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거래에 내재된 불평등[엄길청의 이코노베이션](11)
2022. 3. 16. 09:08
[주간경향]
17세기 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항구 주변에서 처음 주식거래를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신대륙으로 항해를 떠나는 모험적인 무역선에 투자하고 받은 증서들이 오늘날 주권의 효시다. 몇년이 지나야 돌아오는 무역선들의 항해 성과는 배가 부두에 도착한 뒤에야 비로소 투자자들이 알게 된다. 선원, 상품과 함께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배들도 허다했다.
17세기 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항구 주변에서 처음 주식거래를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신대륙으로 항해를 떠나는 모험적인 무역선에 투자하고 받은 증서들이 오늘날 주권의 효시다. 몇년이 지나야 돌아오는 무역선들의 항해 성과는 배가 부두에 도착한 뒤에야 비로소 투자자들이 알게 된다. 선원, 상품과 함께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배들도 허다했다.
근대사에 와서는 1929년에 시작된 미국의 대공황을 초래한 과잉창업, 과잉설비, 과잉생산, 과잉부채, 과잉자산의 배후에 대중의 주식거래 준동이 있었다. 잘 알려진 미국의 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은 (마치 요즘처럼) 너도나도 주식투자에 뛰어들던 시기에 월가의 대중 투자자에게 주식시세를 전하던 종이 전광판이었다. 오늘의 다우존스 주가지수를 창안한 인쇄기술자 찰스 다우가 만든 주식투자 속보 전문 언론사였다. 당시 그는 금융회사들이 시장 내부의 정보를 서로 과점하며 일반 투자자의 이익 기회를 편취한다고 생각했다. 월가에서 나도는 속보를 조금이라도 빨리 대중에게 알리고자 이 신문을 만들었다. 그가 받는 정보도 사실은 금융회사의 내부 정보였다.
현재 주가 정보는 실시간으로 누구나 접근 가능한 정보과학기술자(과거 인쇄기술자)들 덕분에 모바일(과거 신문)로 파악할 수 있다. 심지어 해외 투자정보도 물리적 거리와 관계없이 저마다 이용 가능하다. 문제는 그 내부의 정보거래나 대중소통의 메커니즘이 예나 지금이나 결코 완전한 효율적 시장(strong efficient market)이 아니라는 점이다.
초대형 투자자 목소리가 끼치는 영향
미국이나 우리나 주가지수 자체가 초대형주 위주다. 거래도 초대형주들이 장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초대형주의 주 거래자들은 다시 초대형 투자자들이다. 이들이 시세와 거래에 주된 영향을 미친다. 미국 초대형주 주식의 상위 주주는 블랙록이나 뱅가드 같은 초대형 전업 투자회사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주식가치의 회사(한국의 1년 GDP보다 큰)인 애플을 예로 들면 2022년 3월 현재, 이 회사의 지분은 뱅가드 7.7%, 버크셔해서웨이(워런 버핏) 5.4%, 블랙록 4.1%, 스테이트 스트리트 3.9%, 뱅가드펀드 2.7% 등이 나눠갖고 있다. 소수의 초대형 투자회사들이 무려 20%가 넘는 애플 지분을 보유 중이다. 이 정도면 거의 시장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돈 많은 사람은 다시 그런 큰 투자운용회사에 더 많은 돈을 맡긴다. 아직 창업주의 손안에 있다는 전기차 메이커 테슬라도 일론 머스크가 16.7%의 지분만 가지고 있다. 나머지는 뱅가드 6.0%, 캐피탈 월드 3.5%, 스테이트 스트리트 3.4%, 블랙록 3.3% 등이다.
이 투자회사의 경영진들이나 전문가들이 바로 미디어의 영향력 있는 투자 뉴스 해설가들이다. 이들이 하는 얘기가 공적인 신뢰로 둔갑해 일반 투자가들에게 다가간다. 일례로 2021년 10월 말에 블랙록의 CEO인 래리 핑크가 주요 언론에 나와 2022년까지 기술주 주가가 계속 상승할 거라고 무책임하게 내뱉었다. 그 시기에 제이피모건 체이스의 CEO인 제이미 다이먼도 같은 얘기를 천연덕스럽게 시청자들 앞에서 늘어놓았다. 그도 유난히 기술주가 많은 투자운용회사의 경영자다. 정작 주가는 그들이 말한 뒤로 내리 5개월 동안 하락했다. 기술주의 급락으로 나스닥 주가는 1만6000선에서 1만3000선으로 폭락했다.
