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기만술이든 시간벌기든, 한계 상황 온 건 분명
(시사저널=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러시아가 3월29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협상단과의 5차 평화협상을 마친 뒤 "신뢰 강화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와 체르니히우에 대한 군사활동을 대폭 축소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한때 전쟁의 포성이 멎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을 낳게 했다.
하지만 협상 뒤에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격렬한 공격을 계속하면서 협상이 실제 효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일고 있다. 프랑스의 24시간 뉴스방송인 BMM-TV는 체르니히우가 밤새 포격을 받았다고 현지 우크라이나 관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게다가 러시아 국방부는 이튿날인 3월30일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러시아 당국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 대신 부르는 용어)을 계속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군은 지상군의 포격과 공군의 폭격, 그리고 지대지 미사일로 우크라이나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군 보급로 차단 전략 주효
이런 상황으로 인해 러시아의 상황과 의도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의 숨은 의도와 관련해 첫째 우크라이나와 서방에 대한 기만, 둘째 러시아군의 재정비와 공격 목표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위한 시간벌기, 셋째 러시아군이 실제로 한계상황에 이르러 전쟁 자체를 접으려는 수순이라는 분석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우선 '군사활동 축소'를 포함한 러시아의 모든 발언은 기만술일 가능성이 항상 있다. 이젠 서방 언론에서 '거짓말의 제왕'으로 불리는 푸틴 대통령과 크렘린의 거짓말·속임수·디스인포메이션은 너무도 일상적이 됐다. 푸틴은 애초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의도가 없다"는 말을 반복하다가 갑자기 침공에 나섰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이라 부르지 않고 '특별군사작전'이라는 명칭을 고집한다. 푸틴과 러시아에 대한 불신은 글로벌 담론이 됐다.
이에 따라 영국 등에선 러시아군이 가장 진격이 지지부진한 키이우 주변의 최전선에서 일부 부대를 일시적으로 후방으로 이동시켜 병력과 장비를 보충하고 재정비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러시아군이 힘을 보충한 뒤 다른 지역으로 옮겨 공격 역량을 집중하는 새로운 '선택과 집중 작전'에 들어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를 통해 푸틴이 개전 당시 언급했던 전쟁 명분인 '돈바스 지키기'에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주(州)와 루한스크주는 동부 절반 정도를 분리주의 세력이 차지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이들이 세운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을 승인했다. 어차피 키이우를 점령하기 힘드니 우크라이나 동남부 돈바스 지역에 전력을 집중해 이른 시일 안에 전쟁을 마치려고 한다는 관측이다.
게다가 러시아는 현재 전체 육군 28만 명의 70%를 우크라이나에 투입하고 있다. 공세를 지속하려면 병력을 2~3개월 단위로 교체해 휴식과 보충, 재정비를 해야 한다. 특히 전차·장갑차나 헬기를 비롯한 장비는 고장 수리는 물론, 일정 기간 운용한 뒤에는 정비창에 보내 정비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여력이 부족하다. 실제로 러시아 우랄산맥 동쪽의 스베르들롭스크주의 니즈니타길에 있는 세계 최대 주력전차 생산기지인 우랄바곤자보드는 최근 부품 공급 부족 또는 지연으로 생산을 중단했다고 프랑스 BFMTV와 미국 군사전문 인터넷 매체인 SOFREP가 3월23일 보도했다. 이런 상황은 러시아군 기갑과 지상 수송장비의 수리와 정비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러시아군 헬기도 마찬가지다. 헬기 부품은 러시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들여온다. 해외에서 수입하는 부품은 일단 전쟁으로 인한 제재로 러시아로 들어올 수 없다. 더욱 큰 문제는 핵심부품인 기어박스가 우크라이나 공업도시인 자포리자에 있는 크라스니 옥탸브르(붉은 10월) 공장에서 전량 생산돼 공급돼 왔다는 점이다. 구소련 시절 지역별 분업의 유산이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으니 헬기용 기어박스가 자포리자에서 러시아 헬기 공장에 공급될 수 없게 됐다. 이는 생산은 물론 수리와 정비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현재 수많은 헬기가 작전에 투입되는 전쟁 상황에서 부품 수요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욱 큰 문제는 보급이다. 러시아군이 심각한 보급 부족으로 전투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건 이젠 뉴스도 아니다. 트위터나 유튜브 등에는 우크라이나군이 대전차 미사일과 드론으로 러시아군 기갑부대를 공격하는 장면이 주로 나온다. 서방의 SNS 이용자들의 관심을 더 끌 수 있는 자극적인 동영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은 실제론 강력한 장갑을 갖춘 기갑차량보다 러시아군의 약한 고리인 보급 트럭에 공격을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게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저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술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술은 전투에서 이기지만, 보급은 전쟁에서 이긴다'는 군사 격언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영국·미국은 2018년부터 우크라이나에 견착식 미사일과 함께 교관을 보내 대전차·지대공 미사일 운용과 게릴라전 교육을 해왔다. 이번에 그런 장기 교육·훈련의 효과가 톡톡히 발휘되고 있는 셈이다.

양국, 여론 감안해 어디까지 양보할지가 관건
러시아가 수렁에 빠진 또 다른 문제는 통신 체계다. 최근 러시아군 장성 최소 7명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잇따라 사망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러시아군의 무선통신이 암호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우크라이나군이 도·감청하거나 방해·차단·간섭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미국의 사이버 방어력 지원이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이 통신을 제대로 유지하고, 국민이 휴대전화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2014년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병합할 당시 우크라이나에 대대적인 사이버 공격을 가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컴퓨터의 40% 정도가 포맷돼 통신과 군사, 행정이 상당수 마비됐다. 하지만 이번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이 포로가 된 러시아군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제공해 고향의 부모와 통화, 심지어 영상통화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동영상이 SNS에 줄이어 오르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결국 러시아는 현재 전쟁 지속 능력이 떨어져가는 상태라고 진단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도 이런 기회를 노리고 협상을 가속활할 가능성이 크다. 만일 전쟁이 장기화해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된다면 러시아에도 우크라이나에도 불행이기 때문이다. 푸틴이 적정한 명분만 얻으면 작전 목표 달성과 승전을 선언하고 전쟁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젤렌스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각국의 내부 정치와 여론상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일 따름이다.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영웅시대 막강 화력 업고 새로운 기록 세울까 - 시사저널
- 新 막장 양강 시대…김순옥 《펜트하우스》와 임성한 《결혼작사 이혼작곡》 - 시사저널
- 미스터트롯 톱7 탄생 2년, 운명이 갈리고 있다 - 시사저널
- “살려주세요” 소리에…폭행·도주 몰카범 잡은 배달기사 - 시사저널
- 푸틴이 그랬듯 시진핑도 ‘대만 침공설’ 현실화 시킬까 - 시사저널
- “시진핑, 올가을 대만 무력 침공”…러 기밀보고서 유출됐나 - 시사저널
- 남성보다 여성의 피부 노화가 빨라…이유 봤더니 - 시사저널
- 다이어트 최대의 적 ‘과식’…손쉽게 줄이는 세 가지 방법 - 시사저널
- 하루 ‘13분 운동’이 가져오는 ‘생명 연장의 꿈’ - 시사저널
- 잠만 잘자도…우울·불안은 ‘Down’, 행복감은 ‘Up’ -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