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국물·푸짐한 살코기.. 뜨끈·든든한 '한 사발'



■ 이우석의 푸드로지 - 곰탕
고기를 푹 곤 ‘곤국’서 유래
사골·잡뼈 끓여낸 국물 요리
기력 보강하고 면역력 높여줘
꼬리곰탕·소머리곰탕·닭곰탕
재료따라 ‘새로운 버전’ 등장
‘곰탕 끓여놓고 놀러간다’ 옛말
요즘엔 집서 하기 어려운 음식
봄의 대표적인 맛이야 풋풋하고 상큼한 것이지만, 환절기에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절정까지 겹친 이 무렵이라면, 뜨끈한 고깃국 한 사발도 잘 어울리겠다. 오늘은 기력을 보하고 면역력을 높여주는 진하고 뜨끈한 곰탕 얘기다. 뚝배기 덕에 온기를 오롯이 품은 국물엔 적당한 기름기와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살코기가 푸짐히도 잠겼다. 아니, 꾸미는 없어도 좋다. 진한 국물에 다 녹아들었을 테니 말이다. 밥알 흩날리는 마지막 국물 한 모금까지 쭉 들이켜 바닥까지 비우고 나면 당장 무거운 몸이 거뜬해진 기분이다.
“젊은이 망령은 몽둥이로 고치고 늙은이 망령은 곰국(곰탕)으로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한국인에게 곰탕의 이미지는 ‘보양’의 심상이 강하게 배어 있다. 곰탕은 글자 그대로 육류(내장, 뼈다귀 포함)를 물에 넣고 오랜 시간 끓여낸 국물 요리다. 게다가 가장 간편한 요리법이며 적은 양의 재료를 많은 이가 즐길 수 있도록 한 효율적인 음식이다.
세계 곳곳에 비슷한 게 많다. 외국 영화 속에서도 가끔 등장한다. 숲에서 사냥한 고기를 모닥불 솥에 밤새 끓이는 장면이나 올리버 트위스트가 고아원 급식으로 받아든 멀건 닭 귀리 죽을 떠올리면 금세 익숙해진다. 소를 쓰는 프랑스 포토푀(pot-au-feu), 돼지와 햄을 우린 스페인 코시도 마드릴레노(cocido madrileno), 양고기를 곤 몽골 반탕 등이 재료는 서로 다르지만 우리네 곰탕과 거의 똑같은 계열의 음식이다.
우리 곰탕의 어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조선 성종 20년(1489년)에 편찬된 의학서 ‘구급간이방언해’에 따르면 곰탕이 ‘고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기를 푹 곤 ‘곤국’에서 ‘곰국’이 된 것이라는 말. ‘기름 고(膏)’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몽골에서 가축을 잡아 물에 끓여 먹던 음식을 한자로 부르는 공탕(空湯)이 어원이란 말도 있다. 조선 영조 때 몽골어학서 몽어유해(蒙語類解)에는 ‘슈루’를 공탕이라 부른다고 적혀 있다. 실제 슈루나 곰탕엔 육류 이외엔 아무것도 넣지 않긴 한다.
어떻게 부르든 곰탕의 정의는 고기를 넣고 오래 끓인 음식이 분명하다. 조리법만 보자면 다 비슷할 것 같은데 곰탕에는 각각 특성이 뚜렷한 여러 종류가 있다. 우선 지역적으로 나주곰탕(전남), 진주곰탕(경남), 현풍곰탕(대구), 영천곰탕(경북) 등이 유명하다. 재료에 따라선 소머리곰탕, 꼬리곰탕, 사골곰탕, 양곰탕 등으로 나뉜다. 여기다 닭곰탕, 돼지곰탕이 따라붙어 재료의 다양성까지 지니게 됐다.
지역별로 보자면 대부분 유명한 곰탕들은 사골과 잡뼈, 고기를 푸짐히 넣고 우려낸 뽀얀 육수의 국물임에 비해 나주곰탕은 주로 고기를 고아낸 맑은 국물에 간장으로 양념한다. 서울에서 유명한 하동관과 수하동 등 곰탕집은 나주식 고깃국에다 내포까지 더한 진국으로 ‘서울 깍쟁이’들의 입맛에 어필하고 있다.
