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꿀벌 60억여 마리가 사라졌다

창녕/글 나경희 기자·사진 신선영 기자 2022. 3. 31.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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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이 죽고 양봉업계가 무너질 경우 발생할 문제는 단지 인간이 꿀을 구할 수 없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 세계 주요 100대 농작물의 71%가 꿀벌에게 수정을 의존하고 있다.
3월16일 경남 창녕군에서 양봉을 해온 노천식씨가 꿀벌이 사라진 벌통을 살펴보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텅 비어 있었다. 이 벌통도, 다음 벌통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2월10일, 벌통을 하나하나 확인해보던 노천식씨(65)의 손길이 다급해졌다. 겨울을 나기 위해 한데 뭉쳐 있어야 할 꿀벌들이 보이지 않았다. 사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500통 중에 495통이 그랬다. 살아남은 다섯 통마저 이미 꿀벌 수가 크게 줄어 있었다. “한 40여 년 벌을 키웠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크게 낙담하거나 놀라지 않는다. 그때마다 방법을 찾았다. 이번에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으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의 농장에만 생긴 문제는 아니었다. 경남 창녕군 일대에서 키우고 있는 벌통 중 4분의 3이 비어 있었다. 월동 중이던 꿀벌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벌통 밖으로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개화기를 앞두고 한창 꿀벌을 키워야 할 때인데 여왕벌이며 새끼 벌들이 보이지 않았다.

노천식씨는 어쩔 수 없이 경북 영덕에서 벌통 120개를 새로 들여왔다. 한 통에 15만원, 총 1800만원이라는 목돈이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다른 농가에 튼튼한 꿀벌을 팔고 있어야 할 시기였다. 그나마 그는 피해를 일찍 발견한 덕분에 벌통 값이 치솟기 전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3월 중순 현재의 벌통 값은 30만원에 이른다. 작은 규모로 벌을 키우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은 양봉 농장은 큰 타격을 입었다.

‘꿀벌 실종 사태’는 창녕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확인됐다. 제주부터 강원까지 피해를 안 당한 지역이 없었다. 그중 특히 처음으로 사태가 보고된 전남 해남과 경남 창녕에서 피해가 컸다. 양봉 농가를 대상으로 조사에 나선 농촌진흥청은 3월13일 결과를 발표했다. 꿀벌 실종 사태의 원인이 “지난해 발생한 꿀벌응애(진드기)류, 말벌류에 의한 폐사와 이상기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결국 특정한 원인을 지목하지는 못했다. 2006년 미국에서 꿀벌이 집단 폐사했던 군집붕괴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과 유사한 현상이라는 주장도 나왔지만 확실한 판정은 나오지 않았다.

창녕에 있는 노천식씨도 검사 결과지를 받았지만 여전히 의문스럽다. “(꿀벌)응애는 늘 있었다. 설사 응애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모든 벌통이 폐사하지는 않았다. 우리도 수십 년 동안 벌을 키우면서 쌓아온 노하우가 있는데, 말벌이 꿀벌을 공격하는 것도 늘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왜 유독 올해 들어 꿀벌들이 집단으로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을까.

징조는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꿀 수확량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흉밀(凶蜜)이 지속됐다. 지난해에는 국내 꿀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이 나는 아까시꿀(아까시나무에서 채취한 꿀) 수확량이 평년의 30%에 불과했다. 비가 많이 내린 탓이다. “작년에도 5월18일에 비가 왔다. 비가 오면 꿀을 못 뜬다. 그럼 벌들도 쇠약해진다. 꿀을 못 먹으니까.”

노천식씨가 지난해 5월18일의 날씨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5월은 양봉 농가에서 가장 중요한 달이다. 본격적으로 꿀을 수확할 수 있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별로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벌통을 들고 다니는 ‘이동 양봉업자’ 노천식씨에게 날짜와 날씨는 중요한 요소다. 그는 해마다 5월3일이 되면 경남 창녕에서 1차로, 경북 의성으로 넘어가 2차로 꿀을 수확한다. 마지막 3차로 강원 철원으로 이동하는 때가 5월17일 혹은 5월18일이다. 지난해에는 하필 이날 비가 내려 아까시꿀을 수확하지 못했던 것이다.

꽃이 피는 시기가 전국적으로 비슷해지는 경향도 흉밀의 원인 중 하나였다. “예전에는 천천히 이동하면서, 다음 지역에 꽃이 피면 그때 꿀을 땄다. 요즘엔 창녕이고 의성이고 철원이고 동시에 꽃이 피어버린다. 꿀벌도 몸이 하나인데 여러 곳을 동시에 갈 수는 없다. 그만큼 꿀이 줄어든다.” 꿀벌들이 차근차근 여러 번 수확할 수 있는 양이 일회성 수확으로 그치고 마는 셈이다.

꽃가루·꿀·온도·물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

양봉업자 노천식씨는 벌통 500개 중 495개가 텅 비자 120개를 새로 구입했다(왼쪽). 꿀벌의 사체(오른쪽). ⓒ시사IN 신선영

아까시꿀은 양봉 농가의 주 수입원이다. 아까시보다 늦게 피는 밤꽃에서 나는 밤꿀이나 잡화에서 얻는 잡화꿀도 있지만, 아까시꿀에 비하면 양이 훨씬 적다. 양봉업자뿐 아니라 꿀벌들에게도 아까시꿀은 중요하다. 노천식씨는 아까시꿀 냄새를 한번 맡은 벌들은 ‘눈빛’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아까시꿀은 한 번이라도 더 나가서 꿀을 따오려는 벌들의 욕망을 부채질한다.

