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반대가 공정? 대선 후보들은 보고 싶은 '청년'만 본다"

2022. 3. 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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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없는 대선④]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 인터뷰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그 어느 세대보다 높다는 청년세대 부동층 비율에 힘입어 그야말로 '청년대선'이 펼쳐졌다. 대선을 앞둔 각 정당이 선거 본부 내 청년조직을 창설하고, 2030 실무진을 영입하며, 청년공약을 쏟아냈다. 대선 후보들은 앞다투어 본인이 청년의 편이라고 말한다. 말로만 듣던 청년정치가 이번에야말로 실현될까.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청년들이 있다. 주요 정당과 후보들이 부르짖는 청년이슈를 두고 그들은 "한정된 담론"이라 말한다. 그들은 20대 대선의 대표적인 청년공약으로 떠오른 모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성차별 구조 속 여성들을 배제하는 공약이라 지적한다. 수도권 중심으로 설계된 주거와 일자리 공약이 지역청년들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주장하며, 청년들의 당면과제인 기후위기 대응에 대해 대선 후보들이 무관심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시작은 지난해 11월이었다. 정계와 언론이 상정한 청년보편의 이야기에서 소외된 각계각층의 청년들이 모여 2022대선청년네트워크를 출범했다. 청년임에도 청년대선에서 배제된 이들의 이야기를 각 후보들에게 직접 전하기 위해서였다. 11월 출범 기자회견 뒤, 참여를 희망한 청년단체는 순식간에 47개까지 불어났다.

단체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공론장을 열어 주목받지 못한 청년의제를 수집하고, 현장 참여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정책요구안을 만들어냈다. 올 1월 △노동 △주거 △지역 △젠더 △기후 등 다섯 개 영역으로 구성된 정책질의서가 각 후보들에게 전달됐다.

4개 주요 정당 후보들 모두가 답변을 보내왔지만, 청년들은 아직 "만족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5개 분야 정책질의에 참여한 각 영역의 청년들을 <프레시안>이 만났다. 실종된 노동, 배제된 여성, 밀려난 기후 등 청년대선이 외면하고 있는 청년의 삶과 의제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바로가기 ☞ : 청년 없는 대선)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노조(Union) 활동에 발을 들인 것은 2017년 즈음이다. 청년유니온의 공동체 약속문에 적힌 세 가지 지향점이 마음에 들었다. 평등과 존중, 그리고 환대였다. "내가 어떤 존재로 있든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노조에 가입했다. 또한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를 존중하며, 모두가 환대받는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환대받는 이들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후보들의 적극적인 청년 구애가 화제가 된 20대 대선만 해도 그랬다. 이 위원장에겐 후보들의 "청년 타령"이 "서울 4년제 대학, 그것도 이과대학 출신의, 그중에서도 남성들에게만 집중된 구애"라고 느껴졌다. 그들은 공정을 회복하겠다면서 공정하지 않은 일터의 관습엔 말을 아꼈다. 상식을 재건하겠다면서 중대재해로 무너진 청년의 삶엔 눈을 감았다. 청년유니온이 2022대선청년네트워크(이하 대선청년넷)의 출범을 결심한 핵심적인 이유다.

"노동에 눈 감으면서 모두를 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건 기만이다."

20대 대선 국면에 쏟아진 후보들의 발언을 가리켜 이 위원장은 이렇게 평했다.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를 존중하며 모두가 환대받는 사회를 위해선 그 무엇보다도 먼저 "노동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프레시안>은 지난달 22일 서울 서대문구 청년유니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2월 22일 서울 서대문구 청년유니온 사무실에서 만난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 ⓒ프레시안(한예섭)

"청년도 노동자인데… 청년 위한다면서 노동 정책 내놓지 않는 후보들"

프레시안 : 20대 대선 국면에선 '노동 의제가 실종됐다'는 평가가 특히 많았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문제 등 지난 대선에서 청년들을 중심으로 화제가 됐던 의제들도 자취를 감췄다. 어떻게 보고 있나.

