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환관에도 종1품 벼슬 '파격'.. 연산군은 '복종 아니면 죽음' 강요



■ 박영규의 지식카페 - ⑦ 王들의 환관 관리 Ⅱ
중종때 다시 인간적 대우 해주니 ‘일탈 환관’도 늘어… 명종 시절 박한종은 윤원형 등에 업고 조정 쥐락펴락
선조, 왜란때 자신을 지켜준 환관들에 후한 대접… 광해군도 노골적 두둔하자 곳곳서 잡음
세조 대에 권세를 누렸던 환관들은 예종 대에도 한껏 영화를 누렸다. 예종의 치세는 불과 1년 남짓한 데 이 짧은 기간 동안 무려 7명의 환관이 군의 칭호를 얻었다. 단종 대에 엄자치와 전균이 봉군되었다가 취소된 이래 세조가 전균을 다시 봉군한 것이 유일하게 환관에게 내린 군호였다. 전균을 봉군한 전례를 남긴 세조 때문에 예종 조엔 무려 7명이 봉군되는 좋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성종 대에도 이어졌다. 성종은 총애하던 환관 신운에게 종1품 벼슬을 내렸다. 임금의 특별 명령이 있더라도 종2품까지로 한정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성종은 이를 어기고 신운을 종1품 벼슬에 올린 것이다. 이때 신운에게 종1품 벼슬을 내린 이유는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의 국상 중에 신운의 고생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문신들은 극렬하게 반대했다. 종1품 벼슬은 재상에 해당하는 벼슬인데, 어떻게 환관에게 재상 벼슬을 내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더구나 국상 중에 환관이 의당 할 일을 했을 뿐이데, 그에 대한 상으로 종1품 벼슬을 가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성종은 그런 지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성종은 이렇듯 주변의 환관들에게 매우 후했다. 성종 당시에 환관 중에서 2품 이상의 벼슬을 받은 자는 여러 명이었다. 문신들이 이의 잘못을 지적하며 환관들을 지나치게 대우하지 말 것을 주청하면 성종은 심하게 화를 내며 다시는 말을 꺼내지 못하게 했다. 그런 탓에 성종 대엔 환관의 위상이 전례 없이 격상되는 결과를 낳았다.
연산군 시대의 환관들은 처신이 매우 곤란했다. 연산군의 성격이 워낙 불같은 데다 무오사화, 갑자사화 등 엄청난 정치적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가운데 연산군의 학정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연산군은 성격이 매우 독선적이라 자기에게 반항하는 자는 절대 살려두는 법이 없었고, 조금이라도 비위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가차 없이 벌을 주었다. 대신 자신에게 충성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일 없이 시키는 일에만 충실한 자는 잘 대해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잘 대해주다가 수가 틀리면 가차 없이 매를 치는 무서운 면모를 보였다.
연산군 시대의 대표적인 환관으로는 김처선과 김자원을 비롯하여 설맹손, 박경례, 서수진, 김중산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삶은 당시의 정치적 소용돌이 못지않게 부침이 심했다. 특히 김처선과 김자원의 삶은 극명하게 갈렸다. 김처선은 연산군이 사화를 일으켜 살육을 일삼자, 연산군에게 살육을 그만하라고 충언하다가 처참한 죽음을 당하였으나 김자원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에 모두 공을 세웠다 하여 공신에 올랐다. 그러나 김자원도 항상 사랑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하여 그가 태장을 맞은 것만 해도 수백 대였고, 불러도 빨리 오지 않는다고 하여 벌은 받은 것도 여러 번이었다.
연산군은 환관들의 이름을 중국의 예에 따라 모두 외자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김자원은 김신, 설맹손은 설충, 박경례는 박서, 황언손은 황양, 김영진은 김인, 서수진은 서온으로 개명하는 황당한 일을 벌이기도 했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은 비교적 환관들에게 너그러운 편이었다. 이 때문에 내관들이 행동을 함부로 하는 일도 잦았다. 특히 내관들은 자주 휴가를 내서 고향에 다녀왔는데, 그때마다 말을 타고 고향 마을을 돌아다녀 헌부의 탄핵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중종은 내관에 대한 탄핵은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궁궐의 물건을 팔아먹은 내관을 작은 벌로 다스리고 다시 쓰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
중종시대의 대표적인 환관으론 임세무, 김연손, 이숙춘 등을 들 수 있다. 임세무는 중종 18년에 곤장 100대에 해당하는 중죄를 저질렀으나 중종은 눈감아줬고, 이 때문에 여러 차례 헌부에서 상소가 있었으나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숙춘은 기생을 말에 태우고 고향 마을을 돌아다닌 죄가 있었으나 역시 벌주지 않았고, 김연손 같은 경우는 어명을 잘못 전달하는 큰 죄를 저질렀으나 그 내막을 캐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하기도 했다.
