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으로 떼돈 번 거래소들, 스포츠·미디어 큰손 됐다

안상현 기자 2022. 3. 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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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가상화폐 최후의 승자는 거래소
넘치는 돈으로 新사업 찾아나서

세계 최대 가상 화폐 거래소로 꼽히는 바이낸스는 104년 역사를 가진 미국 대표 경제지 포브스의 2대 주주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포브스는 올해 1분기 기업인수목적회사(SPAC)를 통해 뉴욕 증시 우회 상장을 준비 중인데, 바이낸스는 최근 이 SPAC에 2억달러(약 2400억원)를 투자했다. 상장이 이뤄지면 바이낸스는 홍콩 투자사 IWM에 이어 2대 주주가 되고, 포브스 이사회 9석 중 2석을 가져가게 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인수 계획은 최근 몇 년 동안 빠른 속도로 성장한 디지털 자산 기업들이 미디어에서 금융에 이르기까지 전통 시장에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뜨거웠던 가상 화폐 시장이 빙하기로 접어들고 있지만, 가상 화폐 거래소들은 지난 몇 년간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력을 과시하며 마케팅과 인수·합병(M&A)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가상 화폐 투자붐의 최대 승리자는 투자자도, 채굴업자도, 발행사도 아닌 거래소”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크립토 볼’ 된 ‘수퍼 볼’

가상 화폐 기업들의 커진 위상을 가장 크게 체감할 수 있는 시장은 스포츠 시장이다. 그해 가장 잘나가는 기업을 가늠할 수 있다는 수퍼볼(Super Bowl) 광고가 대표적이다. 미국 프로미식축구의 챔피언 결정전인 수퍼볼은 전 세계 180여 국가 10억명에게 생중계되고 미국에서만 1억명 넘게 시청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만큼 전 세계 브랜드의 광고 경연장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런데 지난 14일 열린 올해 수퍼 볼은 코인베이스부터 크립토닷컴, FTX, 비트바이 등 여러 가상 화폐 거래소들이 광고주로 참여해 화제가 됐다. 작전타임과 휴식시간에 송출되는 황금시간대 광고를 가상 화폐 기업들이 점령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수퍼볼은 이제 ‘크립토 볼(Crypto Bowl)로 불린다”고 전했다.

광고뿐 아니라 유명 경기장 이름을 바꾸는 방식으로 위세를 과시하기도 한다. 1000만명 이상의 고객을 보유한 가상 화폐 거래소 크립토닷컴은 작년 12월 NBA(미국프로농구) 명문팀 LA 레이커스의 홈구장 명명권을 사들여 22년간 불린 ‘스테이플스 센터’란 이름을 ‘크립토닷컴 아레나’로 바꿨다. 가상 화폐 파생상품 거래소인 FTX 역시 작년 3월 NBA 구단 마이애미히트 홈구장의 명명권을 사들여 ‘FTX 아레나’로 바꿨다. FTX는 이 밖에 MLB(미국프로야구)와 공식 스폰서십을 체결해 심판 유니폼에 FTX 브랜드 패치를 붙이는 등 스포츠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 NBA LA 레이커스 홈구장인 크립토닷컴 아레나 앞을 한 행인이 지나고 있다. 이 경기장은 과거 스테이플스 센터로 불렸으나, 가상화폐 거래소 크립토닷컴은 7억달러를 내고 20년간 명명권을 사들였다. /AFP연합

가상 화폐 거래소가 스포츠 마케팅에 적극적인 이유는 비주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서다. 베스 에건 시러큐스대 교수(광고학)는 “이 회사들은 (스포츠 광고를 통해) 구석에서 변덕스러운 일을 하는 이상한 꼬마가 아니라 제대로 된 기업이자 광고주이며 주류라는 것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했다. FTX 창업자 겸 CEO(최고경영자) 샘 뱅크먼 프라이드는 수퍼볼 광고에 대해 “우리를 널리 알리는 방법”이라며 “장소 관점에서 보면 이보다 더 높은 인지도를 지닌 곳은 찾기 어렵다”고 했다.

◇막대한 자금력으로 新사업 진출

수퍼볼 광고는 30초 송출에 최대 700만달러(약 84억원)가 든다. 크립토닷컴과 FTX가 사들인 경기장 명명권 가격만 해도 각각 7억달러(약 8430억원), 1억3500억달러(약 1620억원)에 달한다. 즉, 파격적인 마케팅 활동은 거래소들이 그만큼 높은 자본력을 갖췄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상 화폐 거래 시 수수료를 받는 비즈니스 모델로 작년 한 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나스닥에 상장한 코인베이스만 해도 지난 24일(현지 시각) 보낸 주주 서한에서 작년 순수익(Net Income)이 무려 36억2400만달러(약 4조3600억원)로 전년 대비 11배 가까이 성장했다고 밝혔다. 거래량 세계 1위 거래소인 바이낸스의 경우 작년에만 최소 200억달러(약 24조900억원)의 매출을 거뒀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국내 거래소 역시 큰 소득을 벌어들인 건 마찬가지다. 국내 1위 거래소로 꼽히는 업비트의 운영사 두나무의 작년 매출은 3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기 과시용 홍보·마케팅과 함께 가상 화폐 거래소들은 새 먹거리를 찾는 데도 큰돈을 지출하고 있다. 매출의 80~90%를 거래 수수료에 의존하다 보니 신(新)사업 진출로 수익 다각화를 꾀하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말 이후 가상 화폐 대세 하락 흐름이 뚜렷해지면서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가령, 코인베이스는 지난해 10월 NFT(대체불가능한토큰)를 거래할 수 있는 마켓플레이스 출범 계획을 발표했고, 올해 들어선 미국과 멕시코 간 가상자산을 송금하는 파일럿 서비스를 시작하며 국제 송금 사업에 뛰어들었다. 포브스 지분을 사들인 바이낸스는 게임사나 통신사, 대형 연예기획사와 손잡는 방식으로 NFT나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사업에 진출 중이다. 국내 기업 중에서도 넷마블과 SM·YG엔터테인먼트가 바이낸스와 손을 잡았다.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해 NFT나 메타버스를 만들고 거래까지 하겠다는 심산이다. 두나무는 블록체인 시장을 벗어나 ‘증권플러스 비상장’이라는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을 만들며 주식 거래 사업에도 진출했다. 출시 2년이 지난 증권플러스 비상장의 가입 회원 수는 90만명에 누적 거래 건수는 22만건에 이른다.

가상 화폐 거래소들은 투자자들을 통해 떼돈을 벌었지만, 투자자 보호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가상 화폐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허울뿐인 코인 상장(ICO) 등 각종 사기나 시장 조작이 횡행하지만 거래소들은 규제나 제재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거래소들도 작년부터 투자자보호센터(업비트)나 고객지원센터(빗썸)를 신설하는 등 투자자 보호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상담이나 예방 교육 위주여서 투자자들 사이에선 “그간 번 돈에 비하면 생색내기 수준”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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