이채은 : 정확한 말이다. 20대 대선 국면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특징이 있다면, 그 첫 번째가 바로 노동이 실종됐다는 점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주 120시간 노동" 이야기 같은, 엉뚱하고도 시대를 역행하는 발언이 오히려 화제가 됐다. 올 초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후보들의 발언이 이어지기도 했다. 바로 전년도까지 중요한 사회적 화두였던 법안이었는데, 막상 대선 국면에 접어드니 '중대재해법이 일자리를 없앤다'는 식의 기업 '어루만지기' 발언이 주류가 됐다. 노동 의제를 적극적으로 말하는 후보도 없는 데다가, 오히려 반노동적인 경향성이 짙어진 모습이다.

프레시안 : 후보들이 준비한 정책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드러나는 편인가.

이채은 : 그렇다고 본다. 청년유니온에선 대선청년넷 활동 전부터 대선정책TF를 꾸려 주요 대선 후보들의 노동 정책을 살펴봤다. '(일터에서) 일할 권리, 쉴 권리, 안전할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이렇게 네 가지 기준으로 공약을 분석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네 기준 모두를 통틀어 포함되는 공약이 단 하나밖에 없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공식 석상에선 관련된 이야기를 언급했지만 정작 공약으로는 내세우지 않은 후보도 있었다. 노동 공약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후보도 물론 있었지만, 그 정책의 방향이 '불평등 해소'나 '지속 가능성의 구축'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청년 대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요 후보들이 청년에 구애하고 있는 20대 대선인데,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청년을 위한다고 하는데, 정작 청년정책은 없네?'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프레시안 : 노동정책이야말로 청년정책이라는 이야기인 듯하다. 그렇다면 '노동이 왜 청년의 의제인지'에 대해서도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

이채은 : 간혹 청년을 노동이나 노조 따위의 단어와 떼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노동이 청년의 의제인 이유는 단순하다. 청년에게도 노동은 일상이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든 아르바이트를 하든 청년은 노동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 그 노동의 유형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10년 전과 비교해 지금은 노동 종류도 고용 형태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수준이다. 그에 따라 청년 노동의 사각지대까지 넓어지고 있다. 이미 존재하는 사각지대의 문제도 해소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노동 문제는 삶 자체의 문제다. 우리가 보통 하루에 8시간을 일하지 않나. 하루 전체 시간의 3분의 1을 노동하며 보내는데, 그 시간이 괴로운 시간이면 삶이 어떻겠나. 하루 3분의 1이 '차별받는 시간'이라면? '괴롭힘 때문에 괴로운 시간'이라면? 혹은 '아무 의미없이 기계가 되는 시간'이라면? 그건 삶의 행복과 관련된 문제가 아닌가.

프레시안 : 사회 일반이 청년에 대해 말할 때, 청년 노동자라는 정체성에 대해선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사례들이 있을까. '청년들의 노조'가 봐온 청년 노동자의 삶을 들어보고 싶다.

이채은 : 정확히 말하면, 청년유니온은 불안정 청년 노동자를 대변하는 노동조합이다. 청년들의 삶은 다양하고, 그렇기에 누구도 '모든 청년들은 이렇다'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취약한 노동 환경에 놓여 있는 청년 노동자들의 삶을 발견하고 대변하는 일을 하고 있고, 때문에 그들의 삶에 대해 말씀드릴 수는 있겠다.

물론 그 안에도 너무나 많은 사례들이 있다. 가령, 최근에는 플랫폼 노동 속의 청년들이 모두에게 익숙할 것이다. 혹은 지난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도 청년과 관련이 있다. 산업재해의 피해자들 속에도 청년 노동자가 있다. 그렇지만 많은 청년들에게 가장 밀접한 노동현장은 아무래도 프리랜서나 아르바이트 등의 노동현장일 테다. 청년유니온이 최근 가장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들의 경우 '노동법이 있는데도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가령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는 일부 사업주의 경우,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주간 노동 시간을 주휴수당 지급 기준인 15시간 미만으로 쪼개고 쪼개서 아르바이트 청년을 고용한다. 그럼 고용된 청년은 A 사업장에서 14.5시간, 또 B 사업장에서 14.5 시간 일하며 그 어디에서도 주휴수당을 받지 못하게 된다. 프리랜서 청년은 또 어떤가. 출퇴근 시간과 업무지시 구조가 명확히 잡혀 있는데도 계약은 프리랜서로 해야 하는 위장 프리랜서 사업장이 여전히 많다. 사대보험이나 퇴직금 보장도 없이 일하지만, 해고가 두려워 노동 조건 완화를 요구할 수도 없는 경우다.

