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금고지기를 맡아라! 신한은행 또 출혈경쟁 나설까
● 2018년 우리은행 104년 독점 깬 신한은행
● 4년 전 공개입찰에 3015억 원 출연금 써내
● 금감원, 기관경고 및 과태료 21억 원 부과
● “징계 받고 일부 적자라도 수주하는 게 이득”
● 출연금 배점 낮췄지만 평가 항목 개선 필요
지자체의 예산과 기금 관리를 맡을 금고은행은 각 지자체에서 공개입찰 방식으로 결정한다. 금고은행으로 선정되면 시의 현금과 유가증권 출납보관, 세입금 수납이체, 세출금 지급 등을 도맡게 된다. 서울시는 통상 5월경 금고은행을 선정했으나, 올해는 3월 대선과 6월 서울시장 선거 영향으로 선정 날짜를 두 달가량 앞당겼다.
현재 서울시 금고를 운영하는 은행은 두 군데로 1금고는 신한은행이, 2금고는 우리은행이 관리한다. 1915년 경성부 금고 시절부터 2018년까지 104년간 우리은행이 서울시 금고를 독점으로 맡았다. 그러나 서울시가 2018년 시금고 선정을 앞두고 단일금고 체제를 복수금고 체제로 개편하면서 1금고에는 일반특별회계, 2금고에는 기금 관리를 맡기기로 했다. 바뀐 방침에 따라 각 은행은 공개입찰에 나섰다. 신한은행이 우리은행 독점 체제를 깨고 1금고 사업자로 선정됐다.
배점 높이려 과감한 출연금 베팅
2018년 입찰 당시 각 은행은 상당한 수준의 출연금을 약정해 논란이 됐다. 출연금은 일종의 협력사업비로 금고은행이 지자체 자금을 대신 운용해주고 투자수익 일부를 출연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신한은행은 금고 운영을 위한 전산망 구축비용으로 1000억 원을 제시하는 등 3015억 원의 출연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는데, 이는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였다. 신한은행은 과감하게 출연금을 베팅해 금고 지정을 위한 평가 기준 점수를 높이는 전략을 썼다.이는 결국 문제가 됐다. 금융감독원은 신한은행이 서울시 금고지기를 차지하기 위해 제시한 출연금 액수가 정상 수준을 벗어난다고 판단한 것. 지난해 3월 금감원은 신한은행을 종합검사한 결과를 토대로 신한은행에 기관경고 제재와 과태료 21억3110만 원을 부과했다. 금감원은 신한은행이 전산망 구축비용으로 제시한 1000억 원 가운데 393억 원은 꼭 필요한 비용이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2018년 서울시 금고 유치전을 총괄한 위성호 당시 신한은행장(현 흥국생명 부회장)에게 주의적 경고(상당)를 통보했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 금고 지정을 놓고 은행 간 과당경쟁이 벌어지자 비판이 제기됐다. 은행이 과도한 출연금을 지출하는 데 따른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일반 고객에게 돌아갈 혜택을 줄이는 등의 피해 전가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2019년 3월 행정안전부는 금고 선정제도 개선안을 내놨다. 문제가 된 협력사업비 배점을 기존 4점에서 2점으로 축소하고, 금리 배점을 15점에서 18점으로 확대해 출연금이 아닌 이자 경쟁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기준을 바꿨다. 또 협력사업비가 순이자 마진을 초과하거나 전년 대비 출연 규모가 20% 이상 증액되는 경우 가운데 하나라도 해당되면 출연금이 과다한 경우로 보고 지자체가 행정안전부에 보고하도록 하는 방침도 내렸다. 당시 고규창 행정안전부 지방재정경제실장은 "금고 본연의 업무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기준을 개선하고, 협력사업비 등 금고제도 운영 전반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각 은행은 지자체 금고 운영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어느 정도인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업무상 비밀이라는 게 표면적 이유다. 단순히 운영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만 놓고 보면 실익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2018년 서울시 금고 입찰에 3000억 원이 넘는 출연금을 제시한 데다가 과태료까지 내게 된 탓에 2021년 이후에야 서울시 금고사업의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영예 사업'이라기엔 부수적 이익 상당해
금융권에서는 지자체 금고 사업을 두고 이익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은행의 영예 사업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산술적으로 계산기를 두들겨 보면 경쟁에 쏟아붓는 자금과 노력 대비 수익이 적다. 지자체 금고로 선정되면 공신력을 얻는 등 TV 광고보다 더 큰 홍보 효과를 누리기 때문에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어떤 업계보다 실익을 따지는 은행권에서 단순히 영예를 얻기 위해 시금고 사업에 뛰어든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시금고로 지정되면 산하기관을 비롯해 공무원과 가족 등을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적 이익이 상당하다고 지적한다. 정대걸 법률사무소 로바인 대표는 "실익이 없다는 말은 거짓이다. 수천억 원에 이르는 출연금 이상의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은행들이 출혈경쟁을 벌이는 것"이라며 "일단 지자체 금고은행이 바뀌면 소속 공무원들은 급여통장부터 바꾸는데 은행은 부도 위험 0%인 우량 고객을 앉아서 받는 셈이다. 상품만 잘 끼워 팔아도 영업이익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또한 시금고 은행으로 지정되면 지자체의 신규 사업을 수주하는 데도 유리한 조건에 선다. 실제로 신한은행은 최근 4년간 서울시 금고를 운영하며 1000억 원을 투입해 전산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를 통해 쌓은 운영 노하우를 발판으로 다양한 서울시 수익사업을 수주했다.
