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익진의 무비 셰프 <30> 장만옥(張曼玉), '화양연화'와 '첨밀밀'의 주인공

정익진의 무비 셰프 <30> 장만옥(張曼玉)
‘화양연화’와 ‘첨밀밀’의 주인공
장만옥의 대표작은 거의 다 본듯하다. 그녀의 대표작은 ‘화양연화’(2000) ‘열혈남아’(1988) ‘아비정전’(1990) ‘첨밀밀’(1996) 등이다. 장만옥(1964년생)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유명한 배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녀 앨범도 뒤져보고 이것저것 필요한 책을 뒤지듯이 자료를 찾아보았다.
장만옥이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수상작은 ‘클린’(2004)이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인 것 같다. 나만 몰랐을까. 장만옥에 눈길이 갔던 때가 영화 ‘첨밀밀’과 ‘화양영화’를 보고 나서인 것 같다. 화양연화(花樣年華)에 대해서는 무비셰프 양조위 편에서 어느 정도 언급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화양연화 리마스터링‘을 재상영한다고 한다. 다음은 홍보 문구다. “사랑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서로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의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시간을 그린 로맨스”. 리마스터링(remastering)은 음질을 향상하거나 녹음 방식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다시 마스터링하는 일이다. 고음질, 고 화질을 위한 일종의 재편집 과정으로 보면되겠다.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인기가 많아서일까. 화양연화의 뜻이 아름다워서일까. 장만옥과 양조위가 멋진 배우이기 때문일까. 아무튼 여러 가지 이유로 ‘화양연화’는 인기가 많다. 국내에서 몇몇 시인이 장만옥에 대한 시와 화양연화란 제목으로 지은 시편들이 있어 눈길이 갔다. 김사인 시인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전문이다.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나가지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없다는 말처럼이나 속절없이. 수염은 희끗해지고 짓궂은 시간은 눈가에 내려앉아 잡아당기지. 어느덧 모든 유리창엔 먼지가 앉지 흐릿해지지. 어디서 끈을 놓친 것일까. 아무도 우리를 맞당겨주지 않지 어느 날부터. 누구도 빛나는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지.
눈멀고 귀먹은 시간이 곧 오리니 겨울 숲처럼
더는 아무것도 애닯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리니
잘 가렴 눈물겨운 날들아.
작은 우산 속 어깨를 겯고 꽃장화 탕탕 물장난 치며
슬픔 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철모르는 오누인 듯 살아가리라.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거라.“

花: 꽃 화/ 樣: 모양 양, 상수리나무 상/ 年: 해 연, ,아첨할 년/ 華: 빛날 화, 이렇게 해서 화양연화이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표현하는 말이다. 내 인생의 전성기, 내 인생 하이라이트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다음은 위의 시를 읽고 난 뒤의 나의 감상문이다.
’봄날, 작은 나비의 날개처럼 분분히 날리는 벚꽃잎이 땅에 떨어지고 그 꽃잎들이 바람에 도르르 굴러가고, 목련은 목련대로 목을 있는 대로 길게 뻗어 구름 높이까지 닿으려다 그만 그 목이 부러져…‘
영화 ‘첨밀밀’(甛蜜蜜, 1996년)은 몇 번 본 것 같다. 영화관은 아닌 것 같고, 비디오 가게(비디오 가게가 언제 없어졌는지?)에서 비디오를 본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정식으로 한번 보았고 티브이에서 상영할 때마다 뜯어 먹기 좋은 빵을 조금씩 뜯어 먹듯이 맛있게 맛있게 이 영화를 보았다. 언제봐도 아름다운 영화다.
1997년 개봉한 홍콩 영화다. 진가신(여자 이름 같은데 남자임)이 감독, 장만옥과 여명이 주연을 맡았다. 영어 제목이 Comrades: Almost a Love Story(동지들: 거의 러브스토리에 가까운)이다. ‘comrades’는 실제로 공산권 국가에서 사용하는 ‘동지나 동무’를 뜻한다. (러시아권의 영화를 보면 가끔 “꼼레드“라는 발음을 가끔 들을 수 있다) 16회 홍콩영화상에서 작품상, 감독상(진가신), 여우주연상(장만옥), 남우조연상(증지위), 각본상을 비롯한 9개 부문을 휩쓸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시골 깡촌 중의 깡촌 출신이고 촌빨 중의 촌빨, 쌩판 모르는 젊은 두 남녀가 각자 서울로 무작정 상경해서 좌충우돌, 다짜고짜, 닥치는 대로 돈이 될 만한 일을 뼈빠지게 하면서 살아가려 애쓴다. 그래도 아름다운 청춘남녀가 아닌가.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결실을 맺게 되는데, 시간이 참 오래도 걸린다.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등려군의 노래가 참 아름답고 슬프게 들려온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애잔한 잔광을 남기고 가는 노을의 그림자를 떠올린다. 뭐 대충 이렇게 말할 수 있지싶다.
有緣千里來相會(유연천리래상회) 인연이 있다면, 천리 멀리에 떨어져 있어도 만나지만
無緣對面不相逢(무연대면불상봉) 인연이 없다면, 얼굴을 마주하고 살지라도 만나지 못한다.

