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습속 탈출한 우크라 고려인 가족..여권조차 없어 '한국행' 불안
난민된 네 가족 "유럽주재 한국 대사관 나서달라" 호소

“제 아내와 아이는 도시를 탈출해 지금 루마니아에 있어요. 경황 없이 탈출하느라 여권을 구하지 못해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을지….”
지난 11일 저녁 6시20분께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고려인 유하이 드미트로(37)는 인터뷰 내내 가족을 걱정하면서 초조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드미트로와 본 발레리(42) 두 사람은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미콜라이우에 살다가 2017∼2018년 직장을 얻어 한국에 차례로 들어왔다. 그들 가족은 우크라이나에 머물다가 최근 러시아 공습이 거세지면서 지난 7일(현지시각) 집을 떠나야 했고, 8일 몰도바를 거쳐 현재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 머물고 있다. 드미트로와 발레리가 급히 폴란드행 비행기에 오르는 것은 탈출한 가족들을 만나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서다.
탈출은 했으나, 멀고 험한 한국행
최근 이들의 고향 미콜라이우는 러시아군 폭격으로 외부로 나가는 도로와 다리가 대부분 파괴됐고, 더 이상 탈출은 불가능한 것으로 전해진다. 드미트로는 “아내와 아들이 몰도바에 도착하고 나서야 한숨 돌렸다”고 했지만 얼굴엔 근심이 가시지 않는다. 드미트로 일행이 친구한테 받은 영상 속 미콜라이우 도심은 어둠 속에서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그곳엔 아직 드미트로의 부모님이 있다. 그는 “도심 통신이 마비된 마리우폴에 사는 사촌은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미콜라이우도 마리우폴과 같은 상황이 될지, 연로한 부모님과 통신이 아예 끊길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공포를 뒤로하고 루마니아로 넘어온 가족은 드미트로, 발레리 가족 말고도 두 가족이 더 있다. 모두 열한명, 그동안 성인 두명이 아이들 아홉명을 건사해왔다.

지난 13일 이들과 가족은 루마니아에서 만났다. 하지만 이들에게 앞날이 보장돼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으로 가야 하지만 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이 문을 닫아, 열한명 모두 비자(사증) 신청을 하지 못했다. 성인 두명을 제외한 미성년자 아홉명은 여권조차 없다. 그나마 한국에서 고려인 단기 비자 제도를 운용하고 있어 여권이나 신분증에 동포라고 확인되면 입국할 수 있지만, 현장에 있는 이들에게까지는 정보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발레리 아들 중 한명은 법적인 절차 없이 입양한 상태라 단기 비자 제도를 이용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드미트로, 발레리와 비슷한 신세인 우크라이나 고려인은 3천여명(한국 거주 기준)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출국과 가족 입국을 돕고 있는 시민단체 ‘고려인너머’ 김영숙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에 남은 가족을 데려오고 싶다는 우크라이나 고려인이 단체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민간단체라 한계가 있다”며 “현재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은 전쟁 통에 여권 등 입국에 필요한 기초 서류가 준비돼 있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유럽 소재 한국영사관·대사관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도와줬으면 한다”고 했다.

“반전시위 소식에, 혼자가 아니라고 느껴”
드미트로는 출국장으로 들어가기 전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반대 시위나 우크라이나 돕기 성금 모금을 보고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다”며 “이런 소식을 들으면 흥분되기도 하고, 감사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 5일 안산시에서는 국내 거주 러시아인 2명과 우크라이나인 7명이 함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반대 퍼포먼스를 벌여 눈길을 끌었다.
안산시는 지난 10일 외국인주민지원본부 1층에 우크라이나에 보낼 성금함을 설치했다. ‘우크라이나에 희망을 전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성금함에는 하루 만에 10만원이 넘는 금액이 모였다. 시는 성금 모금이 알려지기 시작하면 모금액은 늘어날 것으로 본다. 안산시는 25일까지 모인 성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전달할 계획이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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