지난해 11월 신한은행과 신한카드는 서울시가 발행하는 서울사랑상품권 운영사업자에 뽑혀 1월 24일 '서울pay+' 앱을 출시하고 판매부터 결제, 정산까지 담당하고 있다. 또 신한은행은 지난해 12월부터 서울시 공공 애플리케이션 서울지갑 내 '이사온'에 비대면 전세자금대출 서비스를 연계 제공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 대표는 "신한은행은 서울시의 신사업 추진에 즉각 발맞춰 대응하면서 수익사업을 확대했다. 이는 금고은행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인 셈이다. 다른 은행들이 이번 서울시 금고 입찰에 사활을 거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연금 상한선 없어… 평가 항목 개선해야
이번 서울시 금고 입찰의 경우 평가 기준이 4년 전과 달라져 전과 같은 전략으로는 승부를 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평가 기준에서 협력사업비 배점이 기존 4점에서 2점으로 낮아져 은행들이 출연금 베팅으로 점수를 높이는 것에 회의적일 수 있다. 또 금리 배점이 15점에서 18점으로 높아져 각 은행이 최고 수준의 금리를 제시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여 당락을 가르는 변수로 작용하기 어렵다.
경영과 협업 역량 측면에서도 평가 기준이 달라졌다. 금고업무 관리 능력 배점이 19점에서 22점으로, 자치단체 자율 항목 배점이 9점에서 11점으로 높아졌다. 이에 따라 신한은행은 2018년과 같이 대규모 출연금으로 협력사업비 점수를 높이기보다는 4년 동안 쌓은 금고업무 노하우와 서울시에 기여해 온 실적을 바탕으로 입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공개입찰이기 때문에 전략을 밝힐 수 없다"면서도 "서울시 금고은행으로서 역량을 잘 살려서 이번에도 선정되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평가 항목이 달라지지 않는 한 시중은행의 출연금 베팅은 계속될 것이란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평가 항목에서 배점이 조정됐지만 금리나 업무 능력 등은 대동소이한 수준이기 때문에 결국은 은행들이 출연금 베팅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공동대표는 "결국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출연금이다. 은행 내부적으로는 적자가 예상돼도 '제 살 깎아 먹기' 식으로 출혈경쟁을 벌이는데 결국 은행 재정건전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출연금 상한을 규정하지 않고, 출연금 액수에 비해 징계 수준이 낮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행정안전부가 2019년에 발표한 금고지정 평가항목 및 배점기준 개선안에는 협력사업비의 상한선을 규정하는 내용은 없다. 다만 전년 대비 출연 규모가 20% 이상 증액되면 보고하도록 하고, 행정안전부는 조치가 필요한 경우 금융 당국에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평가 항목을 개선하고, 평가 점수를 외부에 공개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대표는 "출연금 상한선이 없고, 3000억 원에 대한 과징금이 21억 원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은행의 과당경쟁은 계속 우려될 수밖에 없다"며 "ESG 경영 실적 가산이라든지, 징계나 채용 비리 관련 감점이라든지 평가 항목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또 형식적으로 배점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에 따른 가감 요인을 외부에 공개하도록 해 심사위원들이 신중한 판단을 하게끔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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