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 있지만 일반인에겐 '금단의 땅'.. 용산부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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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공식화하면서 '용산 시대'가 열리게 됐다.
한국에게 '오욕의 역사'를 안기고, 국민에게는 '접근불허' 지역을 대표하던 용산이 '소통의 공간'으로 탈바꿈할지 기대를 모은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용산기지는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정부가 6·25전쟁 중인 1952년에 용산기지를 미국에 공여했고 이후 미8군사령부가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용산은 주한미군의 근거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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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수용, 해방 후 美 주둔
1970년 이후 국방부 용산에 자리
대한민국 지도에서 이제는 명실상부 ‘정치 1번지’가 될 용산이지만, 과거에는 군사·전략적 요충지로 외세의 점령이 끊이지 않았다. 고려 말에 몽골군이 용산 일대에 병참기지를 뒀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 말부터는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에 들어 온 청나라 군대가 용산에 주둔하기 시작했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군이 용산에 자리를 잡았고 한일의정서를 내세워 용산 일대 약 1000만㎡(300만평)을 군용지로 강제 수용했다. 사실상 이때부터 용산은 일반인에게 ‘금단의 땅’이 됐다. 이후 용산 일대에는 일본군의 주요 군사시설이 속속 들어섰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용산기지는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정부가 6·25전쟁 중인 1952년에 용산기지를 미국에 공여했고 이후 미8군사령부가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용산은 주한미군의 근거지가 됐다.
국방부 본관 옆에 있는 합참 건물은 2012년 7월 지상 10층, 지하 4층, 연면적 7만2000㎡ 규모로 지어진 바 있다. 합참은 1948년 창설 당시 을지로에 위치했던 국방부 청사 일부를 사용하다가 1954년 종로구 경무대 별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3년 국방부 신관으로 이전한 뒤 독립청사에 입주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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