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상담·수리·행정·방역 다해, 교사 절반 "휴직 고려"
팬데믹 시대 ‘1인 5역’ K-선생님
오전 7시 경기도 시흥시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하수연(가명) 교사는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등교한다. 코로나19로 늘어난 업무 때문이다. 교실에 도착하면 소독제부터 뿌리고 창문을 활짝 연다. 곧이어 핸드폰이 울린다. 20여 분간 20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애가 기침을 약간 하는데, 등교해도 되나요?” “확진됐는데, 수업은 어떻게 받나요?” 학부모의 궁금증 해결도, 증상에 따른 상황판단도 모두 선생님의 몫이다. 양세훈 교사(가명, 경기도 수원시의 고등학교)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콜센터 직원이 된 기분”이라며 “아침마다 전화로 자는 아이들을 깨우고, 학부모님과 상담하면서 코로나 상황에 대처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교사가 학생들 대신해 교실 청소도
정작 선생님들의 코로나19 상황은 어떨까. 지난주만 해도 유·초·중·고 교직원 신규 확진자는 3만2117명이 발생했다. 전체 교직원 50만여 명 중 6%가량이 한 주 새 감염된 것이다. 학교로서는 구멍 난 인력을 재빠르게 메꾸기가 쉽지 않다. 하 교사는 “확진되면 병가를 쓸 수 있지만, 새 학기엔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격리 상태에서 수업을 강행한다”며 “초등학교는 과목별로 수업하는 중·고교와 달리 담임 한 명이 30명을 전담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면 대면 수업을 진행하는 유치원에서는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한다. 기존의 교육과정으로는 코로나19 이전의 사회를 경험해보지 못한 ‘코로나 키즈’를 가르치기 어려워서다. 서울 관악구의 공립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연정(가명) 교사는 “학교는 보충학습이라도 가능하지만, 놀이 중심의 유치원은 수업 진행 자체가 안된다”며 “유치원에서 소풍 놀이를 한다거나, 영화관 놀이를 하면 아이들에게서 “저 소풍 가본 적 없어요, 영화관 가본 적 없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와 난감하다”고 전했다.
오후 4시 학교가 텅 비는 시간, 선생님은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이제는 미뤄뒀던 행정업무를 처리한다. 김지수 교사는 “학교 시간표 조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확진자가 나오면 매일 시간표를 갈아엎어야 한다”며 “3년간 이 업무를 맡아 매번 다른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다가 대인기피증이 올 뻔했다”며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곧이어 청소 시간. 코로나19 이후 학생들 대신 교사가 직접 교실을 청소한다. 학생들이 등교 전 하게 돼 있는 자가진단키트도 일일이 나눠 포장(소분)해 놓는다. 하 교사는 “편의점 알바생이 따로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학생 중 확진자가 나오면 역학조사까지 선생님이 나선다. 경기도교육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88.6%의 교사들이 대면·비대면 수업, 방역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스트레스라는 점에 동의했다.
학령인구 줄어 교사 정원 감축 예정
이런 불안과 두려움은 선생님들의 정신건강을 해친다. 경기도교육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교사 절반(48.9%)가량이 정신건강이 나빠졌다고 답했고, 5.1%는 병원 치료를 원할 정도로 정신건강 악화를 호소했다.
하 교사는 “마스크를 쓴 채 수업하다 보니 제자들을 만나면 누군지 잘 몰라 버퍼링(파악 또는 처리에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 생긴다”며 “코로나19를 핑계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고 전했다. 양 교사는 “학부모님들은 교사에게 하소연하지만, 교사들은 하소연할 상대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 교사는 “교사는 공무원이기 이전에 교육자인데, 교육자보다는 공무원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다 보니 ‘내가 선생님이 맞나?’ 의문도 든다”고 하소연했다.
학교 현장은 사실상 좀비 상태지만 올해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교사 정원을 1089명 감축할 예정이다. 임선일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교육부, 교육청이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교원에게 모든 책임을 떠맡기고 있다”며 “코로나19를 이겨내는데 의료인만큼 큰 역할을 한 분들이 선생님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이들의 상황에도 귀 기울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육도, 행정도, 방역도 모두 선생님에게 책임을 묻는 ‘학교 만능론’은 선생님들을 지치게 한다. 송 교사는 “코로나19로 교육 격차가 벌어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정부도, 학부모도 열심히 가르치지 않은 교사 탓을 하더라”며 “학부모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교문 밖을 나서면 방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사는 선생님의 고충이 결국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밥상머리 교육까지도 교사에게 맡기니 아이들도 지친다. 아이들은 학교 안보다 학교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는 걸 잊지 말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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