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15분 출근길', 시민에겐 '30분 지각길'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1분? 15분? 30분?
대통령 당선인의 출퇴근 소요시간에 대해 취임 전부터 설왕설래하는 것은 전례 없던 일이다. 이는 집무실 이전이 공론화되면서 본격적으로 화두에 올랐다. 윤석열 당선인은 집무실을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고 발표했고, 곧 청와대가 '안보 공백'을 이유로 맞불을 놓았다. 이에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가 협조하지 않으면 당분간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을 쓰겠다는 입장이다. 이 와중에 당선인의 관저 위치도 명확하지 않다. 출근길의 출발점도, 목적지도 불확실한 전대미문의 사태다.
15분. 교통통제 시 예측되는 윤 당선인의 출근 소요시간이다. 이는 윤 당선인의 자택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서 통의동 집무실(금융감독원 연수원)까지 차로 이동하는 경로를 토대로 계산한 것이다. 현재 윤 당선인의 이동 시 교통관리는 현직 대통령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출근길 앞뒤로 경호차와 경호용 오토바이가 따라붙어 호위하고 있다. 또 가는 길목의 신호등을 제어해 '논스톱'으로 달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통제 시 15분… 시민은 돈 내고 달려도 30분
그럼 같은 경로로 이동하는 일반시민들도 15분 만에 주파할 수 있을까. 시사저널 취재진은 출근길 교통이 혼잡한 3월23일 오전 8시에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부근에서 윤 당선인의 통의동 집무실까지 차를 몰고 이동해 봤다. 네이버 지도에 따르면 해당 경로의 최단 코스는 △반포대교(반포대로) △녹사평대로 △남산3호터널 △소공로 △세종대로를 차례대로 지나는 것이다. 거리는 약 10.6km다. 윤 당선인도 이와 같은 코스를 이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주행 결과 총 소요시간은 30분이었다. 윤 당선인의 출근 예상 소요시간에 비해 2배 더 걸렸다. 지나온 신호등은 26개, 평균 주행속도는 시속 21.2km였다. 1월 오전 기준 서울 도심 평균 통행속도인 22.4km와 비슷하다. 해당 코스는 시간 면에서 최적이지만 유료다. 코스의 중간 지점인 남산3호터널에서 혼잡통행료 2000원을 내야 한다. 징수 시간은 주중 오전 7시~오후 9시로 출퇴근 시간과 겹친다. 통행료를 내지 않고 출근하려면 남산을 낀 소월로를 지나야 하는데, 이 경우 대략 5분이 더 걸린다.
1월 서울시 교통량 조사자료에 따르면, 주중 오전 8시 녹사평대로에서 남산3호터널을 빠져나가는 차량은 평균 1647대다. 상습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강남대로(논현역→신사역)의 2020년 주중 오전 8시 평균 통행량인 1535대보다 더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 당선인의 출근을 위해 남산3호터널 안팎을 통제하면, 시민들 입장에선 매일 '출근 지옥'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용산구 한남동 공관촌에서 출퇴근한다면 상황이 조금은 나아진다. 윤 당선인 측은 공관촌 내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관저로 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경우 교통체증이 심한 반포대교를 건너지 않고 녹사평대로와 남산3호터널을 바로 탈 수 있다. 거리는 8.7km. 기자가 차를 몰아보니 23분 걸렸다. 시간이 짧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20분이 넘었다.
집회·보안 문제도 우려… 주변 고층빌딩은 없어
통의동 집무가 계속된다면 최고의 시나리오는 관저를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 마련하는 것이다. 총리공관에서 집무실까지 최단 거리는 약 1.6km다. 차량으로 5분 안팎이면 도착한다. 경찰은 청와대 앞길을 이용하면 되니 1분 정도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특별한 관리도 필요 없다고 한다.
출근 소요시간 외에 집회·시위 문제도 거론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따르면, 대통령 관저로부터 100m 이내 장소에서는 집회나 시위가 금지돼 있다. 그런데 집무실에 대한 내용은 없어 무차별 집회가 열리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됐다. 일단은 대통령경호법 덕분에 안전 공간을 확보한 상태다.
대통령경호법은 "경호업무 수행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경호구역을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통의동 집무실 앞은 경호구역으로 지정돼 경찰이 일정 수준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앞서 시민단체가 몇 차례 '통의동 집무실 앞 집회'를 신청했지만 번번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3월14일 집무실 앞 기자회견을 예고했는데, 실제로는 약 100m 떨어진 경복궁역 인근 도로에서 회견을 열었다. 3월23일에는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기자회견을 가졌다. 노조 관계자는 "대통령경호법에 따라 집무실 바로 앞이 아닌 50m 떨어진 빌딩 앞에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통의동 집무실 근처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집회 관리에 대해 실제 집회 양상에 따라 지침을 정한다는 계획이다.
통의동 집무실을 둘러싼 또 다른 문제는 보안이다. 집무실에는 방탄유리가 설치돼 있지 않아 저격에 취약한 실정이다. 일단 집무실 맞은편의 경복궁이 최고고도지구로 지정돼 주변 118만㎡의 건물 층수가 5층(20m)으로 제한돼 있다. 통의동 집무실은 4층(16m) 건물이다. 즉 저격수의 시야를 확보할 고층빌딩이 주변에 없는 셈이다. 이 같은 고도제한 지역은 집무실의 북쪽과 동서쪽으로 넓게 퍼져있다.
집무실 남쪽에는 고층빌딩이 즐비하다. 다만 정부서울청사와 서울경찰청 건물이 각각 동남, 서남 지역을 지키고 있어 시야를 차단하고 있다. 집무실이 가시권에 들어오는 고층빌딩은 정남 방향의 노스게이트빌딩(12층)과 적선현대빌딩(12층) 정도다. 하지만 그 사이에 3~4층짜리 카페와 사무실 등이 가로막고 있어 원거리 사격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스게이트빌딩에 입주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관계자는 "경복궁 빼고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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