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탄소중립 앞당길 미생물 공장

사자성어 신조어로 ‘내로남불’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시사용어가 ‘희망고문’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온다며 현재 안 좋은 상황을 무마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과학 뉴스에서도 희망고문이 종종 보인다.
획기적인 치료제가 나왔다는 뉴스를 읽어보면 동물실험 단계이거나 심지어 세포실험 결과다. 놀라운 신소재가 개발됐다는 뉴스 역시 본문을 보면 실험실에서 1그램도 안 되는 양을 얻은 것으로, 재료값이 너무 비싸 “비슷한 성능의 다른 소재를 찾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언급하고 있다.
필자 역시 오랜 기간 이런 뉴스를 생산해온 사람이므로 할 말이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되도록 상용화가 가능한 수준의 연구에 더 관심이 갔다. 치료제라면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2상에서 효과를 봤다는 결과는 나와야 눈길이 가고 소재나 화학 반응 분야는 파일럿플랜트를 짓기에 앞서 소규모 설비에서 성공했다는 소식에 솔깃한다.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 3월호 표지논문이 바로 그런 연구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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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네거티브 에탄올 생산 상용화
미국의 생명공학회사 란자테크의 연구자들은 폐기물을 소각한 가스나 공장 배출가스에 들어있는 일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 수소를 먹이로 하는 미생물을 배양해 아세톤이나 아이소프로판올 같은 유용한 분자를 만드는 파일럿플랜트를 성공적으로 구현했다고 보고했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와 그 전 단계 분자인 일산화탄소가 원료로 소모되고 설비 운영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만들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이보다 적어 전체적으로 ‘탄소 네거티브 생산’이다. 오늘날 당면과제인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활동이라는 말이다.
탄소 네거티브로 물질을 만드는 미생물에 대한 논문은 많지만 이처럼 파일럿플랜트에서도 성공한 예는 흔치 않아 한 번 읽어봤다. 알고 보니 이 일을 해낸 박테리아(Clostridium autoethanogenum·학명 클로스트리디움 오토에타노게눔)가 물건이었다. 이미 2018년 일산화탄소로 에탄올을 만드는 상업 설비가 지어져 연간 수천만 리터의 에탄올을 생산하고 있다. 이 과정 역시 탄소 네거티브 생산이다.
오토에타노게눔이라는 학명에서 짐작하듯이 이 박테리아는 원래 에탄올을 만든다. 이번에 아세톤과 아이소프로판을 만든 건 합성생물학이라는 최신 기법으로 대사 관련 유전자를 없애거나 집어넣어 게놈을 조작한 결과다.
에탄올을 만드는 미생물 하면 단세포 진핵생물인 효모가 떠오른다. 그런데 효모의 에탄올 생산 과정은 탄소 네거티브가 아니라 탄소 포지티브(온실가스)를 발생시킨다. 포도당 한 분자를 분해해 에탄올 두 분자를 얻지만 동시에 이산화탄소 두 분자가 나오기 때문이다. 빵 반죽이 부풀고 술을 담글 때 거품이 뽀글뽀글하는 이유다.
오토에타노게눔은 토끼 똥에서 처음 발견돼 1994년 학술지 ‘미생물학 아카이브스’에 보고됐다. 분석 결과 독립영양생물로, 일산화탄소를 먹고 에탄올을 만드는(배설하는) 것으로 밝혀져 'auto'와 'ethano', 'genum'를 합친 학명을 지었다. 참고로 사람은 종속영양생물로, 다른 생명체가 만든 포도당 같은 유기물을 먹이로 삼아 살아간다.
대표적인 독립영양생물인 식물은 이산화탄소와 물을 원료로 해서 포도당을 만든 뒤 이를 분해해 에너지를 얻어 살아간다. 포도당을 만들 때 빛에너지가 들어가므로 ‘광합성’이다. 그런데 빛이 없는 장속에 사는 오토에타노게눔은 어디서 에너지를 얻는 것일까. 장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를 흡수하면 세포 안에서 이산화탄소로 바뀌고 이 과정에서 나온 전자가 에너지를 담고 있다.