비행을 나갈 때도 꿀벌은 자신의 꿀주머니에 약간의 꿀을 챙겨 나간다. 꽃을 찾는 데 실패할 경우 도로 벌통까지 돌아오기 위한 일종의 비상식량이다. 문제는 최근 흉밀이 지속되다 보니 꿀벌이 먹을 꿀조차 남아 있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영양소가 풍부한 꿀 대신 과당(설탕)을 먹고 비행을 나간 벌들은 체력이 쉽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직 겨울인데 온난화로 인해 일찍 꽃을 피운 몇몇 나무에 ‘속아서’ 추운 날씨에 벌통을 나선 꿀벌은 더욱 힘이 부친다. 양봉 농가들은 면역력이 저하된 채로 일찍 비행에 나선 꿀벌들이 꽃을 찾지 못하고 미처 벌통으로 돌아올 힘이 없어 밖에서 얼어 죽었을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있다.

노천식씨는 “꿀벌에게 필요한 건 네 가지다. 화분(꽃가루), 꿀, 온도, 물. 그런데 지금 이 네 가지 균형이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꿀벌에게 필요한 네 요소가 서로 꼬리를 물며 악순환을 거듭하는 중이다. 이상기후로 날씨(온도)가 지나치게 따뜻해지고 강수량(물)이 많아지면서, 응애와 바이러스가 번식하기 좋아졌다. 꿀벌에겐 가혹한 환경이다. 그래서 지난해에 꿀 생산량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꿀벌의 활동이 줄어들면 꽃가루가 널리 퍼지지 못해 이듬해 열리는 꽃도 줄어들고, 이는 다시 꽃가루와 꿀이 필요한 꿀벌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노천식씨는 이번 사태로 어림잡아 꿀벌 750만 마리를 잃었다. 월동에 들어갈 무렵 한 벌통 안에 있는 꿀벌의 수는 평균 1만5000마리다. 3월2일 한국양봉협회가 자체 집계한 현황을 보면 전국에서 피해를 본 벌통은 39만517개에 달한다. 지난겨울에만 꿀벌 58억5700여만 마리가 사라진 셈이다. 43년 차 베테랑 양봉업자이기도 한 윤화현 한국양봉협회 회장은 “지금 제대로 복구하지 않고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내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양봉업계가 다시는 회복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라고 우려했다.

꿀벌이 죽고 양봉업계가 무너질 경우 발생할 문제는 단지 인간들이 꿀을 구할 수 없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벌통은 사람이 먹을 꿀을 수확하기 위한 용도로만 쓰이지 않는다. 과일을 키우는 비닐하우스나 과수원, 화훼 온실에 팔거나 빌려주는 벌통이 따로 있다. 꿀벌이 꽃가루를 이리저리 묻히고 다니며 자연스럽게 식물들의 수정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만약 꿀벌이 없다면 사람들이 손에 붓 한 자루씩 쥔 채 꽃밭과 과수원을 걸어 다니며 하나하나 일일이 꽃가루를 묻혀주어야 한다. 실제로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주요 100대 농작물의 71%가 꿀벌에게 수정을 의존하고 있다. 2018년 1월 정철의 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교수(한국양봉학회 회장)가 발표한 ‘꿀벌의 가치평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 주요 작물 75종 중 52%가 꿀벌을 포함한 곤충에게 꽃가루 매개를 의존하고 있으며, 꿀벌의 이러한 행위는 5조9000억원 규모의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피해로 인해 수확용 벌통과 과수·화훼 농가에 빌려주는 벌통 가격 모두 천정부지로 솟았지만, 현재 정부의 지원 대책은 마땅하지 않다.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와 산하 행정기관인 농촌진흥청은 피해 농가들을 대상으로 농업경영회생자금, 농축산경영자금 등 금융지원 사업을 안내하고 있다. 정작 농가의 반응은 시원치 않다. 농업경영회생자금은 이미 받아놓은 대출을 낮은 고정금리로 바꿔주는 제도다. 농축산경영자금 역시 농가당 1000만원 이내로만 대출받을 수 있다.

피해 농가 구제받을 방법 없다

한국양봉협회는 정부에서 이번 사태를 특별재해로 인식하고 하루빨리 피해복구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봄벌을 사들여 키워야 5월에 꿀을 수확하고, 그 꿀로 꿀벌들을 증식시켜 다시 생태 리듬을 맞춰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뜨뜻미지근하다. 농림부 농업정책국 재해보험정책과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선을 그었다.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른 ‘재해’의 범위는 가뭄, 홍수, 태풍, 이상저온 등 자연현상으로 인한 현상이다. 이번 사태의 경우 물론 여러 원인 중 이상기온도 있긴 하지만, 지난겨울에 비해 이번 겨울이 딱히 이상기온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유의미한 온도 차이가 있진 않았다.”

앞으로 이번 사태가 ‘바이러스로 인한 집단 폐사’였음이 밝혀지더라도 피해 농가가 구제받을 방법은 뚜렷하지 않다. 바이러스로 인한 피해 보상은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르는데, 여기에 규정된 꿀벌 관련 바이러스는 부저병(꿀벌 유충을 썩게 하는 병)뿐이다. 가축재해보험도 있지만, 이에 보장된 꿀벌 질병 역시 부저병과 낭충봉아부패병(꿀벌 유충이 번데기가 되지 못하고 말라죽는 병)뿐이다.

노천식씨는 올해 벌통 120개를 새로 들였지만 내년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며 걱정했다. 올해는 꿀을 조금만 수확하고 벌통 규모를 다시 회복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답답한 마음에 아직 버리지 못한 벌통 500개를 틈틈이 들여다보며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되짚어보고 있다. “만약 소나 돼지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꿀벌은 이렇게 죽어 나가도 별 관심이 없다. 이게 정말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언제 눈치채게 될까? 빠르면 내년일 수도 있다.”

창녕/글 나경희 기자·사진 신선영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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