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핵공격 때만 핵사용' 바이든 공약 사실상 폐기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2022. 3. 3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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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국방부 "극단적 상황 땐 핵사용 고려" 보고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 시각) 백악관 경내 아이젠하워 행정동에서 부스터샷을 맞기 전 기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과 동맹에 대한 ‘핵 공격’에 대해서만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던 이른바 ‘단일 목적’ 공약을 사실상 폐기했다. 미국 국방부는 30일(현지 시각) 미국 의회에 제출한 ‘핵 태세 보고서’(NPR)와 ‘미사일 방어 보고서’(MDR)의 기조에 대한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은 미국과 동맹, 파트너들의 근본 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극단적 상황에서만 핵 사용을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극단적 상황’에는 핵 공격 이외의 여러 시나리오가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단일 목적’과는 다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대선 전인 2020년 3월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왜 미국이 다시 리드해야만 하는가'란 글에서 “나는 미국 핵 보유의 유일한 목적은 핵 공격을 억지하고 만약 필요하다면 핵 공격에 보복하는 것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대통령으로 나는 미군 그리고 미국의 동맹들과의 상의를 거쳐 이 신념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당시 바이든 캠프는 이 문장을 그대로 옮겨 공약으로 사용했다.

이같은 ‘단일 목적’ 논의는 ‘핵 없는 세상'을 주창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됐다. 미국의 핵무기 사용 요건을 모호하게 남겨두지 않고 단일 목적으로 규정해야 핵 전쟁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일부 군축 전문가들의 논리가 반영된 것이다. 이에 따라 2010년 미국은 핵 태세 보고에서 “다른 국가의 핵 공격 시작을 억지하는 것만이 핵무기의 단일 목적이 되는 조건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2017년 1월 바이든 대통령은 현직 부통령 신분으로 ‘핵 안전'에 대한 연설을 하면서 이를 재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유럽의 나토(NATO) 회원국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동맹국들은 미국이 단일 목적 정책을 채택할 경우 동맹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 즉 핵우산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러시아·중국 같은 적국에게 ‘핵 공격만 하지 않으면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란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핵 태세 보고 결과는 미국의 동맹 강화를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이런 의견을 받아들여 기존대로 미국이 핵을 사용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남겨뒀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는 핵 태세 보고서를 설명하며 “이번 전략적 검토를 마치면서 (바이든)대통령은 미국 핵 억지 전략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표현했다.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미국 핵무기의 근본적 목적은 미국, 동맹, 파트너에 대한 핵공격을 억지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비록 동맹들의 반대로 정책화하지는 않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개인적 신념은 여전하다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오랜 기간 자주 언급했던 공약을 폐기하는 데 대한 지지층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또 “핵 태세 보고서는 핵무기의 역할을 축소하고 군축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재건하려는 공약을 강조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전략적 안정성을 강조하고, 값비싼 군비 경쟁을 피할 것을 모색하며, 가능하면 위험 축소와 군축 합의를 진작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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