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산불로 불타버린 농기계·창고..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농심 "그래도 농사는 지어야죠"
[경향신문]
“경칩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해야 하는 시기인데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합니다…. 다 불타버리고 남아있는 농기계라고는 콤바인이 전부에요.”
8일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에서 만난 장덕기씨(74)는 까맣게 타 뼈대만 겨우 남아있는 트랙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장씨의 집과 농기계 등을 보관하던 창고는 지난 4일 산불로 모두 불타버렸다. 콤바인만 겨우 건졌다고 했다. 그는 6600㎡ 규모의 땅에서 밭농사와 논농사를 해 왔다. 집 마당에는 꿀벌통 140여개를 놓고 양봉농사도 하고 있었다.
아카시아 꿀은 울진의 특산물이다. 이번 화재로 장씨의 벌꿀통 140여개 중 100여개가 불에 탔다. 장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농사에 뛰어들어 54년을 일해 왔다”며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농기계가 모두 망가졌다”며 울상을 지었다. 이어 “빚을 내서라도 중고 농기계를 구입해 농사를 계속해야겠지만 막막하다”고 했다.
신화2리는 지난 4일 화재로 주택 27곳 중 19곳이 전소됐다. 마을 곳곳마다 타다 남은 비료포대가 쌓여 있었다. 불이 난 지 닷새나 지났지만 열기로 비닐포장이 녹아내린 비료포대에서는 연기가 계속해서 피어 올랐다. 논두렁 곳곳에는 산에서 날아온 불씨가 옮겨붙으면서 생긴 검은색 반점이 보였다. 신화2리 이장 전호동씨는 “마을 주민들이 3월 초부터 농사를 시작하는데 비료도 불 타 버렸고, 농기계마져 망가졌다. 갑갑하다”고 말했다.
신화2리에서 직선거리로 9㎞정도 떨어진 북면 검성리 주민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검성리에서는 주택 50곳 중 절반이 전소돼는 피해를 입었다. 이 마을에 사는 남명자씨(72)는 주택이 불에 타는 것은 가까스로 막았지만 집 바로 옆에 있던 농사용 창고가 전소됐다. 남씨가 창고 속에서 겨우 건진 것은 감자 농사에 쓸 씨감자 4박스가 전부다. 그는 “창고에 있던 씨감자를 화재 전날에 빼둬 겨우 살렸다”며 “창고에 있는 고추건조기, 이양기, 콤바인 등 농기계가 모두 불에 타 감자농사를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4958㎡ 크기의 논에서 쌀을 재배하는 김진기씨(81)는 주택과 농사용 창고를 모두 산불로 잃었다. 창고에 넣어놨던 육묘용 모판 300개가 불에 타 사라졌다. 옥수수 농사를 위해 남겨둔 옥수수종자 5말도 까맣게 변해버렸다. 김씨는 “지금 상황이 꿈이었으면 한다“며 “화재로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래도 농사를 지어야 하지 않겠나. 모든 상황이 빨리 해결돼 농사를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검성리 마을 입구에서 3300㎡ 규모로 고사리 농사를 짓는 주광식씨(77)는 산불 열기로 녹아 딱딱하게 굳어 땅에 붙어버린 비닐을 쇠막대기로 파냈다. 그리고는 고사리가 다 타버린 땅에 비료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는 “고사리 줄기는 모두 불에 탔지만 땅속 뿌리는 아직 살아있어 다음달이면 10㎝ 이상 고사리가 자라 수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울진군은 지난 7일부터 비닐하우스, 농업용창고, 농기계, 농작물 등의 피해를 집계하고 있다. 울진군 관계자는 “산불 피해를 입은 농민들이 농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군이 보유한 농기계 등을 임대해 줄 계획”이라며 “피해 농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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