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사찰 화엄사] 화엄계곡에 3월이 오면, 홍매화 한 그루 홀로 붉다

글 이재진 편집장 사진 화엄사, 이신영 기자 2022. 3. 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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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 화엄사 경내를 화사하게 물들이는 홍매화. 싸리비를 든 스님의 모습과 어우러져 여여한 사찰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겨울의 끝자락, 지리산 화엄사는 뜨겁다. 깊은 계곡 두꺼운 얼음장 아래엔 해빙을 위한 생명의 몸부림이 분주하고 적요한 산사山寺는 진리와 해탈을 구하는 스님들의 용맹정진으로 용광로처럼 달아오른다. 2월 어느 날 구례를 찾았다.
전남 구례와 전북 남원, 경남 산청, 하동 그리고 함양군에 걸쳐 있는 지리산은 방장산, 두류산, 삼신산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대표 산이다. ‘지리산智異山’은 어리석은 사람도 머물면 지혜로워지는 산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국립공원 1호 타이틀을 그냥 차지한 것이 아니다. 남한 제2봉인 해발 1,915m 천왕봉을 영봉으로 1,507m 노고단을 잇는 능선길 66km를 따라 반야봉과 제석봉·촛대봉·토끼봉 등 크고 작은 100여 개 봉우리가 웅장한 기세로 솟아 있고, 그 아래로 청학·화개·덕산·악양·백무·칠선동을 비롯해 피아골·뱀사골·연곡골 등 지리산 12동천이 비경을 이룬다. 지리산은 어머니 품처럼 강과 산을 넉넉하게 아우르며 백두대간의 남쪽 끝을 이루고 있다.
어디가 포인트일까. 홍매화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다.
지리산 정기가 모여드는 화엄사
화엄사를 기점으로 하는 주능선 종주 코스는 노고단을 거쳐 벽소령, 세석평전, 장터목, 천왕봉에 이르는 산행으로 우리나라 능선 종주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지리산 정기가 모여드는 길목에 자리한 화엄사에 들어서면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으며 옷매무시를 고치게 된다. 화엄사는 지리산을 오르기 전에 반드시 찾아봐야 할 천년고찰이다. 웅혼한 산세에 둘러싸인 화엄사에는 문화재도 많다. 국보 3점을 비롯해 보물 5점, 천연기념물 1점, 비지정문화재 32점 등 그야말로 보물의 산실이다.
해마다 3월 20일 즈음, 화엄사를 찾은 참배객과 관광객들은 홍매紅梅 한 그루에 마음을 빼앗긴다. 각황전과 원통전 사이의 작은 공간에서 피는 이 매화는 꽃이 붉다 못해 검붉다고 하여 흑매화黑梅花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조선 숙종(1674-1720) 때 계파선사가 각황전을 짓고 기념으로 심은 나무로 알려져 있다. 300세를 훌쩍 넘은 고매古梅다.
홍매화가 꽃소식을 알리기 전부터 전국에서 몰려드는 상춘객들은 꼭두새벽부터 이 나무 밑에서 매화향을 기대하면서 ‘이 한 장’ 건지기에 여념이 없다. 화엄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들매화가 있지만 이 홍매화가 더 유명하다.

매화 향기를 암향暗香이라 한다. 코로 맡는 것이 아니라 귀로 냄새를 듣는다는 것이다. 마음이 고요할 때 비로소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뜻. 실학자 홍만선은 “사람을 감싸 뼛속까지 싱그럽게 하는 향기”라고 표현했다.
국내 목조 문화재 건물 가운데 가장 큰 각황전. 국보 67호로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숙종 때 계파선사가 중건했고 인조 때 재건됐다.
문화유산 70%, 천연기념물 10%가 사찰에
사찰에 있는 식물들은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 못지않게 그 색깔과 향기로 우리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사찰은 국보와 보물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문화유산의 70% 이상, 국보와 보물의 절반 이상이 불교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자연유산이라고 할 사찰의 천연기념물에 대해서 주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불자들조차 불상, 탑, 건축물, 불화, 조각 등 문화유산만을 문화재로 알고 있다.
천연기념물(2021년 현재 467건)로 지정된 식물 267건 중에 사찰에 있는 것이 전체의 10%에 육박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 4건 중 3건이 유서 깊은 사찰의 경내에 있다. 화엄사 들매화, 백양사 고불매, 선암사 선암매가 그것이다.
화엄사華嚴寺는 백제 성왕 22년(544)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신라 선덕여왕 14년(645) 자장율사가 부처 진신사리 73과를 모시고 4사자3층 사리석탑과 공양탑을 세웠으며, 원효대사가 화랑들에게 화엄사상을 가르쳤다고 한다. 문무왕 17년(677)에는 의상대사가 2층 4면 7칸 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기고 황금장육불상을 모신 장육전(현재 각황전 자리)과 석등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경덕왕(742~764) 때 8원81암자로 화엄불국의 면모를 갖췄고 신라 말 헌강왕(875) 대에 도선국사가 동오층석탑과 서오층석탑을 조성했다.
지금의 화엄사는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인조 때 벽암선사가 중건했는데 통일신라시대 당시보다 3분의 1로 줄어든 것이라니 통일신라시대 화엄종찰 화엄사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을지 가늠조차 어렵다. 왜란으로 불타기 전 화엄사의 규모가 어떠했는지는 각황전 앞에 있는 석등(국보 12호)의 크기를 보면 어림짐작할 수 있다. 높이 6.4m.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석등 가운데 가장 크다. 일반적으로 석등의 크기와 가람의 규모는 비례하기에 통일신라시대 화엄사의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때 놀라게 된다.
몸과 마음을 위로해 주는 ‘화엄 치유의 길’