기본이 사태나 양지 부위를 쓴 곰탕이지만 좀 더 선호하는 부위를 찾는 이도 생겨나게 마련이다. 그 덕에 꼬리곰탕과 소머리곰탕, 양곰탕 등 ‘업그레이드 버전’이 등장했다. 반대로 곰탕의 인기에 편승해 그보다 값싼 재료인 돼지고기와 닭을 쓰고 곰탕 이름을 붙인 닭곰탕 같은 음식도 나왔다.(닭갈비나 고갈비 같은 개념이다) 닭곰탕이나 돼지곰탕은 저렴하고도 특유의 맛이 좋아 이젠 ‘곰탕 대체품’이 아닌 곰탕과는 또 다른 맛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자, 여기서 궁금증 하나, 곰탕과 설렁탕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답은 명확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곰국은 고깃국이다. 육류 이외엔 채소 등 별다른 재료를 넣지 않는다. 따라서 설렁탕 역시 곰탕의 범주에 속하지만, 사골을 써 뽀얀 국물이 우러난 것이 설렁탕이다. 다만 경상도 지방에서는 대부분 곰탕에 뼈를 넣어 우리기 때문에 설렁탕과 곰탕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다. 나주곰탕의 경우 설렁탕과는 확연히 모양새부터 구분이 간다. 사실 설렁탕은 사골곰탕의 개념인데 서울 지역 고유의 곰탕 레시피에 명칭이 붙었을 뿐이다.
일부 지방에서 곰탕을 곰국이라고도 하듯, 소머리곰탕 역시 소머리국밥이라 부르는 지역도 있다. 곰탕 역시 국물에 밥을 말아놓은 국밥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념상 ‘국밥〉곰탕〉설렁탕’의 공식이 이뤄진다. 나주곰탕과 현풍곰탕 간 차이가 있듯 서울식 곰탕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설렁탕인 셈이다. 역시 사골을 우려낸 경상도식 곰탕 역시 이게 설렁탕이라 말해도 구분하기 어렵다.
‘이팝(쌀밥)에 고깃국’이란 말처럼 곰탕은 편하고 든든하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메뉴다. 그래서 과거 ‘집에 곰탕 한 솥 끓여놓고 놀러 간다’는 말이 있었는데, 집에 남은 식구들이 그냥 알아서 곰탕을 데워 밥을 말면 되니 여러 날을 끄떡없이 지낼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말도 옛말이 됐다. 일인 가구가 많아지고 가족 구성원이 줄어든 요즘, 곰탕은 집에서 하기 어려운 음식이 됐다. 일단 우려낸 국물 양이 너무 많고 빨리 소진하기 어려운 데다 사 먹는 것보다 맛도 별로다. 재료를 많이, 오랫동안 끓여야만 제대로 맛이 우러나는 음식이라 그렇다. 그래서 곰탕은 예로부터 외식 메뉴로 인기 있었다.
나주곰탕으로 유명한 전남 나주 ‘하얀집’의 경우 개업한 지 100년이 넘었다. 인근의 다른 집들도 대부분 3대째다. 곰탕의 일종인 설렁탕집인 서울 종로구 이문설농탕 역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이다. 수많은 메뉴가 명멸하고 쉽사리 변하는 외식 트렌드를 보면 이처럼 오랜 시간 입맛을 사로잡은 ‘맛’이 또 있을까 싶다. 맛을 떠나 ‘곰탕 한 그릇’은 한 세기 이상 대물림하며 한국인에게 활력과 에너지를 공급한 ‘시대의 음식’이다. 봄비에 아직 으슬으슬한 3월의 점심, 배 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13그릇의 곰탕을 소개한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하동관 = 명실상부한 서울 대표 곰탕집. 사골 대신 고기를 잔뜩 넣어 진한 국물이 특징. ‘특’을 주문하면 내포를 넣어준다. 토렴해 미지근한 날달걀을 풀고 깍두기 국물(일명 깍국)을 부어 먹는 문화가 따로 존재한다. 서울 중구 명동9길 12. 1만3000원.
◇진주집 = 소꼬리를 푹 끓인 곰탕을 파는 집이다. 남대문시장 안에서 꼬리곰탕으로 유명한 집으로 전국에 소문났다. 탕에도 고기가 들었지만 꼬리토막을 주문하면 좀 더 큰 덩어리를 내준다.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4길 6-1. 꼬리곰탕 2만5000원.
