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듀스테리언 결심! 식단 어떻게 바꿀까?
연초는 계획과 결심을 굳히는 시기다. 우리 가정의 식단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봤다. 지난해 식단을 돌아보면 엉망이었다. 즉석식품, 밀키트, 배달음식 섭취가 습관이 됐다. 새벽배송도 즐겨 받았다. 말로는 환경보호 운운하면서 매주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는 재활용품을 내다버렸다. 개선이 시급하다. 그래서 올해는 리듀스테리언(Reducetarian·육류를 적게 섭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돼볼까 한다.
고기, 생선, 우유, 버터, 치즈, 지방 앞에 '식물성'이라는 말이 붙을 만큼 다양한 식물 기반 식품이 판매된다. 식물성 고기를 넣어 만드는 베지 버거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다. 콩으로 만든 짜장과 미트소스도 있다. 뷰나(Vuna)라는 식물성 참치도 있으며 버섯으로 만든 베이컨도 있다. 우유는 아몬드·귀리·콩 등에 자리를 내준 지 꽤 됐는데, 근래엔 해바라기씨도 우유와 버터의 재료로 쓰인다. 감자를 이용한 대체 우유도 눈길을 끈다.
이토록 기발하고 다양한 식물성 식품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건강과 지구 환경에도 이롭다는 식품은 어떤 풍미를 지니고 있을지 맛보고 SNS에 소중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사람들은 인간이 고기를 먹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는지 알고 있다. 사육 환경과 조건 개선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며 생산하는 육류, 달걀, 유제품을 선택하는 부류가 리듀스테리언이다. 중요한 건 '리듀스(Reduce·줄이다)'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섭취량도 대폭 줄여야 한다는 점이다. 생산 과정을 까다롭게 따져 고르다 보면 선택의 폭이 좁아지니 섭취량도 절로 줄게 될 듯하다. 그런데 머잖아 세포배양육(동물의 세포를 떼어내 배양시킨 고기)이 나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리듀스테리언이라는 말이 곧 사라질 수도 있겠다 싶다.
"암만 좋은 거라도 과하게 먹지 마라"
코로나19를 겪은 세계는 환경에 주목하고 있다. 올해 각광받을 것으로 보이는 식재료를 살펴보니 괜히 어깨가 우쭐해진다. 된장, 고추장, 두부, 강황, 유자, 여러 가지 향신료와 허브 그리고 김치와 사워크라우트(독일식 양배추김치), 요구르트 등 발효식품이 꼽힌다. 다양한 채소는 한식 밥상에 차고 넘친다. 사워크라우트를 제외하면 우리 집 부엌에 늘 있거나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것들이다. 무알코올 음료의 약진도 예측된다. 이것 역시 든든하게 구비해 뒀다.올해 각광받는 식단을 살펴보니 우리 집 식단 개선 방향도 슬며시 보이는 것 같다. 그저 지난해 추구한 편리함을 떨쳐내면 된다. 성실하게 밥 짓고 정성으로 반찬 만들면 더 나은 식탁을 만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말도 되새겨 본다. "암만 좋은 거라도 과하게 먹지 마라. 암(癌·cancer)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봐. 입 구(口)가 세 개 모여 있잖아. 병은 먹을 게 부족할 때보다 많이 먹어서 생기는 경우가 더 많아."
느슨하게 먹고 풍성하게 즐기자
언제부터인가 '플렉시테리언'이 되고 싶었다. 플렉시테리언은 느슨한 채식가다. 주로 채식하지만 때때로 고기와 육류, 달걀과 유제품도 먹는다. 한 번에 섞어 먹기도 하고 구분해 먹기도 한다. 섞어 먹을 경우 늘 먹던 식단(비채식 식단)에서 동물성 식품을 빼고 대체 재료를 찾아 넣는 방법이 가장 수월하다.육류와 해산물, 달걀과 유제품을 제외하더라도 식단을 풍성하게 구성할 수 있다. 재료를 골고루 선택하고 다양한 조리법으로 음식을 만들면 색과 향, 맛과 식감에 무궁무진한 변주가 가능하다. 다만 영양 성분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지 살펴보는 게 좋다. 곡물로부턴 탄수화물을 얻을 수 있다. 식물성 재료에서 얻은 기름과 씨앗, 견과류엔 좋은 지방이 가득하다. 콩과 콩 가공식품엔 단백질이 풍부하다. 비타민과 미네랄, 수분은 다양한 채소와 과일이 충분히 머금고 있다. 행여 부족할 수 있는 칼슘은 미역과 다시마 등 해조류가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
그렇다면 이 다양한 재료 중 무엇을 얼마나 먹어야 할까.섭취해야 할 영양 성분을 필요량 기준으로 나열하면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과 미네랄 순서다. 이 중 단백질은 채식만으로 필요량만큼 얻기 어려울 때가 많다. 콩이나 콩 가공식품만 먹기엔 금방 물려버린다. 이럴 때 플렉시테리언은 생선 한 토막, 오징어 반 마리, 닭 가슴살 한 쪽 등을 먹어 허전함을 메울 수 있다.
