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민주당은 어쩌다 5년 만에 정권 내줬나
5년 전 문재인 정권의 탄생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그때는 다들 자신감이 넘쳤고 희망에 겨웠다. 사상 초유의 탄핵 정국 이후 태어난 정권이라 더 그랬다. 민주당엔 차기 대선 주자가 즐비했고 국민의힘은 정확히 반대였다. 이해찬 전 대표는 대놓고 '20년 집권설'을 이야기했다. 적지 않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보는 대로다. '정권 교체 10년 주기설'은 구문이 됐다. 초박빙 승부였다지만 승패는 명확하다. 권력은 유한하고, 민심은 이토록 냉정하다.
민주당은 어쩌다 5년 만에 정권을 내줬나. 첫째는 부동산 때문이다. 올라도 너무 올랐다. 그건 민주당 사람들도 다 안다. 현상도 문제지만 핵심은 태도다. 부동산 가격을 둘러싼 정부여당의 현실인식과 해법이 더 큰 문제였다.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 정부에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문재인 대통령, 2019.11.19.), "모든 국민이 강남에 가서 살 이유는 없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2018.9.5.), "30대 젊은층의 영끌이 안타깝다" (김현미 전 국토부장관, 2020.8.25.)는 말들은 현 정부가 부동산 민심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대다수 국민들에게 부동산은 단순히 재산 증식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질과 직결되는 문제다. 날마다 얼마나 걸려 출퇴근을 하고, 어린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건널목을 몇 개 건너야 하며, 몇 년 마다 이사 문제로 머리를 싸매야 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문제다. 밤새 일해 덜 먹고 덜 입으며 돈 모아도, 대출 당겨 집 산 사람보다 못 살게 되는 공정과 형평의 문제다. 없는 사람은 집값 때문에, 있는 사람은 세금 때문에 힘들어졌다. 극소수를 제외하고, 적어도 부동산 앞에선 모두가 불행해졌다.
둘째는 내로남불 때문이다. 우리만 옳고 너희는 그르다는 오만과 독선 때문이다. 필요하면 상대를 악마화하고 증오와 분노를 조장하는 일이 너무도 잦았다. 그 대상은 때로는 야당이다가, 검찰이다가, 언론이기도 했고 때로는 평범한 시민이기도 했다. 우리 편의 잘못에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상대편의 잘못에는 지나치게 가혹했다. 윤미향 사태가 그랬고, 조국 사태가 그랬다. 정경심 사건 1심 재판부는 정 씨에게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줬다"고 판시했는데, 정 씨만 그런 건 아니었다. 민주당은 소속 광역단체장들이 줄줄이 성비위로 불명예 퇴진했는데도 당헌당규까지 바꿔가며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냈다. 드루킹 사건과 대법원 판결로 유죄가 확정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전 정권의 적폐를 그대로 답습했다. 한국 사회의 대표적 진보 논객이던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 사례를 일일이 정리하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말았다.(중략) 거의 모든 게 내로남불이었기 때문"이라고 썼다. 강 교수 개인의 감상만은 아니다. 지난해 5월, 민주당이 자체 실시한 집단심층면접조사(FGI) 보고서에서 응답자들은 민주당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당 색인 파랑(10.0%)에 이어 내로남불(8.5%)을 두 번째로 꼽았다. 지난해 4.7재보선 직후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30.4%가 현 정권 지지율 하락 이유를 '내로남불식 태도와 오만함'이라고 답했다.
셋째는 강성 지지층 때문이다. 정확히는 일부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고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소수의 정치인들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민주당 안팎에선 정치적 체급을 키우는 '공식' 같은 것이 있어왔다. 온갖 개혁과 적폐 청산을 외치며 극단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면 일부 강성 지지자들의 성원을 등에 업고 공천도 받고, 최고위원도 될 수 있었다. 빚을 지면 갚아야 하기에 그들은 강성 지지자들의 과대 대표된 목소리를 대변했고 그때마다 민주당은 실제 민심과 거꾸로 갔다. 지난해 4.7재보선 참패 이후 민주당 서울시당이 자체 실시한 집단심층면접조사(FGI) 보고서에서 면접참여자의 대다수가 '조국 사태'를 패인으로 꼽았지만 일부 의원들은 여전히 '조국 수호'를 외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일부 국회의원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민주당의 정당 지지도는 하락했다. 그러나 강성 지지층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당내 선거에 국한된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 중도 표심이 캐스팅 보트가 아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민주당의 이번 대선 메시지는 '사과'로 압축된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큰절도 올리고 사과를 거듭했지만 결과를 뒤집기엔 너무 늦었던 걸로 판명 난 셈이다.
넷째는 억지 프레임 때문이다. 출입 기자로 지켜본 민주당은 정치적 테크닉 면에선 여전히 비교우위를 가진 정당이다. 학생 시절부터 정치적 경험과 역량을 쌓아온 586세대의 영향 덕일 수도 있다. 문제는 프레임 자체도 그때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민주당 내부에선 이번 대선 정국에서 가장 실패한 프레임 가운데 하나로 '대장동 몸통은 윤석열'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꼽는 의견이 꽤 있다. 2015년 대장동 개발사업 시작 당시 윤석열 당선인은 국정원 댓글수사로 좌천돼 대구고검 검사로 있었다. 민주당 주장대로 2011년 부산저축은행 불법 대출 수사를 덮었다는 의혹이 다 맞다고 가정하더라도 "윤석열도 책임이 있다" 정도여야지 "윤석열이 몸통이다"라는 프레임은 너무 갔다는 얘기다. 같은 이유로 이 프레임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조롱을 받았지만 선대위 고위 관계자들은 "윤석열이 몸통"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지난해 4.7재보선에선 생태탕 타령만 하다 서울 전역에서 참패했다. 시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온갖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공개되는 세상이다. 지나친 억지 프레임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무시당한다고 느낀다.
다섯째는 민주당 자체가 보수화됐기 때문이다. 한때 국민의힘 계열 정당을 보수정당이라고 부르고 민주당은 진보 정당, 진보 진영이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여전히 보수지만 민주당에는 이제 '진보' 자를 붙이지 않는다. 그만큼 민주당이 보수화, 우클릭했기 때문이다. 수권 정당으로 거듭나면서 중도 표심을 얻기 위해 우클릭하고 중도로 다가간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있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민주당이 지향하던 여러 가치를 잃었다는 사실이다.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의 공약은 윤석열 후보의 공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 이름을 바꿔도 될 것 같다"(김동연 전 총리, 2022.1.12.)는 말이 나온 이유다. 현장에서 만나는 민주당 의원 상당수는 선수(選數)가 낮을수록 국민의힘 의원들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고,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민주당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누구를 대변하는지, 선뜻 말할 수 있는 유권자가 얼마나 될까.
5년 만에 정권을 잃은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이런 말이 듣기 좋을 리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5년 전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이 이렇게 다시 정권을 잡을지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금융계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미국의 투자가 레이 달리오는 고통에 자기성찰이 더해져야 비로소 발전이 있다고 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권력은 유한하고 민심은 변한다. 민주당도 지금보다 더 발전해야 한다. 민주당과 그 지지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를 위해서 말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고 민주주의는 여야의 균형과 견제로 굴러가기 때문이다. 향후 5년 훌륭한 야당이 되어야 민주당에 희망이 있다.
(사진=연합뉴스)
강청완 기자blu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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