화엄사에서 성삼재로 이어지는 15km 길은 계곡과 숲을 양옆으로 어깨동무하며 오르는 길이다, 역사와 문화가 서린 사찰·암자가 어우러지는 길로서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치유의 길’이다. 계곡과 숲에서 발생하는 음이온에 몸이 이완되며 물소리, 바람소리가 지친 마음을 위로해 준다.

화엄계곡을 끼고 화엄사에서 스스로 토굴을 짓고 정진한 화엄사 개조開祖 연기조사의 자취가 남아 있는 연기암까지 이르는 이 길의 이름은 ‘화엄계곡 치유 탐방로’. 일명 화엄숲길로도 불린다. 경사가 완만하고 산책로가 잘 닦여 있어 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다. 특히 초입의 대나무 숲을 걸으면 머리가 맑아진다.
화엄사 모기장 음악회
한여름밤, 화엄사 모기장음악회를 아시나요
홍매화·사사자삼층석탑 사진 콘테스트, 요가대축제 등 ‘찾아가는 사찰’ 로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하는 지리산과 1,400년 역사의 화엄사(주지 덕문스님). 백두대간 남쪽 끝자락을 지탱하는 두 주인공은 우리 가슴을 벅차게 하면서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느끼게 한다. 명산, 명찰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그래서 설렘과 조심스러움이 교차한다. 지금 화엄사는 천년 고찰의 근엄함을 살짝 내려놓고 산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모기가 대중들을 공양하느라 바쁘게 앵앵 거리는 한여름밤의 모기장영화음악회(7월 23일, 8월 6일)를 보자. 절마당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관람객들을 위해 의자 대신 모기장텐트를 설치한다. 관람객들은 모기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안전하게 콘서트를 즐긴다. 옆에는 화엄사 계곡 물소리가 은은하게 들리고 하늘에는 무공해 별빛이 쏟아진다.
연기암에 이르는 길은 두 갈래 길. 화엄사에서 곧바로 연기암까지 이어지는 2km 남짓한 길과 지장암·내원암·청계암·미타암·보적암 등 암자를 순례하듯 걷는 4km쯤 되는 길이 있다. 1코스로 갔다가 2코스로 돌아오면 7km쯤 걷게 되는데 운동 삼아 걷기에 적당한 거리다.
요가대축제
이른 봄, 경내에 은은한 향기를 선사하는 홍매화·들매화 사진 콘테스트(3월 14~27일)는 이미 전국적인 화제를 불러 모으는 이벤트가 됐다.
사사자삼층석탑 복원을 기념해서 열리는 ‘효孝 사진 콘테스트’(연중 개최)는 문화 콘텐츠에 스토리를 입힌 대표적인 이벤트. 문화재를 감상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오래된 유물 속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의미 있는 행사다.
걷기대회와 괘불제, 그리고 클래식 음악이 어우러지는 화엄문화축제(10월 7~19일). 국보 사찰에서는 유일하게 열리고 있는 요가축제(5월 21일 혹은 5월 28일)에는 일반인들과 화엄사 스님 등 300여 명이 참가해 장관을 이룬다.
화엄사는 지리산과 국보급 문화재라는 이미 갖춰진 콘텐츠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문의 061-783-7600.
홍매화·들매화 사진 콘테스트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3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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