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승골성은 졸본 도성인가?

임기환 2022. 3. 18.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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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명장면-145] 하늘이 시조 주몽왕을 위해 골령 검은 구름 속에서 7일 만에 궁궐과 성곽을 축조했다는 신비스러운 전승을 만들었던 고구려인들은 왕조가 존립했던 700여 년 내내 오녀산성 아니 흘승골성을 건국의 성지로서 받들었을까?

적어도 광개토왕비문에 추모왕이 "비류곡 홀본 서쪽 산위에 성(城)을 쌓고 도읍했다"고 기록할 때에는 흘승골성이 건국지라는 관념이 뚜렷하였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건국지라고 해서 그곳을 성지처럼 신성한 장소로 모셨는지 여부는 문헌상으로는 알기 어렵다.

지난 회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존하는 오녀산성의 동쪽과 남쪽 성벽은 4세기 이후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흘승골성이 건국지라는 관념과 별개로 군사적 방어 기능이라는 실용적인 목적으로도 이 산성이 그 뒤에 사용되었음을 시사한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건국지라는 충분히 성소적 성격을 갖출 수 있는 흘승골성이 고구려 시기에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오녀산성의 발굴 조사 결과를 통해 살펴보자.

1996년 이후 진행된 중국 측 발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녀산성 정상부에는 다수의 유구가 남아 있는데, 고구려 시대의 문화층은 2개 층이라고 한다. 그중 제3기 문화층이 고구려 건국 초기에 해당된다고 보고, 특히 이 문화층에서 발견된 1호 대형건물지를 초기 궁전 유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파악하고 있다. 즉 오녀산성을 초기 도읍지로 본 것이다.

그리고 중국 측 발굴 보고서에는 제4기 문화층 시기를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로 보고 있다. 그런데 5세기 중반 이후 고구려 문화층이 오녀산성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고구려 후기에는 오녀산성을 방치하거나 용도 폐기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이는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건국의 성지이기 때문에 평상시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중기 초기에 대규모 성곽을 새로 축조한 점, 그리고 성지로 받들었다고 하더라도 그에 해당하는 어떤 축조물이 있었으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추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

고구려성 연구자인 양시은 교수가 근래에 새로운 견해를 발표하였다. 즉 오녀산성 출토 토기를 남한의 고구려 유적, 특히 아차산 고구려 보루 유적에서 출토된 고구려 토기와의 비교를 통해 제4기 문화층에도 5~6세기에 해당하는 토기들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즉 오녀산성이 고구려 초기부터 후기까지 계속 이용되었다는 주장이다. 특히 5세기에서 6세기 어느 시점까지 중점적으로 활용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남한의 고구려 유적은 그 사용 시기가 한정된다는 점에서 고구려 유물들의 시기 편년에 중요한 기준이 되는 등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

출토 유물을 통해 오녀산성이 초기부터 후기까지 계속 사용되었음을 확인함과 더불어 양시은 교수는 또 다른 유물 출토상의 특징에 주목한다. 다름 아니라 3기, 4기 문화층을 통틀어 아직까지 기와 건물지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구려에서 언제부터 기와 건물이 사용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국내 도성의 예를 보면 4세기 초에 제작된 수막새 기와를 통해 늦어도 고구려 중기에는 기와가 궁궐이나 관청, 사원, 왕릉 등 중요한 건물 등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오녀산성에 기와 건물지가 없다는 점은 적어도 이 산성에 중요한 건물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증거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오녀산성, 즉 흘승골성 안에는 건국지라는 의미에서 특별한 의례 등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사실 광개토왕비문에 홀본 서쪽 '산성'이 건국지로 묘사되고, 고구려본기에도 '골령'에 성곽과 궁궐이 마련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 오녀산성에 가보면 평상시에 도읍지로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결코 아니다.