정치권이, 대선 후보가 일하는 청년들을 위해 공약을 내겠다면, 이런 청년들의 존재부터 인지해야 하지 않겠나.

▲민주노총 배달플랫폼지부 조합원들이 19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 사거리에서 '정지선 지키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배달노동자들에게 겨울용 장갑과 생수, 마스크 등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 반대하는 게 청년의 공정?… 정치권이 보고 싶은 청년만 청년인가"

프레시안 : 오히려 청년이 반노동 흐름의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가령 2020년 인천국제공항 사태 당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분노한 청년들의 여론은 이후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정치권 논의의 흐름을 바꾸었다. 2021년엔 민주노총 등 기존 노동조합의 투쟁에 반대하는 MZ세대 노조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청년세대가 바라는 공정과 기존의 노동조합, 노동운동의 기조가 충돌하고 있다는 평가였다.

이채은 :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다만 당시 "요즘 청년들은 이렇다"며 여론을 호도했던 정치권 및 언론계에 나는 반대로 묻고 싶다. '당신이 말하는 그 요즘 청년들은 대체 누구인가?'라고 말이다. 정치인이나 언론이 이야기하는 주류 청년이 '정말 모든 청년이냐' 혹은 '대표성을 가진 집단이냐'고 물었을 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청년 내부의 굉장히 좁은 집합만을 선정해 모든 청년이라 규정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의문이 든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서울 및 수도권에 거주하는, 4년제 대학교, 그것도 이공계 출신의, 군필자 남성' 정도가 그들이 말하는 청년의 정체에 가깝다.

청년들은 시험이 아닌 다른 경로로 정규직이 되는 것에 분노한다고 한다. 그런데 교육기회 측면에서 불리한 비수도권에 사는 지역 청년, 대학을 나오지 않은 비진학 청년, 혹은 당장 벌이가 급한 빈곤 청년 등은 어떤가. 그들 중 누군가는 시험을 통한 경쟁시장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다. 혹은 진입하더라도 경쟁에 있어 불리한 지점에 위치한다. 그들은 높은 확률로 '부당한 일을 당할 수 있는' 일터에 진입하고,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 일터에 진입한다. 사실, 그런 청년들이 '인국공'에 마음껏 분노할 수 있는 시험 시장 내의 청년들보다 수적으로도 많다.

프레시안 : 청년 내부에서도 노동을 둘러싼 공정 논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일각에선 노동에 대한 대우의 격차가 결국 개인의 ‘노력의 대가’이고, 그래서 개인이 감수해야 할 일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채은 : 전반적으로 재분배에 대한 논의가 후퇴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후퇴한 지점에서 멈추면 안 된다. 노동시장에서 드러나는 격차가 과연 공정한 경쟁의 대가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수능, 공채 등 현재 노동의 질을 일차적으로 가르는 '시험'은 과연 공정한 경쟁인가. 그 전에 시험이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맞는가. 소위 말하는 공부머리 하나로 수없이 다양한 노동 능력을 판단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지금 우리 사회엔 시험을 제외하고는 노력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 새로운 기준을 마련할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그게 가장 편리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청년 혹은 노동자 개인은 그럴 수 있다. 시험이라는 기준에 입각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따위에 억울해 하거나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는 그래선 안 된다. 정치는 시험이라는 경쟁을 공정하지 않게 만드는 많은 요소들, 가령 교육기회나 경제력, 인적 네트워크 등을 고려해서 ‘무엇이 공정한 방식인가’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 시험 말고 어떤 방식으로 노력과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고, 시험으로 측정할 수 없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가 나서서 재분배에 대한 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

프레시안 : 20대 대선 국면에서 '노동이 실종됐다'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인가.