마음에 드는 영화라 그런지 기억에 담아 둘 만한 장면이 많다. 첫 장면부터 재미있다. 홍콩 어느 역에 열차가 선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우리의 남자 주인공 여소군(여명 분), 그의 등 뒤 좌석에서 서로 뒤통수를 맞대고 역시 잠이 든 이요(장만옥 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중국 본토 시골에서 올라온 이들 젊은 남녀는 누군가가 깨우는 목소리에 황급히 깨어나 입가에 침도 닦지 않고(?) 각자 목적지로 가게 된다. 이때부터 우리의 남자 주인공 여명은 역대급 ‘띨빡 and 어리버리’ 연기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닭집에서 일하게 되어 바보 같은 표정으로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 자전거에 생닭을 매달고 신나게 배달하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촌스럽게 웃으며 밥을 먹는 소군, 그에게 홍콩이란 신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애정이 싹트기 시작한 소군과 이요, 어느 날 썸타는 분위기 속에 저녁을 같이 먹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이요의 외투 단추를 끼워 주려 하는 여소군, 오늘따라 왜 이리 단추가 잠기지 않는가. 단추가 갑자기 너무 커져 단추 구멍에 잘 채워지지 않은 탓일까(?). 이들은 이미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와 너무 근접해 있다. 이요의 마음과 몸은 미풍에 흔들리는 커튼 자락처럼 한들거린다. 마침내 이요의 머리가 소군의 왼쪽 빗장뼈 위로 쿵 하고 찍힌다. 이 강력한 진동음에 어쩔줄 몰라하는 소군, 일명 ‘단추가 잘 채워지지 않아’. 이 장면도 기억 남는다.
이후, 운명의 엇갈림 속에서 이요는 뼈 빠지게 독하게 모은 돈으로 주식에 투자하지만 쫄딱 망해 쪽빡을 차게 된다. 장대비 내리는 암울한 미래 속에 갈팡질팡하던 중 암흑가 보스 표형(증지위 분/ 정말 믿음직한 싸나이 중 싸나이)을 만나 연인이 된다. 그렇게 소군과 속절없이 헤어진 뒤 1990년, 이요는 소군의 결혼식에서 3년 만에 재회하게 된다. 여전히 서로를 향한 사랑을 포착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이요는 애인을 따라 떠나고 소군만 남게 된다. 또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 미국으로 떠났던 소군은 가수 등려군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전자대리점 앞에서 운명처럼 관광가이드를 하고 있던 이요와 조우한다. 이 장면의 여운이 소실점으로 타 들어가는 노을빛처럼 오래토록 남는다.
등려군이 부른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이다. 뜻은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당신은 나에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었습니다.
나의 마음도 진짜입니다.
나의 사랑도 진짜입니다.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합니다.
당신이 나에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었습니다.
나의 마음은 떠나지 않습니다.
나의 사랑은 떠나지 않습니다.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합니다.
스타일시한 치파오 차림으로 ‘화양연화’에 출연한 장만옥, 목이 유달리 길게 보여서 그랬는지 모딜리아니가 그린 그림 속 여인들 모습이 문득 문득 떠오른다. 만약 모딜리아니가 장만옥을 그렸다면 어떻게 그렸을까. 목도 더 길게, 팔도 길게, 손가락도 허리도 길게 늘어뜨렸을 것 같다. 그가 그린 다른 여성들처럼 온통 푸른 색깔 눈동자로 그렸을까. 장만옥에 대한 시가 있어 한 편 소개한다. 천수호 시인의 ‘장만옥이라는 이름에 대하여’이다.
화양연화 속의 그녀
남자들은 잘록한 허리에 빠지지만
나는 ‘장만옥’이라는 이름에 홀린다
‘장’에 묻은 장칼의 비장함과
‘만’이 품은 중국식 야끼만두 냄새,
‘옥’의 한국식 촌스럼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그녀의 이름에 혹하는 건
그 적절한 ‘만’과 ‘옥’의 이미지에 있다
가령 ‘옥’이 강화된 ‘옥분’이나 ‘옥순’이거나
‘옥’의 이미지를 뻗어나간 ‘순옥’이나‘분옥’이가 아닌
단단한 차이나식 칼라의 ‘만’에 대해
그 滿 수위(水位)를 눈앞에 찰랑이게 하는
화양연화 속의 그녀 뒷모습
오래 훔쳐보는 것은
장만옥이라는 그 적절한 결함에 있다
재미있는 시이고 기억에 남는 시이다. 다 좋지만 특히 ” ‘만’이 품은 중국식 야끼만두 냄새,“ 인상 깊다.

장만옥(張曼玉, Maggie Cheung, 1964년생)은 영국령 홍콩 출생이다. 8세 때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하였으나 홍콩으로 돌아와 학교를 마치고, 1980~1990년대 홍콩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여배우다. 현재 국적은 영국으로 되어있다. 섬세한 감정 연기에서 폭발적인 연기 모든 것을 훌륭히 소화해내는 명 배우. 호리호리하고 고전적인 외모에 연기력도 빼어나 80여 편 영화에 출연했다.
데뷔 초에는 늘 토끼같이 놀란 한 가지 표정으로만 연기한다고 입방아에 올랐으나 이후, 왕가위 감독이 발탁해 장만옥 특유의 여리여리한 몸매와 도도한 표정을 끌어내어 여러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그 이후 연기력에도 엄청난 발전을 선보인다. ‘화양연화’에서 입었던 치파오 복장을 섹시하게 소화해낸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완령옥’으로 홍콩 여배우 최초로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1990년대 홍콩 영화계를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매김한다. 프랑스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1998년 결혼했다가 2001년 이혼했다. 3년 뒤 ‘클린’으로 협업하는 등 이혼 뒤에도 원만한 사이를 유지했다고 전한다. ‘클린’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추신: 장만옥의 최근 모습이라 해서 무심코 클릭했더니, 그녀도 어느덧 환갑을 눈앞에 두고 있다. 소문난 골초라 한다. 담배 관련 질환으로 병원을 들락거리는 모습이 파파라치들에게 찍혔다는 이야기도 있고 가수의 길을 가겠다며 뜬금없이 록 페스티발에 참여해 ‘신이 버린 목소리’라는 악평을 받는 등 최근 몇 년 그녀에 대한 좋은 소식은 드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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