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DAO가 뭐길래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암호화폐 투자 모임이 간송미술관에 있던 국보를 매입한 뒤 지분의 51%를 기증했다는 소식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의문점은 우선 도대체 암호화폐 투자클럽이라는 DAO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수십억 원을 모아서 국보를 매입할 수 있었느냐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DAO는 탈중앙화 된 자율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의 앞 글자로, 보통 '다오'라고 부릅니다. 블록체인에 기반해 사전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 완전히 자율적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입니다. 대표자는 없고 계약이나 집행, 관리를 위한 대리인만 있을 뿐입니다. 특정 목적을 위해 모금을 한 뒤 암호화폐를 발행하거나 미리 정한 암호화폐로 모금하는 형식인데, 모금과 집행을 비롯해 모든 과정을 사전에 블록체인 기반의 계약서에 기록한 뒤 자동으로 진행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참여자의 투표로 결정합니다.
'탈중앙'이라는 블록체인 기술의 이상을 구현하는 DAO가 국내에서도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지난 1월 14일 간송미술관의 국보 2점이 경매에 나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입니다. 국내 블록체인 전문가들이 <국보DAO>를 결성해 경매에 참여하자는 제안을 하고 나선 것입니다. 간송미술관이 내놓은 국보는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과 금동삼존불감이었는데 각각 32억 원과 28억 원이 경매 시작가로 알려졌습니다. 당시에는 국보 2점 모두 경매에서 낙찰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국가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은 예산이 부족하고, 구매자가 공개되기 때문에 선뜻 나설 만한 개인이나 기업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습니다. 2년 전에도 간송의 보물 2점이 경매에서는 유찰된 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 매각됐었죠.
그런 상황에서 국보DAO가 기획됐고 24일 밋업(컨퍼런스)을 한 뒤 모금을 시작한 것입니다. 국보DAO는 두 점을 모두 낙찰받기 위해서는 100억 원, 최소한 한 점만이라도 낙찰을 받으려면 40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경매에 경쟁자가 있을 수도 있고 16.5%의 낙찰수수료와 법률대행비 등 비용까지 고려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27일 경매 직전까지 국보DAO의 모금액은 24억 원에 그쳤고, 결국 경매 참여를 포기했습니다. 예상대로 27일 경매는 유찰됐고요.
그런 와중에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싱가포르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23일 국내 미술계 관계자 A씨가 싱가포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미교포 블록체인 전문가 김경남(Leon Kim)씨를 만난 것입니다. 시점상 A씨는 아마도 국보DAO의 모금이 실패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간송미술관의 국보 경매도 유찰될 것이라고 예측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경남 씨는 A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헤리티지DAO>를 만들었습니다. 헤리티지 DAO는 사흘 뒤인 26일 이더리움으로 모금을 시작해 곧바로 13억 원 정도를 모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시점이 중요합니다. 헤리티지DAO가 싱가포르에서 10억 원 대의 모금을 한 것은 서울에서 경매가 유찰되던 시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헤리티지DAO는 경매 유찰을 예상하고, 경매와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거래하는 이른바 '프라이빗 세일'을 추진했던 것입니다. 정황상 모두 A씨의 조언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헤리티지DAO는 32억 원 정도를 모아 경매 유찰 4일 뒤인 1월 31일 금동삼존불감의 새로운 주인이 됩니다. 계약서에 따르면 매입가는 수수료를 포함해서 25억 원으로 돼 있는데, (A씨도 개인적으로 수수료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케이옥션 수수료와 법률 대행비 등을 고려하면 28억 원으로 추정됐던 금동삼존불감의 가격은 21억 원 남짓으로 결정됐을 것이라는 계산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김경남 씨는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매가 유찰될 경우 경매 예정가보다 싼 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헤리티지DAO가 51%의 지분을 간송재단에 기증했다는 것입니다. 김경남 씨는 헤리티지DAO가 금동삼존불감을 다시 되팔 수 없도록 하기 위해 간송재단에 기증했다고 국내 언론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되팔면 왜 안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고요. 헤리티지DAO에 참여한 사람들은 우리 해외교포도 있지만 외국인도 포함해서 56명이라고 합니다. 평소 우리 문화의 보존에 관심이 많던 단체도 아니고, 간송의 국보 경매가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왜 이들이 굳이 기증까지 하게 됐는지 그 동기가 명확하지 않은 것입니다. 문화재는 어차피 해외반출이 안되기 때문에 누구의 소유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디에 보관돼 있고 누가 관리하느냐가 핵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헤리티지DAO가 갖고 있든 아니면 다시 되팔아서 다른 사람이 갖고 있든 상관없는 것입니다.
경매에 나온 국보들은 간송미술관에 보관돼 있지만, 간송재단 소유가 아니라 전형필 선생의 장손인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의 개인 소유였습니다. 등록문화재이기 때문에 세금 한 푼 안 내고 상속받은 뒤 내다 판 것입니다. 결국 헤리티지DAO의 국보 매입과 기증 과정은 전인건 관장 개인 소유의 문화재를 간송재단 소유로 옮기며 전 관장에게 현금 21억 원을 안겨준 셈입니다.
그래서 나오는 해석이 헤리티지DAO는 기증을 통해 명분을 챙기고, 향후 NFT 발행이나 메타버스 활용 같은 디지털 자산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간송 측은 그런 합의는 없었다고 공식 해명했지만, 김경남 씨는 해외 인터뷰에서 디지털 자산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내막이 어떠하든, 국보 금동삼존불감의 매각과 기증 절차는 법적인 절차를 마쳤습니다. 간송 측은 앉은 자리에서 21억 원이라는 현금을 챙겼고, 케이옥션은 수수료를 챙겼습니다.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헤리티지DAO와 숨은 조력자 A씨가 무엇을 챙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들이 DAO라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국가적 자산을 매입하고 활용한 세계 첫 번째 사례가 됐다는 것입니다. 국보DAO와 헤리티지DAO의 모델은 지난해 11월 미국 헌법 초판 인쇄본 경매에서 등장한 컨스티튜션DAO였습니다. 1주일만에 17,000명이 참여해 4천만 달러를 모금했는데 낙찰에는 실패했습니다. 이에 따라 헤리티지DAO는 전 세계적으로 첫 번째 성공적인 DAO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 것입니다.
다만, 간송 전형필 선생의 후손들이 소중한 문화유산을 활용해 개인 배만 불리고 있다는 비난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2년 전 보물 두 점을 내놓았을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역시 앉은 자리에서 챙긴 21억 원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밝히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간송미술관의 유물을 국민들이 언제든 볼 수 있도록 상시 공개하지도 않고 있으면서 무슨 재정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서울 성북구에 짓고 있는 수장고와 최근 착공한 대구 간송미술관 건립에 이미 세금 500억 원이 투입되고 있습니다. 미술관 보존과 확장에는 나랏돈을 받아 쓰고, 상속세 없이 물려받은 유산은 내다 파는 행태가 더 이상 이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이주상 기자joos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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