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왜 '홍주'를 '홍성'으로 지명을 바꿨을까
의병활동 일었던 홍주의 지명세 낮추려는 일본의 의도
[홍성]일제의 의해 만들어진 지명인 '홍성군'이란 이름은 어떤 속사정이 숨어있을까.
백야 김좌진, 만해 한용운 등 충남에서 두 번째로 많은 246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홍성군이지만 일제가 만든 '홍성'이란 지명을 아직까지 쓰고 있는 게 부조화다. 충절의 고장이자 충남도청 소재지로 군이 시 전환을 준비하고 있는 터라 시 전환과 맞물려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옛 지명인 '홍주'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27일 홍성군지에 따르면 일제는 1914년 행정단위 통·폐합 방침에 따라 당시 홍주군이 결성군을 통합하고, 보령군의 일부를 합쳐 홍주의 '홍'자와 결성의 '성'을 붙여 '홍성군'으로 지명을 개명했다. 일제가 이렇게 지명을 바꾼 이유는 일본어로 '홍주'와 '공주'가 모두 '코우슈우'로 발음되기 때문에 행정 운영상으로 분란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홍성군지는 설명했다. 결국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던 '홍주'란 지명은 그렇게 일제에 의해 사라졌다. '홍주' 지명은 2018년 1000년을 맞았다.
그러나 홍성군지는 '홍주'란 지명세를 낮추기 위한 일제의 의도된 속내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홍주는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과 외교권이 빼앗긴 을사늑약이 있을 때 '홍주의병'이 일어났던 곳이다. '홍주성전투'는 전국적으로 의병전쟁을 폭발시킨 도화선이 됐다. 홍주가 항일정신이 깊게 뿌리 내린 고을이기 때문에 일제가 지명세를 낮추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는 것. 같은 맥락으로 일제는 홍주의병 후 홍주의 맥을 끊기 위해 홍주성 홍주동헌을 가로막아 건물을 지었는데, 이 건물이 현재의 홍성군청이다.
2015년 군민들이 중심이 된 '홍주지명되찾기범운동본부(본부장 오석범·현 민주평통 홍성군협의회장)'가 출범, 학술세미나와 토론회 등을 통해 홍주 지명 되찾기에 나섰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석범 본부장은 "홍주지명되찾기범운동본부 출범 당시 군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을 때 절반 이상이 홍성 지명을 홍주로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아줬다"며 "군과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군은 일단 시 승격을 먼저 생각했고, 우리는 우선 지명 변경 후 시 전환 추진이라는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홍주지명되찾기범운동본부나 군은 홍주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군 관계자는 "'도청 또는 도의회 소재지 군은 시로 할 수 있다'는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 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며 "지금은 시 전환에 집중을 하고 있지만 이후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때 군민들의 의견을 모아 지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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