이채은 : 그렇다. 전체적으로 공정, 재분배 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상황이다. 예로, 이번 대선 노동의제의 핵심 중 하나였던 ‘디지털 전환’에 대한 각 후보들의 정책들만 봐도 그렇다. 디지털 전환으로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겠다고들 하는데, 디지털 일자리 내부의 격차에 대해서는 별 고민이 없다. 디지털 노동 내부에도 전문적인 수준을 요하는 고임금-고숙련 노동이 있고, 이른바 디지털 노가다라고 불리는 저임금-저숙련 노동이 있다. 더 많은 청년이 질 좋은 일자리에 진입하게 하려면 결국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교육-소득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런 쪽으로는 후보들의 정책이 구체적이지 않았다.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25일 오후 서울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 보안검색 요원들의 정규직 전환 관련 입장을 발표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대선청년넷 차원에서 후보들에게 노동 분야 정책 질의를 전달하기도 했다. 총평을 해본다면 어떤가.

이채은 :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후보들에게서 정책의 ‘빈틈’이 발견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나 심상정 정의당 후보 같은 경우 노동의제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어필해 왔고, 실제로 공약 설계도 탄탄한 편이었지만 구체성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윤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경우, 답변 자체의 내용보다도 일관성과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윤 후보는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법을 만들겠다"고 답변하셨는데, 평소 발언이나 행보를 보면 진정성이 있는 답변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중대재해법 등 노동자를 위한 규제에 반대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이지 않았나. 안 후보도 마찬가지다. 그 많은 일자리 문제가 전부 "강성 노조 때문에 발생한다"는 협소한 진단으로 어떻게 노동의제에 제대로 접근하겠나.

"노동자를 위한다면서 노동자를 공격하는 정치, 이제는 그만 할 때"

프레시안 : 지금의 반노동 흐름이 문재인 정부의 친노동, 규제 중심 정책의 부작용 때문이라는 말도 많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 근무제 등의 정책이 사업주들을 지나치게 압박했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채은 : 최저임금이나 노동시간 단축 등의 정책에 부작용이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임금을 감당할 수 없는 영세사업자처럼 누군가는 피해를 봤을 수도 있다. 다만 그게 반대로 노동자를 압박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비용을 지불하는 기업의 입장은 이해해야 한다면서, 적절한 비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입장은 왜 이해하려 하지 않는가. 왜 손해는 노동자가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가. 부작용이 있다면 정부가 부작용의 대책을 촘촘히 설계해야 할 뿐이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기만이다.

프레시안 : 과도한 친노동 정책이 시장을 위축시키고, 결국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줄인다는 논리도 있다.

이채은 : 기업에 투자하면 노동자가 덕을 본다는 식의 전형적인 낙수이론이다. 그런데 이미 우리 사회는, 기업에게 투자를 한다고 해서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고 노동자의 처우가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오지 않았나.

프레시안 : 어떤 사례가 있나.

이채은 : 요즘 가게마다 비치된 키오스크만 해도 그렇다. 기술에 투자한 기업이 키오스크를 사들여 인건비를 절감했다. 기술의 발전, 기업에 대한 투자가 사람의 일자리를 줄인 대표적인 사례다. 점점 로봇으로 전환되고 있는 자동차 업계도 마찬가지다.

프레시안 : 자동화는 산업전환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채은 : 산업전환은 어쩔 수 없더라도, 노동자들을 적절하게 준비시키고 그 동안의 고용을 최대한 보장하는 합리적인 전환은 가능하다. 이는 국가와 기업의 의무이기도 하다. 세상 어떤 기업도 기업 혼자만의 힘으로 성장하지 않았다. 기업의 성장에는 국가의 투자와 배려가 영향을 미치고, 국가의 투자는 시민들, 즉 노동자의 세금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생각하면, 결국 노동자를 위한 노동정책은 당연한 '투자 이익의 공유'일 뿐이다.

프레시안 : 반노동적인 행보에 '노동자를 위해서'라는 말을 붙이는 건 기만일 뿐이라는 결론이다.

이채은 : 그렇다. 노동자를 위한다면서 노동자에게 모든 사회적 비용을 감당하게 만들면, 그게 어떻게 노동자를 위한 정책인가. 정책은 원래가 사회적 비용을 결정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일이다. 그 우선순위를 정하고, 속도를 조절하고, 범위를 조정하는 일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자 의무다. 쉬운 정치를 위해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해선 안 된다. 그것은 책임회피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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