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한 천장을 어떻게?..도심에 새긴 '건축 스토리'
꽃을 닮은 오목한 접시 모양의 마곡 서울식물원 온실
'가면쓴 건물' 삼진제약 연구소 등 독창적 디자인 정평
구조적 어려움 신소재·최적화 공법으로 해결
"프로젝트마다 성격달라..고유의 체계 연구하는 실험실"
가운데가 볼록한 돔 형태의 식물원은 흔하다. 반면 중앙이 오목한 접시 형태의 식물원은 드물다. 비와 눈이 쌓이면 그 하중을 감내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적 약점 때문에 생각해내기도, 시도하기도 쉽지 않지만 적절한 소재와 기술의 도움만 있다면 가능하다. 물론, 무엇보다 관례를 깨고 새로움을 시도하겠다는 건축가의 신념이 가장 먼저다.
김찬중 건축가의 이야기다. 그가 대표로 있는 더시스템랩은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있는 ‘서울식물원’(온실)(2018년 준공)을 디자인했다. 식물원은 크게 보면 접시의 형태로, 가장자리쪽에 수고(나무의 높이)가 높은 열대수종이 배치돼있다. 중앙부에는 키가 작은 지중해 식물을 두었다. 자연스레 관람객의 시선도 식물원 중앙에서 외부로 향하게 되고, 식물원 바깥의 나무와 하늘 풍경과도 어우러진다. 관람 마지막에는 스카이워크를 통해 열대우림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특별한 경험도 제공한다.
하지만 이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건축가가 부딪혔던 문제가 있다. 돔 형태라면 비와 눈이 내려도 흘러가버리는데 이런 형태는 가운데로 모인다. 안으로 오목한 구조에서 천장이 상당한 물의 하중을 지탱해야하고 동시에 적절한 태양광의 유입도 필수였다.
온실 벽면은 자잘한 삼각형 유리 3180장으로 이어붙여져 있다. 유리로 만들어진 천장의 무게는 차치하더라도 만약 천장을 그렇게 잘게 쪼갰다간 개방감을 잃을 터였다.
대안이 있었다. 실무를 맡았던 김종길 더시스템랩 수석디자이너는 “이티에프이(ETFE·에틸렌 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라는 신소재가 답이 됐다고 전했다. 두개의 얇은 필름 구조인데 막 사이에 공기를 넣어 부풀려 놓으면 단열은 물론 외부의 충격이나 눈, 비를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따뜻한 공기와 접촉한 눈이 녹으면서 가운데로 집수되고, 이를 조경수로 재활용하는 친환경 건축까지도 달성했다.
천장은 덕분에 크고 시원시원한 육각형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마치 식물의 세포(Cell)를 닮았다.
김 대표는 “왜 식물의 세포는 육각형인가를 설계를 진행하며 알게 됐다. 그게 가장 안정적인 구조더라”며 “건축가가 가장 안정적인 구조를 만드는데에 식물의 세포에서 인사이트를 받아서 진행한다면 자연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이야기를 인공적인 것까지 끌고 오는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는 형태를 본뜬 단순한 직물적 접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직물적’이라는 표현을 경계한다. 김 대표는 “직물적이라함은 예컨대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고 해서 건물을 ‘하트’(♡) 모양으로 만드는 것”라며 “사람들이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는 방법이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그저 하트 모양으로 만든다면 그건 건축이라기엔 너무나 쉬운 해석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식물원’이라 위에서 내려봤을때 ‘꽃’ 모양을 하도록 만든 것 아니냐는 일부 대중의 해석에 대해선 다소 아쉬워했다.
김 대표는 “오목한 접시형을 만들어야하는 구조적인 이유로 인해 반듯한 원형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꽃잎같은 형상이 됐지만 그리 단순하게 형상을 흉내내는 방식으로 디자인하지 않는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저희가 디자인한 건물을 가지고 사람들이 ‘뭐처럼 생겼다’, ‘뭐를 닮았다’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 자체는 반갑고 기쁘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사람들이 ‘멋있다’, ‘높다’, ‘크다’, ‘고급스럽다’ 이런 것 외에는 건축물을 두고 다른 류의 감정에 대한 얘기를 하는것이 드물다”면서 “도시 안에 살면서 사람과 건축물 사이에 상호작용이 너무 없는데 기왕이면 수십년 이상 한 자리에 쭉 있는 건물에 이야기를 부여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서울식물원을 비롯해서 더시스템랩이 작업해온 건축물 중 상당수는 흰색이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유가 있었다. 김 대표는 “사람들은 색 정보에 제일 민감하다. 만약에 건물이 빨간색이라면 ‘꽃잎’(서울식물원), ‘문어 빨판’(KEB하나은행 플레이스원 건물)을 얘기하기도 전에 그저 ‘빨간색 건물’로 정해진다”며 “반면, 흰색으로 된 건물은 사람들이 조형에 좀 더 집중해 보기 때문”이라고 색 선정의 이유를 밝혔다.
식물원과 멀지않은 거리에 더시스템랩이 만든 또하나의 흰색 컬러의 특이한 건물이 있다. 삼진제약 연구센터인데 지난해 준공된 따끈따끈한 신축건물이다. 옆을 지나가는 행인들은 ‘건물이 꼭 가면을 쓴 것 같다’고 표현했다. 특색없이 네모 반듯한 마곡 오피스지구에서 나홀로 독창성을 뽐내고 있었다.
이 건물은 해가 질 때면 서향빛이 강렬하게 들어온다. 때문에 동서남북 4면 중에서 서쪽벽에 건축가의 역량을 집중시켰다. 서쪽 벽면에 천 조각처럼 부드럽고 얇은 콘크리트판을 부착해 전반적으로 직사광선을 막되, 위쪽 작은 구멍 두개와 아래쪽으로 뚫린 공간으로 내부에서 바깥을 조망할 수 있다.
김 대표는 “햇빛을 직접적으로 받으면 안되는 약품이 많은 제약회사 특성상 어떻게 하면 직사광선을 막되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갇힌 느낌 없이 도시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거듭해 나온 건물”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건물 내부에도 이 곳이 제약회사임을 잊지 않는 설계를 부여했다. 로비에 약 13m의 수직농장인 ‘스마트팜’(Smart farm)을 설치해 유기농 채소를 직접 기르게했다. 좋은 음식과 좋은 약은 그 근원을 같이 한다는 말이 의학서 ‘동의보감’에 나오는데, 설계 당시부터 이 개념을 적용하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실제로 직원들은 여기서 재배한 채소를 수확해 집에 가져가곤 한다.
김 대표는 “식물원도, 삼진제약 건물도 그렇고 프로젝트마다 성격이 다르다”며 “땅, 예산, 사용자, 건축주 모두가 다르기에 여러가지 변수들의 가장 최적화된 체계가 뭐냐, 그것들을 다 아우를 수 있는 고유의 것을 ‘더 시스템’이라고 하고, 저희는 그 고유의 체계를 연구하는 랩(Lab)”이라고 정체성을 밝혔다.
이민경 기자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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