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진 러·중 밀월, 똘똘 뭉친 미국·유럽..선택 강요받는 한국 외교
세계 곳곳서 '서방 Vs 러중' 대립 구도 고착화 전망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줄 타는 새
미국, 태평양 전략 핵심 국가서 제외
지정학적 위치 고려, 한미동맹 강화해야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세계 평화체제에 균열이 생기면서 세계 곳곳에서는 신냉전 시대가 개막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91년 옛 소련 붕괴와 함께 종식된 냉전이 30여년 만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지의 국가들이 다시 하나로 똘똘 뭉쳐 러시아와 중국 견제에 나섰고, 러시아와 중국 역시 대미 단일대오를 형성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향후 상당 기간 고착화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 정세가 급변하면서 한국의 외교 정책·전략도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기존의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외교는 신냉전 시대에선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 우크라 침공은 신냉전 서막”…러·중 밀월 깊어질 듯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옛 소련 재건을 원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에서 “그(푸틴)는 우크라이나보다 훨씬 더 큰 야심을 갖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옛 소련 재건을 위한 첫 번째 행보로 계획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뜻으로 읽힌다.
존스홉킨스 대학의 마리 사로테 역사학 교수는 1일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두 번째 냉전 시대다”라고 진단했다. 이어서 “첫 냉전 시절보다 상황이 더욱 나쁠 것이라는 점이 두렵다. 이번에는 미국과 동맹국들은 러시아는 물론 중국, 이란, 북한과 싸워야 한다. 멀리서 전쟁을 지켜보는 이들도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한국 역시 자유롭지 않다. 사로테 교수가 언급한 ‘멀리서 전쟁을 지켜보는 이들’에 속한다. 지정학적으로만 보더라도 북한과 대치하고 있으며, 미·중·일·러 사이에 끼어 있다. 미국과 일본은 기존처럼 끈끈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러시아와 중국의 밀월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은 이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비판이 아닌 중립을 택하면서 ‘가재는 게 편’임을 증명했다.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은 러시아를 돕는다면 중국 역시 제재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와 중국의 밀월 관계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깊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장 이번 서방의 대러 제재와 관련해서도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였을 때 러시아가 도왔듯, 중국 역시 도움의 손길을 뻗을 것이란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에 맞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에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시도할 것”이라며 “중국 역시 경제적으로는 러시아를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적극 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선택 강요받는 한국 외교전략…“한미동맹 강화해야”
이처럼 주변국들의 상황이 급변하면서 한국 외교 전략의 중요성도 커졌다. 기존의 외교 기조를 재검토할 필요성도 확대했다. 현재는 중국이 실제로 대만을 무력통일할 경우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조차 불분명하다.
미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는 조언이다. 한국은 미국·일본·인도·호주의 안보협의체 쿼드(Quad)에도,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기밀정보 동맹체 파이브아이즈(Five Eyes)에도 속해 있지 않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서도 일본처럼 미국을 적극 공개 지지한 것도 아니다.
한국이 바이든 정부의 이번 대러 수출 통제에서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한 것도 예견된 결과라는 평이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안미경중 외교 전략이 너무 모호하기 때문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박근혜 전 정부 이후 미국의 한국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 예를 들어 과거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 핵심 국가로 한국과 일본을 지목했지만 지금은 호주와 일본을 언급하고 있다. 그것이 미국이 바라보는 한국의 현 주소”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서 “정말로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진 않을 것으로 보지만, 그렇더라도 최소한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는 기존 전략은 버려야 한다. 이미 둘 중 한 곳을 선택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며 “우리의 지정학적인 위치, 미국의 중국 견제 등을 감안하면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이미 작년 5월 한미 정상회담서 그리 하기로 했지만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방성훈 (b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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