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등장하는 최초의 우주 상상화

한겨레 2022. 3. 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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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의 과거창][박상준의 과거창]
'우주미술의 아버지' 보네스텔의 그림
1950년대작 '한반도 상공의 인공위성'
보네스텔이 1950년대에 그린 한반도 상공의 인공위성 상상도. 출처: LOOK

금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달 탐사선이 발사될 예정이다. 게다가 국가가 아닌 민간 기업들이 우주개발에 나서는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나라 역시 숱한 우주 관련 기업들이 생겨났다. 앞으로 몇 년 사이에 사람들이 우주를 대하는 문화적 정서도 극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사실 1980년대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소년’이라면 으레 우주를 탐사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그 당시에, 그러니까 대략 1950년대부터 30여년 이상 우리에게 익숙한 우주와 우주개발 이미지를 그림으로 형상화했던 대표적인 화가가 체슬리 보네스텔(Chesley Bonestell, 1888-1986)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컬럼비아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던 보네스텔은 어릴 때부터 천체망원경으로 토성 등을 관측하면 바로 집으로 돌아와 그림을 그리곤 했다고 한다.

그의 우주 그림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40년대 중반에 ‘라이프’지에 토성과 그 위성들의 그림을 실으면서부터다. 그 전까지 건축 및 영화계에서 일했던 그는 당시 배운 구도며 관점 등을 천문학에 그대로 적용시켜 누구도 접해보지 못했던 놀라운 우주 상상도를 잇달아 그려냈다. 마치 우주선을 타고 직접 그곳에 가서 사진을 찍어 온 것처럼 생생한 그의 그림들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 뒤 SF분야를 필두로 숱한 잡지와 단행본 등에 표지화 및 삽화를 그렸으며 나중에는 베르너 폰 브라운과 교류하는 등 미국의 우주개발 프로그램에까지도 큰 영향을 끼치기에 이르렀다.

보네스텔이 1948년에 그린 수성 표면 상상도. 출처: Bonestell LLC reproduction.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 수년 전의 그림

보네스텔의 그림을 검색해보면 중장년들은 누구나 ‘아!’하고 반가운 탄식을 내뱉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얘기지만 당시는 우리나라가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하기 전이어서 보네스텔의 그림들이 수십 년 동안이나 출처 표기 없이 온갖 잡지며 단행본 책자들에 실리곤 했다. 한편으로 그런 그림들을 보며 우주의 꿈을 키운 사람들도 많았다. 비록 이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보네스텔은 우리나라에서 ‘우주를 꿈꾸는 소년’들을 키우는 데도 상당한 기여를 한 셈이다. 물론 그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다. 우주선이 외계 행성에 착륙한 상상도나 지구 상공에 떠 있는 우주정거장 등 우주개발과 관련된 사실상 대부분의 이미지는 그에게 빚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는 ‘현대 스페이스 아트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화성의 한 크레이터(충돌구) 및 소행성 하나에도 그의 이름이 붙었다.

보네스텔의 그림 중에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반도 상공에 인공위성이 떠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도 있다. 1950년대 전반, 아마도 한국전쟁 중이거나 직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을 살피는 인공위성의 모습을 담고 있다. 아마 한반도가 등장하는 최초의 우주화(宇宙畵)일 것이다. 이 그림 속 인공위성의 모습을 보면 로켓 발사체의 뾰족한 맨 앞 첨단 부분이 그대로 인공위성의 몸통을 이룬 것을 볼 수 있다. 당시는 인공위성 탑재체를 감싸는 로켓 최상단의 페어링(덮개) 같은 설계 개념이 자리 잡기 전이거나 혹은 보네스텔의 독자적인 인공위성 구상 개념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가 발사되기도 전에 한반도 상공을 지나는 인공위성의 생생한 그림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그림은 처음에 미국의 화보 잡지 ‘룩’(LOOK)에 실렸으며, 1956년 미국에서 출간된 교양과학서 ‘The Exploration of Mars’에 재수록되었다. 그림에는 ‘12월에 하얼빈 남쪽 상공 350마일(약 560km) 고도를 지나며 한반도를 살피고 있는 인공위성’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밤 시간대라서 희미하기는 하지만 한반도의 윤곽이 뚜렷하게 보인다.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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