그 뒤 오토에타노게눔이 수소분자도 먹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소분자가 수소이온으로 바뀌며 역시 고에너지 전자가 나온다. 오토에타노게눔이 에탄올을 만드는 복잡한 과정을 규명한 결과 아세틸코에이(Acetyl CoA)라는 중간 산물이 만들어진 뒤 여기서 아세테이트가 만들어지고 뒤이어 에탄올로 바뀌는 것으로 밝혀졌다.
란자테크의 설립자인 세안 심슨과 미카엘 쾹케는 지난 2005년 오토에타노게눔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본격적인 에탄올 생산 연구에 뛰어들었다. 에탄올을 만드는 독립영양생물 박테리아 가운데 성장이 빠르고 배양조건이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장 효율이 높은 균주를 선별해 최적의 배양조건을 찾았고 2008년 배양기 용량이 200L인 파일럿 플랜트 실험에 성공했다.
2012년 실증 단계인 1만6000L 규모의 데모플랜트를 거쳐 2018년 마침내 중국 베이징의 한 철강 공장(배출가스에 일산화탄소가 많다)에 50만L 규모의 상업 플랜트를 짓고 가동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연간 6000만 리터의 에탄올을 생산한다. 그 뒤 중국에 상업 설비 하나를 더 지었고 현재 벨기에, 인도 등 여러 곳에서 설비를 짓거나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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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생물학으로 대사회로 바꿔
란자테크의 연구자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오토에타노게눔이 에탄올이 아닌 다른 물질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했다. 예를 들어 탄소원자 3개로 이뤄진 아세톤과 아이소프로판올 같은 분자는 용매와 플라스틱 원료 등 쓸모가 많지만 화석연료에서 만든다. 만일 오토에타노게눔이 탄소 네거티브로 이들 분자를 만들 수 있다면 일석이조일 것이다.
연구자들은 오토에타노게눔의 대사회로에서 아세틸코에이를 만드는 지점까지는 건드리지 않고 여기서 아세테이트와 에탄올을 만드는 반응을 촉매하는 효소들의 유전자를 제거했다. 아울러 다른 미생물들의 게놈을 검색해 아세틸코에이에서 아세톤과 아이소프로판올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효소들의 유전자를 추려냈다. 그리고 이들 유전자를 발현해 얻은 효소들을 다양한 조합으로 실험해 수율이 가장 높은 경우를 찾아낸 뒤 그 유전자들을 오토에타노게눔에 집어넣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합성생물 오토에타노게눔은 정말 에탄올 대신 아세톤 또는 아이소프로판올을 생산했고 이번에 120L 규모의 파일럿플랜트에서도 안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 아세톤 생산량을 보면 배양액 1리터 당 한 시간에 3g으로 다른 아세톤 생성 미생물보다 거의 1000배 더 많았다. 오토에타노게눔이 얼마나 대단한 박테리아인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탄소발자국을 추적한 결과 기존 화석연료 기반 화학 합성법에서는 아세톤 1㎏을 얻는데 이산화탄소 2.55㎏가 나오는 반면 배출 또는 연소 가스를 먹는 오토에타노게눔 배양은 오히려 1.78㎏이 소모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역시 탄소 네거티브 생산이라는 말이다.
일산화탄소(CO)와 이산화탄소(CO₂), 메탄(CH₄) 등 탄소원자 하나로 이뤄진 분자를 C₁ 가스라고 부른다. 이 가운데 메탄이 주성분인 천연가스는 유용한 연료로 널리 쓰이고 있다. 반면 일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는 연소 산물(CO는 불완전 연소)로 대기로 빠져나가면 온실가스 역할을 한다(물론 메탄도 유출되면 강력한 온실가스로 작용한다).
최근 C₁ 가스로 다양한 화합물을 만드는 리파이너리 연구가 붐을 이루고 있지만, 아직 상업화로 이어진 건 많지 않다. 에탄올 상업 생산에 이어 아세톤과 아이소프로판올도 상업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 오토에타노게눔 미생물공장이 주목받는 이유다. 한국의 C₁ 가스 리파이너리 연구자들도 멋진 성과를 얻기를 기대한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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