당시에 일부 원로 투자가들이 기술주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쏟아냈지만, 주요 언론은 외면했다. 블랙록 같은 초대형 투자회사들의 주장과 그 주변의 목소리만 크게 전했다. 어쩌면 그들이 이런 목소리를 밖으로 공연히 전하면서 정작 내부로는 팔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서학개미’들도 이 시기에 많이 매수했다.
1989년 12월 한국 증시에서 가장 뼈아픈 해프닝으로 남은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정부는 주가 하락을 나랏돈으로 막아보겠다고 공언했다. 주가가 더 하락하자, 재무부 장관이 증권사 사장들을 아침 일찍 소집해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정부가 주식 살 돈을 줄 터이니 주가를 받쳐달라는 시달을 내렸다. 잠시 후 이 소식은 장중에 주식시장에 전달됐고, 실제로 증권사들은 대형주 주식들을 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증권사는 회의가 열리고 있던 개장 초부터 이미 대형주를 팔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증권사 사장이 회의 중에 화장실을 간다고 몰래 빠져나와서는 “곧 증권사들이 주식을 살 터이니, 주식을 매도하라”고 반대의 지시를 한 것이었다. 그 회사는 당시 5대 대형증권사의 하나였다. 정부는 며칠간 돈을 대주다가 주가 하락을 거듭하자 중단했다.
증시의 가짜뉴스들
아리스토텔레스가 돈은 생명이 없으므로 스스로 이자를 증식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돈은 사람에 따라서는 탐욕과 치부를 키우는 사악한 생명력이 엄청나다.
요즘 가짜뉴스 얘기가 정가에 많이 떠돌고 있지만, 증시의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는 때론 도를 넘는다. 1986년 어느 날 모 석간신문이 북한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가짜뉴스’를 전하자 정오를 전후에 주가가 대폭등과 대폭락을 거듭하며 개인투자자들의 주머니를 장중에 전광석화처럼 털었다. 지금도 이런 일이 개별주식에는 수도 없이 일어난다. 일반 투자가들에게 증시의 비대중성이 얼마나 냉정한지 환기하고자 오래전 얘기를 가져와 봤다.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데이터가 온전히 정성적이지는 않다. 양적인 가중치나 빈도, 영향력, 변수, 알고리즘 등에 근거해 정보를 나열하고 순서를 정하고 기대치를 계산한다. 그 배열이나 순위, 추정의 근거 뒤에는 빈도가 잦거나 거대한 데이터일수록 미치는 힘이 절대적이다.
작은 주식의 발견에서 큰 성과의 영광을 찾으려는 투자는 언제나 개인의 통찰과 인내가 필수적이다. 이조차 사회와 개인 간의 내구력 차이가 엄청나다. 오래전부터 미국과의 비교만 보아도 한국 개인들의 주식투자 회전율은 아주 높은 편이다. 그만큼 단기투자자들이 많다는 증거다. 선물거래의 개인회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선물은 초단기의 레버리지 투자이므로 한 번의 실수가 패가망신으로 이어질 만큼 위험이 따른다. 원래 선물거래는 개인투자용이 아니라 기관투자가의 헤징투자가 주된 기능이었다.
우리는 1999년 개장부터 개인들의 차익거래가 전체 거래를 휩쓴 아픈 역사가 있다. 코로나19 이후에 유난히 주식투자가 대중의 관심 대상이 됐다. 현실은 간단치 않다. 단타, 대박 기대, 소문 의존성, 장외 공포심 등의 집단심리 성향으로 인해 시스템 사고적인 외국 전문투자자들과의 거래에서 불평등의 요소가 크다. 우리 사회에서 대중에게 주식투자를 권고한다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엄길청 국제투자분석가·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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