중종은 환관들에게 매우 인간적인 편이었다. 아픈 데가 있으면 굳이 의원을 부르지 않고 환관의 의견을 묻는 일도 많았고, 종기가 났을 땐 대전 환관에게 직접 환부를 보여주며 고름이 얼마나 잡혔는지 묻기도 했다. 또 설사 환관이 자신의 사사로운 물음에 대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해도 화내거나 탓하는 일이 없었다.
중종이 죽고 8개월의 짧은 치세를 남기고 죽은 인종에 이어 어린 명종이 들어섰을 땐, 환관의 입지가 종전보다 훨씬 강화되었다. 어린 왕이 오른 까닭에 문정대비가 섭정을 하였고, 이는 곧 환관들의 입김을 강화시켰다. 왕을 가장 측근에서 모시는 환관은 왕이 어릴수록 운신의 폭이 넓어지고, 권세를 부릴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명종시대를 대표하는 환관인 박한종은 이런 역학 관계를 적절히 이용하여 엄청난 권세와 부귀를 손에 쥐고 조정을 쥐락펴락 한 인물이었다. 그는 문정대비의 충복으로 일하면서 윤원형과 문정대비의 중개자 역할을 하였고, 정난정과 함께 보우를 끌어들여 유림과 대결하기도 했다. 또 조정 대신들에게 숱한 뇌물을 받아 재물을 축적하는 바람에 나라를 말아먹는 삼대 원흉으로 지목되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죽은 뒤에도 1품 공신이 된 희대의 환관 재상이라 할 수 있다.
박한종 외에도 명종시대엔 권세를 누린 환관이 많았다. 박한종의 양자 박세겸을 비롯하여 문계종, 최한형 등이 그들이다. 박세겸은 양부의 권세를 믿고 공공연히 뇌물을 받아 챙기곤 했는데, 심지어 함경도 덕원 땅에 내려가서 어명을 핑계하여 역마를 타고 돌아다니며 뇌물을 거두기도 했다.
선조는 방계로서는 최초로 왕위에 오른 임금이었기에 궁중 생활을 잘 몰랐고, 그 때문에 환관에게 관대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선조 대엔 정여립 사건으로 조정이 몹시 혼란스러웠고, 설상가상으로 조일전쟁(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이 의주로 피신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끝까지 임금 곁에 남아있던 존재는 환관뿐이었기에 선조는 자신을 지켜준 환관에 대해 각별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환관들을 매우 후대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선조 대의 주요 환관으로 이봉정, 방준호, 김양보, 김기문, 김봉, 민희건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중에는 전쟁 중에 왕을 호종한 공으로 작위를 받고 공신 목록에도 오른 인물도 있었다. 이렇듯 선조 시대는 임진왜란이라는 특별한 사건으로 인해 많은 환관이 공신 목록에 올랐고, 덕분에 환관들은 후한 대접을 받았다. 선조는 대신들이 듣는 자리에서 공공연히 왜란 중에 끝까지 왕을 지킨 사람은 환관밖에 없었다며 신하들을 질책하기도 했었다.
광해군 대에도 선조 대에 공신에 오른 환관들이 중심이 되었다. 광해군 역시 왜란 중에 그들 환관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환관들에 대해 후한 편이었다. 광해군은 왕위에 오르자 곧 이들 내관의 벼슬을 올려줬는데, 이에 대해 문신들이 대거 반발하며 올린 벼슬을 다시 환수하라고 맞섰다. 하지만 광해군은 끝내 벼슬을 환수하지 않았다.
이렇게 왕이 환관들을 노골적으로 두둔하다 보니, 환관들의 태도가 매우 거만해지는 문제를 낳기도 했다. 심지어 왕의 시급한 명령도 제때 이행하지 않는 환관들이 속출하여 광해군이 단단히 마음을 먹고 그들을 벌주기도 했다. 그러나 환관들의 나태한 태도는 쉽게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늙은 환관이 왕의 국정 처리 태도를 빈정거리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광해군은 그냥 웃어넘겼을 뿐 크게 질책하지 않았다.
광해군 대엔 나이 많은 내관들이 물러나거나 죽었는데, 이 때문에 대전에서 일할 승전색이 모자라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광해군은 급기야 초상 중에 있던 한신, 최대청, 최봉천, 김인 같은 환관들을 불러들여 대전에서 일을 보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작가
■ 용어설명
무오사화·갑자사화 : 연산군 시대를 뒤흔든 정치적 사건. 무오사화는 신진 사류가 훈구파에게 화를 입은 사건으로 조선의 4대 사화 가운데 첫 번째 사화다. 갑자사화는 연산군 어머니 윤씨(尹氏)의 복위 문제에 얽힌 사화로 복위에 반대한 선비들을 부관참시하고 그들의 가족도 처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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