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전기요금 동결?..미래 합산고지서 날아든다
'연료비 인상 파고'..대안 없다면 단계적 '요금 현실화'로 가야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전기요금 인상안이 또다시 새로 들어설 차기 정권에 발목을 잡힌 모습이다. 지난해 영업적자만 5조8000여억원. 증권가에서 추산한 한국전력의 올해 예상 적자규모는 20조원에 달한다.
당초 계획된 인상분을 적용하더라도 적자 폭을 메우기 버거운 상황인데 요금인상은 아예 전면 백지화 위기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당장 내 주머니에서 나갈 돈을 아낄 수 있으니 반가운 일이라고 해야 할까. 자명한 것은 머지않은 미래 나에게, 더 나아가 내 자식세대에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란 사실이다.
공기업인 한전의 재정 건전성 악화는 단순히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기요금을 사실상 묶어둔 상황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한전의 적자는 결국 국민이 떠안아야 할 빚이다.
국내 유일의 전력 판매사인 한전의 부실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대체 기관을 생각할 수 없는 현실에서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 정상화해야 하는데 이 돈은 결국 국민 주머니에서 나온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진 '오판'의 결과라도 책임은 결국 전 국민이 져야 한다는 얘기다.
소위 전기요금을 '정치요금'이라고 한다. 정권의 필요에 따라 요금이 결정되는 현행 요금결정 체재를 일컫는 말이다. 전기요금은 현행 산업통상부 산하 전기위원회에서 결정하는데 어디까지나 명목상일 뿐 기획재정부와 산업부의 영향권 아래 있다. 이는 곧 행정부 최종 결정권자의 결정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우리는 매번 이런 상황을 목도한다. 정권의 정치적 고려에 따라 요금 동결이 결정되고 이는 곧 '민생 안정'이라는 거창한 명분으로 포장되기 일쑤다.
이 과정에서 한전의 재정 건전성 악화가 표면으로 드러나지만, 이를 초래한 이들은 책임지지 않는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폭탄 돌리기'는 결국 종국에 전 국민이 떠안아야 한다는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이번 한전의 2분기 전기요금 연료비 조정단가 산정내역 돌연 연기 결정도 이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치솟은 국제유가를 고려해 최소한의 인상요인이라도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에 지난해 말 정부는 올 4·10월 두 차례 단계적인 요금인상을 결정했고, 당장 다음 달 새로운 요금 적용안이 시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불과 보름여도 남지 않은 상황에 다시 제동이 걸렸다. 한전이 지난 21일 당초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포함한 요금 결정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전날 오후 돌연 일정 연기를 발표했다.
한전은 "2021년 12월부터 2022년 2월까지의 연료비 변동분을 반영한 2분기 연료비조정단가를 산정해 지난 16일 정부에 제출했다"며 "이날 산업부로부터 산정내역과 관련한 관계부처 협의가 진행 중이며 추후 그 결과를 회신받은 후 2분기 연료비조정단가를 확정하도록 의견을 통보받았다"고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시점 자체가 차기 정부를 이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구성과 맞물린 데다 윤석열 당선인이 선거과정에서 "전기요금을 동결하겠다"고 공약한 것을 두고 현 정부의 요금 인상 결정을 전면 재검토 하려는 수순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러 고려가 있겠지만, 이번 요금결정은 새 정부 출범 전 국민들에게 내놓는 허울뿐인 선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연료비 인상의 파고 속에서 국민에 부담을 지우지 않고도 재정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식의 '요금 동결'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묘수가 없다면 이제는 솔직해져야 한다.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급진적이고 대폭적인 요금 인상보다는 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단계적인 요금 현실화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물론 국민적 반발에 직면할 수도 있겠지만, 정치권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소비자물가 상위품목 중 고작 0.017%(통계청 2017년 기준, 주택용 요금)에 불과한 전기요금 인상에 유독 국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동안 전기요금을 '세금'으로 인식하게 한 정치권에 있기 때문이다.
euni12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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