타일'로 비유하는 패러디가 온라인에서 퍼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북한이 ICBM을 발사해 세계를 놀라게 하는 한편 이 뉴스가 국영 TV에서 방송되는 방식 역시 당혹감을 불러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스페셜리스트] 외신마저 놀라게 한 '북한판 탑건'…이게 눈속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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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기종 논란…'짜깁기 의혹'까지
속이면서까지(?) 화성-17호를 쏴야하는 이유?
▶ "김정일대학 옆 웅덩이, 지붕 날아가…2명 사망 첩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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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내적인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다수 국가는 신형 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경우 발사 실패 시 민간인 피해 등을 우려해 인적이 드문 곳에서 발사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북한은 민간인 피해보다 인민에 대한 홍보에 더 방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평양 시내에서 북쪽으로 불과 10km 떨어진 평양순안국제공항에서 ICBM 시험 발사를 감행했다. 하지만 화성-17형은 20km도 날아오르지 못하고 공중 폭발했다.
물론 북한의 ICBM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검증된 바가 없다. 사정거리 면에선 ICBM의 자격은 충분하다. 하지만 북한은 지금까지 고각 발사 실험만 해 왔다. 정상 각도는 30-45도로 발사해야 하는데 대기권 밖으로 나갔다 대기권으로 들어오는 재진입 기술에 대한 검증은 아직 되지 않았다. 대기권 재진입 시 대기권에 튕겨 나가지 않도록 음속 20배 수준의 속도, 자세 제어 궤도 유도 기술과 제어 장치가 필요하다. 대기권에 진입한다고 해도 1만도 내외의 마찰열을 견뎌야 하는데 탄두부의 내열합금 기술이 핵심이다. 그런데 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에 쏜 ICBM이 화성-17형인지, 15형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15형이든 17형이든 이번에 쏜 ICBM이 더 멀리 가고, 높이 올라갔고 과거보다 기술적으로 한 단계 올라선 것은 기정사실이다.
'레드라인'을 넘었다? 어디까지는 괜찮은 건데?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게 되는 것을 레드 라인이라고 생각한다"며 구체적으로 레드라인을 언급한 적은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의 이 언급을 두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레드라인이다', '레드라인의 전략적 모호성을 버렸다', '레드라인을 어겼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가 빠졌다'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북한 스스로도 '레드라인'을 ICBM 발사로 보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 2018년 미국과의 협상을 위해 "핵실험과 ICBM 시험 발사를 하지 않겠다"라고 스스로 선언했다. 북한은 남북미 화해 분위기 속에 핵실험과 ICBM 발사 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한 뒤, 남북미 관계 교착 국면에서도 이 마지노선은 유지해 왔다.
2017년 vs 2022년…5년 전과 닮은꼴?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발사 다음날인 25일 '화성-17형' 성공적 발사소식을 대대적으로 전했다. 5년 전 '화성-15형' ICBM 발사 뒤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을 당시 기사와 거의 비슷해 눈길을 끌었다.
2017년과 올해는 여러모로 닮아 있다. 북한은 지난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같은 해 11월까지 11차례에 걸쳐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감행했다.
당시 핵과 미사일 개발로 북한은 국제적 고립 속에 있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결의했다. 북한의 2017년 11월 29일 ICBM 도발 때문에 채택된 안보리 결의 제2397호는 북한이 또다시 핵실험이나 ICBM 발사를 할 경우 대북 석유 수출량을 축소할 것임을 공약한 '트리거' 조항을 도입했다. 즉, 북한의 이번 ICBM 발사에 따라 안보리 회의가 열릴 경우 추가 대북제재가 자동적으로 논의된다는 것이다. 당시 안보리의 제재는 소원했던 북한과 중국의 관계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던 북한은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 복원에 나서더니 우리 특사단 방북을 활용해 북미 정상회담까지 연결 시켰다. 눈에 띄는 것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 방문을 성사시키며 북중 정상회담으로 북중 우호관계를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 [취재파일] 북한 외교의 승리…미·중 경쟁 속 운신 폭 넓힌 북한
[ https://bit.ly/35uRHbn ]
하지만 지금은 당시와는 상황이 다르다. 북-중 관계와 북-러 관계가 달라졌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의 진영 대립 국면에서 북한은 러시아와 반미, 반서방의 손을 들어줬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러시아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공개 표명하기도 했다. 지난 1월 북-중 열차 운행이 다시 시작된 가운데, 북-러 간 육로 교류 재개 동향 또한 일부 관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한반도전략연구실장은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ICBM 발사와 같은 북한의 고강도 도발이 이에 반발해 강력한 대응을 도모하는 한미일 등의 결속을 강화하게 되는데 이는 역으로 북중러의 결속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노림수'를 보는 관점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1월 북한의 의중을 대변하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해석을 살펴보자. 조선신보는 "조선(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벼랑 끝 전술'을 쓴다고 본다면 그것은 오판"이라고 주장했다.
SBS 안정식 북한 전문기자는 "이 주장을 사실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미국과의 대결이 장기적이고 북한의 궁극적인 과제가 힘을 키우는 것이라는 주장은 눈여겨볼만 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미국의 장기적 위협'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면, 핵 능력을 부단히 발전시키는 북한의 행보가 단순한 대미 협상용이 아니라는 북한의 주장은 타당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실질적인 대북 정책은 이를 전제로 수립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 [취재파일] "미국의 장기적 위협 대처해야"…북한은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다
[ https://bit.ly/3x3kC1k ]
4월엔 북한발 긴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4월 15일 김일성 생일 110주년을 맞이해 강력한 무력 도발을 준비할 가능성이 높다. 또 4월은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는 한미연합훈련도 예정돼 있다. 북한은 2017년 이후 중단했던 지하 핵실험을 재개하기 위해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폐쇄했던 풍계리 핵실험장을 복구하는 정황이 포착된 건데, 올해 안에 핵실험 재개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 북한이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쏜다고 해도 이상할 상황이 아니다.
[구성: 장선이 기자 / 콘텐츠디자인: 옥지수 ]
장선이 기자su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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