한 가지 더. 채소와 과일은 하나같이 흙에 뿌리를 내리고 수분, 햇빛, 공기를 먹으며 자라지만 저마다 고유한 색이 있다. 이러한 색을 만들어내는 화학물질은 피토케미컬이다. 이 물질을 먹으면 체내에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기대할 수 있다. 붉은색은 혈관에 좋은 라이코펜, 녹황색은 면역력에 좋은 베타카로틴, 초록색은 유해 물질을 배출하는 클로로필, 보라색과 검은색은 세포 손상을 방지하는 안토시아닌, 흰색은 항균에 뛰어난 알리신 성분이 들어 있다. 음식을 만들 때 알록달록 색의 조화를 꾀하는 것만으로도 좀 더 건강해질 수 있다.
푸짐한 한 끼로 즐기는 채식
고소한 수프는 양파와 주재료를 버터에 볶아 곱게 간 것에 생크림 또는 우유를 넣고 뭉근히 끓여 만든다. 대개 양파와 주재료가 풍미를 낸다. 버터는 올리브유로 바꾸고 생크림이나 우유는 물로 대체한다. 맹물을 쓰기 싫다면 채수(끓는 물에 채소를 넣고 바로 불을 끈 뒤 하루 동안 푹 재운 것)를 만들어 써도 좋다. 수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채소는 감자, 단호박, 고구마, 당근, 콩(완두콩이 맛있다), 버섯, 토마토, 파프리카, 대파, 우엉, 무 등 다채롭다. 여기에 셀러리, 파슬리, 타임, 오레가노처럼 향긋한 재료를 더해 보자. 나는 고수를 뜯어 넣겠지만 그건 취향의 문제니까.
푸짐하게 한입 가득 씹는 맛으로 한 끼를 채우고 싶다면 굽고, 돌돌 말고, 겹쳐 쌓아보자. 채소와 과일을 구우면 자체의 진한 맛이 더 나온다. 쓴맛, 떫은맛, 아린 맛 같은 거센 부분은 오그라들고 달콤함과 부드러움이 그 자리에 들어선다. 오일과 소금, 후추를 곁들여 너무 타지 않게 잘 구우면 된다. 튀김도 맛있다. 튀길 때는 강황(또는 카레)가루나 말린 허브를 곱게 부숴 튀김옷에 섞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가 즐겨 먹는 국수와 밥 종류는 언제나 채소의 든든한 지원군임을 잊지 말자. 국수와 밥 요리에 고기나 해산물, 달걀을 들어낸다고 해서 맛이 없어지거나 식감이 심심해지는 일은 잘 없다. 혹시 아쉽다면 견과류와 씨앗, 마른 과일이나 채소, 묵은 나물, 다양한 허브와 식물성 기름(매운 고추기름을 포함)이 도움이 될 것이다.
‘비인기 부위' 소비는 지구 지키기
사실 나는 누가 봐도 동물성 식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동물성 식품에 관한 윤리·환경 문제를 접하다 보면 나락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여름이 길어지고 비가 내리지 않는 하늘을 보면 겁이 덜컥 난다. 이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나도 뭘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키워 믿을 수 있는 먹을거리가 사람들 식탁에 올랐으면 좋겠다'는 것. 또 하나의 고민은 '비인기 부위'다. 소나 돼지처럼 큰 동물을 도축하면 정말 다양한 부위가 나오지만 사람들은 특정 부위만 선호한다. 나는 비인기 부위를 소비하는 게 '리듀스테리언'으로서 하나의 실천이라고 본다. 사람들이 많이 먹는 부위를 공급하기 위해 더 많은 도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 방법 중 하나로 '숙성육'이 있다. 숙성 과정을 통해 질기고 커 인기 없는 부위에 풍미와 식감을 더하는 것이다.동물성 식품을 구입할 땐 생산 환경을 따져봐야 한다. 이른바 '친환경'이란 토양에 사는 생물의 순환과 활동을 촉진하고 다양성을 증진하기 위해 농약, 화학비료, 항생제, 항균제, 화학 재료를 사용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말한다. 더 나아가 인공 합성 물질과 GMO(유전자조작) 기술 사용, 방사능 오염이 없어야 한다. 고기의 경우 항생제·항균제 사용 여부와 사료, 축사 환경이 중요하다. 축사에 가서 직접 보지 못하더라도 스마트폰을 통해 살필 수 있다. 참고로 친환경 축산물에는 오메가-3 지방이 더 많이 함유돼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농림수산교육문화정보원, '친환경 농업의 공익적 효과').
