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왕' 원작자 연상호와 작가 탁재영의 유려한 담론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연상호 감독의 96분짜리 애니메이션 영화 '돼지의 왕'이 최근 티빙을 통해 12부작 실사 드라마로 재탄생됐다. 지난 18일 공개한 후로 현재까지 4편이 세상 밖에 나왔다. '돼지의 왕'은 학교 폭력에 대한 시사성을 다루는 작품이다. 원작에선 황경민과 정종석이 오랜만에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과거의 폭력을 회상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드라마에선 황경민(김동욱)과 정종석(김성규)은 만나지 않는다. 드라마로 이야기를 확장하며 '돼지의 왕'은 등장인물 설정에도 변화를 줬다. 망한 사업가 경민과 가난한 작가 종석은, 성공한 사업가이자 잘나가는 형사로 바뀌었다.
드라마는 과거의 기억을 애써 지운 채 다정한 남편으로 잘 살아가던 황경민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우연히 본가 창고에서 발견한 그 시절 물건들로 하여금 그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난다. 학폭으로 인해 우울증은 있었으나, 아내의 극진한 살핌과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잘 견뎌오던 경민은 창고에서 발견한 중학교 졸업사진과 의문의 돼지 가면을 마주하는 것으로 새로운 폭력적 자아를 형성한다. 자신을 향해 폭력을 휘둘렀던 이들에 대한 경민의 복수극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원작에서 경민과 종석만큼이나 주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이 또 있다. 아직 드라마에는 제대로 등장하지 않았는데, 두 사람이 학폭에 시달릴 때 구원자가 돼준 철이라는 인물이다. 경민이 창고에서 돼지 가면을 발견한 후로 보게 되는 환영 속 후드티를 입은 소년이 바로 철이다. 원작에서 철이는 공부잘하는 일진 강민과 그의 앞잡이 안정희로부터 경민과 종석을 지켜준다. 철이가 학교라는 계급사회에서 생존한 방식은 폭력에는 폭력으로 응수하는 것이었다. 원작을 보고 나면 경민의 환영 속 철이가 어떤 심리로 작용하는지 보다 이해하기 쉬워진다. 연상호 감독은 "철이는 두 인물에게 일종의 상징이자 이데올로기"라고 설명했다.
'돼지의 왕'은 탁재영 작가와 친분이 두터웠던 연상호 작가가 먼저 실사화를 제안하면서 기획됐다. 탁 작가는 "'돼지의 왕'의 팬이었다. 실사화된 드라마를 보면서 영화팬들이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원작의 정서는 그대로 전하고자 했다"며 "단 드라마 '돼지의 왕'은 시청자들이 더 재미를 가지고 메시지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르를 스릴러로 바꾸면서 흥미롭게 다가가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경민이 연쇄살인마가 되는 새로운 구성은 '그렇게 하면 어떨까?'하고 제가 탁 작가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냈어요. '돼지의 왕'을 만들었을 때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그 시절의 가해자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이었거든요. 그때마다 '평범하게 잘 살고 있지 않을까요?'라고 대답을 했는데 일종의 복수극같은 형르의 장르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점에서 원작과 차별화가 잘 됐어요."(연상호 감독)
연상호 감독은 탁재영 작가가 확장한 이야기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단순히 이야기를 늘린 것이 아닌, 원작 이상의 메시지를 갖는 획기적인 오리지널 스토리를 내놨다고 평가했다. 연 감독은 "탁재영 작가가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겁난다' '불안하다' 등의 소리를 해서 문제가 있나 싶었는데 보니까 정말 재밌더라. '돼지의 왕' 포인트들을 잘 살렸다"고 말했다.
4화가 공개된 현 시점에서 경민의 연쇄살인 첫 표적은 정희(최광제)다. 경민의 복수는 1년 간에 걸쳐 철저하게 계획됐다. 차 수리업을 하던 정희에게 접근하기 위해 가명으로 택시 회사를 인수하고, 그에게 정비를 맡기면서 돈다발을 안겨준다. 그가 가장 행복한 순간을 누리고 있을 때, 경민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그를 잔인한 방식으로 살해한다. 표현 수위가 상당히 잔혹하다. 함께 회상되는 과거 학폭 역시 수위가 마찬가지로 높다.
"경민에게 시청자들이 몰입하게 하려면 과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OTT이기 때문에 사실적으로 보여줄 수 있던 부분도 있고요. 극 초반에는 가해자를 대하는 복수 방식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통쾌함을 느끼셨다면 중후반으로 갈수록 복수가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고민에 빠져요. 시청자들도 이걸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직 4부까지만 공개됐기 때문에 사적 복수를 응원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는데 회가 거듭될수록 그런 작품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원작에서도 학폭 피해를 받았던 아이들이 또 다른 가해자를 이겨내기 위해 행동하는 방식들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물음을 계속 던지고 있거든요. 중후반 정도에 후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예요."(탁재영 작가)
"단순히 계급사회나 가해자를 비판하는 상황보다 더 복잡하게 들어가요. 극초반이라 과거 이야기가 전부 나오지 않은 상태이고 경민의 복수의 칼날이 어디로 향하고 어떤 지점으로 향하는지를 관찰하는 게 좋은 포인트가 될 거예요."(연상호 감독)

드라마에 더 특별한 지점이 있다면 새로 추가된 강진아(채정안)의 존재다. 경민의 연쇄살인을 추적하는 형사 진아는 제 3자로서 폭력을 목도한다. 그가 과거의 폭력과 현재의 폭력을 마주하는 방식은 시청자들과 눈높이가 같다.
"진아라는 캐릭터로 인해서 작품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의 대안을 찾았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원작에서는 겁 많은 인물들이 또 다른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 무리를 만들고, 그 무리 안에서 또 계급이 생기면서 폭력이 다시 발생한다면 진아는 무리에 속하지 않음에도 자기의 신념을 지켜가면 진실을 찾아가는 인물이에요. 그런 진아의 모습 속에서 다른 인물들과 다른 결을 느끼며 작품에 대한 대안을 시청자와 함께 찾았으면 했어요."(탁재영 작가)
"경민과 종석이 뒤틀린 인물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리고 그러한 뒤틀림을 강진아 형사에게 목도하게 만든다는 구성이 정말 좋았습니다."(연상호 감독)
이제 막 서막을 알린 '돼지의 왕'.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계급사회의 이면을 역동적으로 보여주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날선 캐릭터들과 비릿한 폭력의 연출은 공감위로 강한 잔상까지 남긴다. 원작의 결말은 다소 참극이다. 많은 내용이 달라진 만큼 드라마는 과연 어떤 방향으로 맺음할 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돼지의 왕'에선 처음에 이분법적인 계급으로 시작해서 영웅을 만들고 우상화하는 것들을 진화해서 복잡한 구조와 트라우마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해요. 그것들이 드라마에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뒤로 갈수록 복잡한 양상으로 의미있는 장면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연상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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