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도 못 움직이던 루게릭병 환자, 뇌에 칩 심고 "멋진 아들 사랑해"라고 말했다

이정아 기자 입력 2022. 3. 23. 11:50 수정 2022. 3. 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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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컴퓨터 인터페이스 통해 첫 의사 표현
눈동자조차 움직일 수 없었던 말기 루게릭병 환자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이식해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뇌 신호를 읽는 이식 장치의 도움으로 문자를 하나하나 선택해 문장을 만든 것이다. 스위스 비스생물학및뇌공학센터 제공 영상 캡처

눈동자조차 움직일 수 없었던 말기 루게릭병 환자가 뇌에 칩을 심어 처음으로 의사를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간단한 음식이름부터 "멋진 내 아들을 사랑해"라는 문장을 표현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른 것으로 나타나 향후 활용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독일 튀빙겐대 의료심리학및행동신경생물학연구소와 뮌헨클리닉 신경과, 미국 브라운대 카니뇌연구소, 스위스 비스생물학및뇌공학센터 등 연구팀은 뇌 신호를 읽어 문자를 선택할 수 있는 뇌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말기 루게릭 환자에게 이식해 의사소통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22일 발표했다.  

루게릭병으로 알려진 근위축성측색경화증은 운동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하는 난치질환이다. 발병 초기에는 팔다리가 쇠약해지고 병이 진행하면서 결국 호흡근이 마비돼 수년 내 목숨을 잃을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이다.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앓았던 병으로 유명하다. 

지금까지는 시선 추적 카메라를 사용해 사지마비된 루게릭 환자가 글을 쓸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 눈동자를 움직여 화면에서 글자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보다도 병이 더 진행된 환자는 눈동자조차 움직일 수 없다. 남의 말을 들을 수는 없지만 자기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수 달에서 수 년을 보낼 수 있다. 

연구팀은 루게릭병을 앓아 눈동자를 움직이지 못하는 한 30대 남성 환자를 대상으로 뇌의 운동피질 한 부분에 가로세로길이가 3.2mm인 정사각형 모양 미세전극 어레이(배열) 두 개를 삽입했다. 어레이에는 바늘 모양 전극 64개가 달려 있어 뇌신호를 기록한다. 연구팀은 환자에게 간단한 질문에 '예' 또는 '아니오'를 답하도록 했지만 처음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3개월 가량 시도한 끝에 뇌 신호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환자에게 전극을 삽입한 부위 주변을 중심으로 뇌 신호 속도를 바꾸는 방법을 연습하도록 했다. 3주 후 이 환자는 자기가 원하는 문장을 표현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의사는 간병인에게 "내 위치를 바꿔달라"는 것이다. 이듬해에는 1분당 한 글자씩 쓰는 수준이 됐다. '굴라쉬'나 '스위트피수프' 같은 간단하 단어를 쓸 수 있었다. 곧 "음악을 크게 틀어줘"나 "멋진 내 아들을 사랑해"같은 문장도 표현하게 됐다.  

이 환자는 뇌 신호의 속도를 바꾸는 전략에 대해 눈을 미세하게 움직였다고 답했다. 문장을 쓰는 것이 늘 성공하지는 않았다. 연구팀은 연구 기간인 135일 중 107일에만 80% 정도 정확도로 원하는 문장을 썼다고 보고했다. 그중 44일에만 정확한 문장을 쓸 수 있었다. 

요나스 짐머만 비스생물학및뇌공학센터 수석신경과학자는 "이 연구결과는 눈이나 입을 비롯해 모든 운동근육 조절능력을 잃은 환자가 의사소통 관련한 뇌의 능력도 잃어버리는지에 대한 오랜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발적인 움직임이 없는 환자가 뇌신호를 이용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첫 번째 사례"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이 기술은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하루에 세 문장 정도만 표현할 수 있다. 아직은 이중적인 뜻을 담은 복잡한 문장은 표현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향후 환자가 작동하기 수월해지도록 이 기술이 향상하면서 의사소통도 빠르고 정확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마리스카 반스틴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뇌-컴퓨터인터페이스의료센터 연구원은 22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와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은 눈동자까지 마비된 환자가 의사소통하는 기술이 탄생할 것이라고 믿기 어려웠다"며 "(문장 작성 정확도가 연일 다른 이유로 추정되는) 환자의 컨디션이나 뇌신호를 보정하는 기술을 향상한다면 의사소통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라인홀드 슈러 영국 에식스대 뇌-컴퓨터인터페이스및뇌공학과 교수는 "이 기술은 앞으로 수천 명의 환자가 가족과 의료진과 의사소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구팀이 환자의 뇌 운동피질에 이식한 미세전극 어레이 중 하나. 가로세로길이가 3.2mm인 정사각형 모양이다. 이 어레이에는 바늘 모양 전극 64개가 달려 있어 뇌신호를 기록할 수 있다. 스위스 비스생물학및뇌공학센터 제공

[이정아 기자 zzung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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