육류나 해산물의 물기와 핏기를 흡수하는 패드도 확인해야 한다. 대개 고흡수성 플리머로 만들어져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는 제품이 많다. 고기나 생선을 살 때도 천연 식이섬유(식물세포에서 추출한 셀룰로오스)로 만들어진 패드를 사용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다.
냉장고 속 '음료의 바다'
요즘엔 채식 메뉴를 일부 갖춘 곳, 아예 채식 요리만 판매하는 곳도 있다. 음료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 우유 대신 아몬드 밀크 같은 식물성 제품을 넣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무엇을 선택할지 촘촘하게 생각하고, 어떤 걸 취할 수 있는지 알수록 만족스러운 소비를 경험할 수 있다.커피와 비슷한 풍미를 가진 카페인리스 원료로 오르조(orzo)가 있다. 커피 섭취를 줄여볼 요량으로 한동안 즐겨 먹었다. 이탈리아산 보리를 볶아 만든 분말이다. 구수한 향과 쌉사래하면서 고소한 맛, 짙은 갈색까지 닮아 커피를 대신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임산부나 카페인에 취약한 이들이 즐겨 먹었다. 새롭게 주목받으며 다양한 음료로 변신하고 있다.
커피 자리를 위협하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차(tea)다. 여리고 작은 찻잎은 건조, 덖음, 숙성, 발효, 가향, 가미를 거쳐 커피가 아우를 수 없는 다양하고 무한한 풍미의 세계를 펼쳐낸다. 찻잎뿐 아니라 허브, 향신료, 꽃, 열매(과일), 뿌리, 나무껍질, 곡식(하물며 누룽지)을 가지고 만든 차 음료도 쏟아져 나온다. 분말부터 액상까지 형태도 다양하고, 원료마다 건강에 이로운 기능까지 장착했다. 간단히 완제품으로 구입해 마실 수도 있지만, 천천히 우리고 내리는 시간을 향유하며 문화로 즐길 만한 '스토리'도 갖고 있다.
맛있는 음식에 꼭 필요한 술도 재빠르게 모습을 바꾸고 있다. 다채로운 맛을 가진, 알코올 함유량이 낮은 술이 몇 년간 단단히 자리 잡더니 이제는 '무알코올 술'이 냉장고 맨 앞줄에 등장했다. 무알코올로 불리는 음료는 두 가지로 나뉜다. 비알코올(non alcoholic) 음료는 1% 미만 알코올을 함유하고 있다. 무알코올(alcohol free) 음료는 알코올이 전혀 없다. 마셔보면 큰 차이는 없으나 향이나 맛을 내기 위해 들어가는 성분은 조금씩 다르다. 술과 닮은 무알코올음료의 장점은 취하지 않는다, 열량이 낮다, 칵테일에 유용하다는 것이다. 애주가 입장에서 보자면 맥주를 비롯한 무알코올 탄산음료는 알코올을 함유한 다양한 술에 섞어 마시기 좋다.
음료의 기능성도 음식만큼 확장됐다. 다이어트, 피부 미용, 소화 촉진, 에너지 충전, 영양 보충 등 갖가지 임무를 띤 음료를 동네 편의점에서도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것은 칸나비디올(Cannabidiol·CBD) 함유 음료다. 칸나비디올은 대마 추출물이다. 우리가 천을 짜서 옷이나 소품을 만들고, 섬유소와 단백질이 풍부한 헴프시드(Hemp seed·대마 씨앗)를 얻는 원천이 바로 그 대마다. 헴프시드는 환각을 일으키는 향정신성 물질인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etrahydrocannabinol·THC)을 완전히 제거한 것이라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식재료다. 칸나비디올 성분 역시 THC는 포함돼 있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규제를 받는다. 강력한 항산화 성분과 건강, 미용, 치료 목적으로 이를 식품에 사용하는 국가도 많다. 이미 CBD가 들어간 젤리, 사탕, 과자 등은 있는데, 최근 CBD가 함유된 비알코올 스파클링 와인이 등장했다. 하늘길이 활짝 열리는 날 홍콩으로 날아가 맛보고 싶다.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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