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노이와 시대 담론

서울문화사 입력 2022. 3. 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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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미노이의 '킹'받게 말하는 영상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미노이의 요리조리> 에서 그는 맥락 없이 대뜸 화내다가 갑자기 귀여운 모습으로 돌변한다. 미노이를 처음 본 건 <쇼미더머니> 지원 영상이다. 자신이 키우는 돼지 고양이가 '츄르'를 너무 좋아해서 문제라는 내용의 랩이다. 저화질에 저퀄리티 영상인데, 하나도 안 거슬리고, 마냥 귀엽고 웃기기만 하다. 그런 미노이가 지금 시대를 대표한다.

이 글은 이른바 ‘미노이 열풍’을 정치와 사회 흐름 맥락에서 분석하는… 뭐 대충 그런 글이 될 뻔했으나, 다행스럽게도 필자의 이해력이 부족하여 그렇게 되지 못하였다고 서두에 적어두는 바다. 뭔 헛소리?

하도 미노이, 미노이 하니까 궁금해서 찾아 봤다. 특히 나와 일하는 클라이언트 중 한 남자. 그는 나와 우리 직원들에게 수차례 이렇게 말했다. “아니, 미노이가 혼자 막 이야기하듯이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영상으로 제작해주세요.” 클라이언트는 원래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다. “아니, 미노이가 편집하는 것처럼 그렇게 뜬금없이 웃기게 해주세요.” 클라이언트는 원래 이런 말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클라이언트는 뭐다? 킹받네. 이하 생략.

다시 미노이 이야기로 돌아가서, 미노이 유튜브를 보고 나는 충격에 빠졌다. 혼자 방에서 아무렇지 않게 마음대로 이야기하는데 인기가 있다니! 귀여운 여자라서 그런가? 잠깐 생각해보았는데, 물론 맞는 말이긴 한데, 귀여운 여자가 엄청 많은데 유독 미노이가 인기 많은 건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분석이라는 걸 해봤다. 분석을 할 대상인지 확신이 안 서지만,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건 분명하니까, 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분석은 거의 말이 안 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미노이 열풍도… 뭐 이건 말이 되냐? (됨!)

예전에 <무한도전> 전성기 때는 인트로에서 유재석이 이런 말을 했다. “오늘도 시청자 여러분께 큰 웃음, 큰 감동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한~ 도전~.” 그땐 그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예능 프로그램의 목적은 큰 웃음과 큰 감동이었다. 지금도 그럴까? 소비의 핵심이 ‘MZ세대’로 바뀌면서 기존의 인식 역시 바뀌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은데, 갑자기 또 딴소리지만, 온갖 매체들이 ‘MZ, MZ’ 하는 게 나는 불만이다. 이해는 되는데 불만이다.

쟤들이 뭔데? 솔직히 나는 소외받는 기분이 들고, 미노이 열풍이 MZ세대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그냥 뜬금없이 나도 미노이를 좋아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래서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냥 좋다. 뭐, 아주 많이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다시 큰 웃음, 큰 감동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MZ라는 집단이 그런 것들을 굳이 싫어하지는 않겠지만 ‘굳이’ 그런 게 존재해야 한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큰 웃음도 큰 감동도 중요한 건 ‘맥락’일 텐데, 이른바 약간의 서사라도 존재해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일 텐데, MZ는 이전 세대에 비해 서사의 가치를 높게 두지 않는다. 쉽게 말해 작은 웃음 정도면 된달까. 감동은, 뭐, 있음 좋고. 맥락이 있건 없건, 일단 웃기면 된다, 정도?

기존의 ‘재미’가 ‘맥락’에서 왔다면, 미노이 ‘식’(이라고 말할 만큼 동시대를 대변하니까!)의 ‘재미’는 ‘어이없음’에서 온다. 어이없어서 웃긴다. 그래서 나 같은 ‘아저씨(라고 하기엔 좀 많이 어려 보이지만)’가 보면, 저게 왜 웃겨? 그냥 어이없기만 한데?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이없는 게 요즘 ‘애’들이 웃기다고 생각하는 핵심이다. <미노이의 요리조리>에 나온 코드 쿤스트는 미노이가 자꾸 맥락 없는 말들을 늘어놓자 “아, 이상하게 멕이니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라고 말하며 웃는다. ‘멕’였다고 느끼면 놀림당한 건데, 왜 어떻게 놀림당했는지, 놀림당한 게 맞기는 한 건지 모르겠고, 그냥 어이가 없어서 웃긴다는 뭐 그런 맥락. 그러니까 재미를 받아들이는 감각과 정서가 MZ와 이전 세대가 다르다고 분석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은 게 내 판단인데, 이게 정답이야 하고 말할 기준 같은 게 없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뭔, 헛소리야 그냥 웃기고 재미있고 귀여워서 좋아하는 건데, 뭐래, 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 말은 그 말대로 맞다.

헛소리를 더 하자면, 요즘 내가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이대남, 이대녀인데, 나는 이 세대가 쉽게 ‘통합’될 것 같지 않다. 이 문제의 기원에 대해 말하는 게 이 글의 핵심은 아니니 제쳐두고, 나는 이대녀도 싫고 이대남은 더 싫은데, 그들 각각을 한 명씩 만나보면 모두 좋지만, 그들의 집단화된 의지는 매우 꼴보기 싫다. 내 인식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단 그 문제도 여기선 제쳐두고, ‘대체로’ 많은 이대남과 이대녀가 미노이를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노이 열풍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저 앞에 적었고, 내가 더 하고 싶은 말은, 지금은 이념의 시대도 아니고, 정의와 공정은 엿 바꿔 먹었고, 주식은 폭락하고, 부동산 같은 건 돈 많은 ‘꼰대’나 타이밍 잘 잡은 건너건너 아는 형이 이미 재미 다 봤다. 그럼 이대남과 이대녀는 희망을 어디에 걸고 살아야 하지?

미래의 희망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고, 결국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이 더,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되었는데,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감각은, 귀여움 아닐까. 나는 과장을 아주 많이 보태서 귀여움만이 저들의 희망이며, 귀여움만이 저들이 젠더를 넘어 화합하는 감각이고, 귀여움만이 저들이 공통적으로 수긍하는 가치라고 말하고 싶은 거긴 하다. 귀여움은 약간의 막말과 약간의 불합리함과 약간의 ‘멕’임도 대수롭지 않게 만든다. ‘약간의’가 물론 중요할 텐데, 미노이는 훌륭한 조율자다. 아직까지는. 그런데 글을 여기까지 적어놓고 보니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굳이 미노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웃음과 감동과 세대와 이대남과 이대녀에 대한 이야기까지 했어야 했을까? 하는 것. 옛날 사고방식이지. 또 한편 드는 다른 생각은, 갈수록 시대적 담론으로 이해하고 분석할 만한 대상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 맥락이 사라진 시대, 의미도 사라질 수밖에 없으니, 어쩌면 이 일련의 과정 역시 연결되어 있기는 하겠지만, 다시 진지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대가 오긴 할는지. 미노이는 어떤 세대의 등장과 젠더에 대한 미세한 차이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무엇인가 끝났거나 시작되었거나, 그러려고 한다. 그러나 이걸 말하는 게 지금으로선 의미가 없다.

Editor : 정소진 | Words : 이우성(시인,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에이전시 ‘미남컴퍼니’ 대표) | Illustrator : 송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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