◇곰국시집 = 곰탕인데 국수로 즐기는 집이다. 안동식 국수에 가깝다. 사골과 고기를 우려내 감칠맛 넘치는 곰탕 국물에 국수를 말아낸다. 뽀얀 진국에 말아낸 면도 탱글탱글하고 매끈하니 상태가 좋다. 서울 중구 명동10길 19-3 2층. 1만1000원, 전골국수 1만8000원.
◇수하동 = 메뉴나 이름을 봐도 하동관과 깊은 사연이 있는 곳. 꾸미나 육수나 익숙한 맛인데 좀 더 기름기가 적고 깔끔한 느낌이다. 걸쭉하고 진한 맛보다 시원한 맛을 원하는 마니아층을 따로 거느리고 있다. 반쯤 먹다 깍국을 넣으면 새큼한 맛이 더해진다. 서울 종로구 종로 33 GS그랑서울 지하 1층. 1만2000원.
◇사대부집 곳간 = 여의도 전경련회관 50층에 위치한 이른바 ‘뷰맛집’인데, 깔끔한 한식과 찬, 상차림으로 소문나 각종 모임을 많이 하는 곳이다. 꼬리토막이 든 곰탕은 개운하고 고소한 맛을 낸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24 전경련회관 50∼51층. 우미(牛尾)곰탕 3만7000원.
◇해봉정육 = 메뉴에는 소머리국밥으로 판다. 오랜 시간 우려낸 육수에 소머리 고기를 푸짐히 넣고 다시 뚝배기에 팔팔 끓여낸다. 소머리 특유의 진득한 국물이 잘 배어 있어 밥 한 끼에 보양한 느낌이다. 서울 중구 청계천로 24 케이스퀘어시티 B1. 1만1000원.
◇한우정 = 칠성시장에서 푸짐하고 진한 국물의 곰탕집으로 입소문이 난 집. 사골과 잡뼈는 물론, 벌집 양 등 내장과 살코기까지 듬뿍 넣었다. 진한 국물에 다진양념과 새우젓, 후추 등을 넣고 마늘 향 강한 김치를 얹어 먹으면 돈 만 원에 이런 호사가 따로 없다. 대구 북구 칠성남로 212. 9000원, 살코기국밥 1만1000원.
◇장기식당 = 포항 죽도시장에는 해산물뿐 아니라 유명 곰탕집도 많다. 이 중 장기식당은 진한 감칠맛 국물의 소머리곰탕을 내는 집이다. 구수하고 부드러운 국물에 존득한 소머리를 가득 썰어 넣었다. 포항시 북구 죽도시장3길 9-12. 소 1만2000원, 대 1만4000원.
◇홍흥집 = 오일장에 문전성시를 이루는 소머리곰탕집이다. 국물을 머금고 나면 입천장에 혀가 포스트잇처럼 쩍쩍 붙을 만큼 진한 국물이 압권이다. 큼직하게 썰어낸 머리 고기와 살코기가 수북이 들어 한 뚝배기만으로도 든든하다. 홍성군 홍성읍 홍성천길 242. 1만 원.
◇황소집 = 도가니탕 역시 도가니곰탕의 준말이다. 식당에선 소 뒷다리 무릎 연골과 힘줄(스지)을 통칭해 도가니라 부른다. 살점이 살짝 붙은 콜라겐 덩어리 연골과 힘줄을 함께 발라내 곰탕을 끓였다. 1965년 개업한 노포로 구수하고 진한 국물에 식사를 하고 졸깃한 고기로 술 한잔하는 단골이 많다. 서울 중구 충무로2길 2. 1만2000원.
◇병곡식당 = 전형적인 시장통 소머리국밥(곰탕)이다. 말간 국물은 진국보다는 시원한 스타일이다. 후추를 치지 않아도 전혀 냄새가 나지 않을 정도로 정성껏 기름을 걷어냈다. 함양군 함양읍 중앙시장길 2-27. 소머리국밥 8000원.
◇선학식당 = 건물 자체가 근대문화재다. 일제강점기 해군병원장이 살던 한옥 기와집을 곰탕집으로 바꿔 영업 중이다. 마루에 앉으면 마치 친척 집에서 밥을 먹는 분위기다. 창원시 진해구 중원로32번길 22. 1만 원.
◇다락투 = 수많은 가게가 명멸하는 홍대 거리에서 30년 넘게 지켜온 닭곰탕 노포집이다. 보드랍게 찢어낸 살을 깔끔히 우려낸 닭 국물에 말아낸다. 반찬이라곤 마늘과 김치밖에 없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21길 4-3. 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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