3면이 험준한 절벽이고 동쪽과 남쪽 성벽을 축조한 일부 구간도 그리 완만한 곳이 아니며 더욱 평지에서 한참을 올라간 산 정상에 가까운 곳이다. 이런 지리적 환경을 갖는 성곽을 평상시 도읍지로 사용하기는 어렵다. 지난 회에 소개한 대무신왕대 기사와 같이 전쟁 때에 임시로 입거하는 군사적 방어용 산성으로 봄이 타당하다.

오녀산성이 위치한 환인 지역은 요동에서 국내성이 위치한 집안지역으로 이어지는 교통로의 주요한 길목이다. 따라서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한 뒤에는 졸본의 건국지 흘승골성은 군사적 방어망의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즉 제4기 문화층에서 확인되는 여러 건물지와 각종 무기, 그리고 새로 축조한 석축 성벽 등이 바로 군사 방어성이라는 성격이 더욱 강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대략 이들 군사 방어시설은 4세기 중엽 이후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국원왕대인 342년 전연의 침입 때에 적의 주 공격로를 예측하지 못한 전략상의 실패로 인해 고구려 방어망이 붕괴되면서 국내성이 함락되는 커다란 패배를 당했다. 아마도 이후에 교통로의 주요 거점인 흘승골성에 석축 성곽 등 군사 방어 기능이 강화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문헌 기록에 흘승골성이 건국지로 기록되었고, 또 발굴 조사를 통해 제3기 문화층이 고구려 초기 문화층으로 확인되면서 오녀산성이 고구려 초기부터 사용되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방어용 산성이지, 고구려 왕이 거주하는 궁궐을 갖춘 평상시 거주지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면 졸본 도읍지는 어디인가? '고구려본기'에는 주몽이 졸본천(卒本川)에 이르러 도읍하려고 했는데, 궁궐을 지을 겨를이 없어 '沸流水上', 즉 비류수 가에 초막을 짓고 머물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광개토왕비문에는 비류곡 홀본의 '西城山上', 즉 서쪽 성산 위에 도읍했다고 한다. 이 두 기록에서 '水上'은 평지에 있는 평상시 거주지를 뜻하고, '山上'은 군사상의 거점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곳이 모두 졸본 도읍지를 구성하는 요소이겠지만, 아무래도 좁은 의미의 도읍지라고 한다면 평지 거주성을 가리키는 게 마땅하다.

그러면 평지 거주성은 어디일까? 이는 현재 환인 지역 여러 유적의 분포 상황과 문헌자료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살펴보겠다. 다만 여기서는 평상시 거주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상시에만 사용하는 오녀산성을 왜 굳이 건국지인 흘승골성이라고 인식하였을까? 그렇다고 오녀산성에 건국지로서 어떤 특별한 건축물 등을 만든 흔적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궁금해진다. 물론 이에 대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오녀산성 원경 /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필자-trimming)
다만 필자의 경험을 통해 한 가지 가능성을 추정해보고자 한다. 환인에서 국내도성이 있는 집안으로 가는 교통로의 길목에 있는 패왕조산성을 답사할 때였다. 산성의 서쪽 성벽에 올라서서 서쪽을 바라보자 멀리 오녀산성이 눈에 들어왔다. 직선으로 30㎞ 거리이지만 아무런 장애물이 없기 때문에 또렷하게 보였다. 이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광경이었다. 오녀산성이 위치한 그 독특한 산세 모습은 어디서든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오녀산성의 이미지가 얼마나 뚜렷한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는 경험이었다.

패왕조산성에서 오녀산성이 바라보이면, 반대로 오녀산성에서 패왕조산성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녀산성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산세가 이어지는 그 어디쯤에 패왕조산성이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패왕조산성의 산세가 어떤 독특한 이미지를 갖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환인 일대 어디서든지 바라보이는 오녀산성의 위용과 신비한 모습은 고구려 당대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니 그 이전부터 이곳은 주민들에게 신성한 곳으로 받들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런 신비스럽고 독특한 이미지가 고구려인들이 흘승골성을 건국지로 인식하고 광개토왕비문에 기록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짐작한다. 고구려 시대에도 이미지는 통치의 정당성을 표방하는 중요한 요소였으리라.

[임기환 서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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