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속옷만 걸치고 나온 20대女..'데이트 폭력' 직감한 경찰이 한 일

홍효진 기자, 강주헌 기자 2022. 2. 26.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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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손종협 강동경찰서 천호지구대 경위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34만건(2019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지난 16일 새벽. 영하 10도 추위 속에 A씨(여·22)씨는 속옷 차림으로 거리로 뛰쳐나왔다. 손이 자꾸 떨렸다. 간신히 '112'를 누른 A씨가 울먹이며 말했다. "남자친구가 때려서 밖으로 도망쳤어요." A씨의 목소리는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서울 강동경찰서 천호지구대로 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오전 1시20분. 당시 야간 근무 중이던 손종협 경위(52) 등 지구대원 2명은 급히 신고 장소인 인근 원룸으로 출동했다. 오전 1시23분 현장에 도착한 이들은 건물 앞에서 떨고 있던 A씨와 함께 원룸 안으로 들어갔다. A씨는 함께 사는 남자친구가 목을 조르고 물건을 집어던져 급하게 도망쳤다고 했다.

집안은 난장판을 연상케 했다. 소주와 콜라가 쏟아진 채 뒤섞여 바닥을 적시고 있었고,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휴대전화와 노트북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만취 상태인 피의자 B씨(24)는 경찰과 A씨를 향해 욕설을 쏟아내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위험 상황을 감지하고 A씨와 B씨를 재빨리 분리한 손 경위는 B씨의 몸통을 붙잡아 힘으로 제압한 뒤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지난 24일 오후 2시 천호지구대에서 만난 손 경위는 "데이트폭력 신고 현장에 나갈 때 가장 긴장된다"며 "더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될 위험이 있는 만큼 발빠르게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출동한다"고 말했다. 당시 현장을 떠올리던 손 경위의 눈빛도 덩달아 매서워졌다.
"XXX아, 네가 신고했어?" 만취에 폭언... 데이트폭력범 힘으로 제압한 '베테랑'
지난 24일 오후 2시 서울 강동경찰서 천호지구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한 손종협 경위(52). /사진=홍효진 기자

초동 조치가 미흡했다면 피해자가 더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손 경위의 순발력은 빛을 발했다. 손 경위는 "XXX아, 네가 신고했냐"며 피해자를 향해 욕설 섞인 고함을 치던 B씨로부터 A씨를 즉각 분리한 뒤 지구대로 안내했다.

손 경위는 "피의자가 자꾸 욕설을 하거나 고함을 지르는 등 공격성을 보였다"며 "한 장소에 같이 둬선 안된다고 판단해 피해자를 즉시 지구대로 안내하고 현장에는 경찰과 피의자만 있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임의동행을 거부하던 B씨는 경찰에게도 욕설과 함께 "넌 이름이 뭐냐"며 시비를 걸거나 팔을 휘두르는 등 폭력적인 태도를 보였다. 30여분간 실랑이를 벌이던 손 경위는 당시 현장에 함께 나온 본서 여성청소년수사과 소속 경찰관들과 함께 B씨의 몸통을 잡고 제압해 수갑을 채웠다. '미란다 원칙'이 고지되는 순간에도 B씨는 경찰관 제복을 잡아찢는 등 격한 모습이었다.

손 경위는 "피해자도 처벌을 원하는 상황이라 폭행 및 재물손괴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했다"며 "순찰차 앞에서도 '안 타겠다'고 저항해서 힘으로 제압해 태운 뒤 지구대로 데려왔다"고 말했다. 오전 2시15분쯤 지구대에 도착해 조사를 받은 B씨는 이후 3시30분쯤 본서로 인계됐다. 피해자 A씨는 진술서 작성을 마친 뒤 집으로 귀가조치됐다.

현장 경찰로서 최근 데이트폭력 신고가 급증한 사실을 체감 중이라고 손 경위는 말한다. 손 경위는 "데이트폭력 현장은 피의자가 흥분 상태로 행동을 주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더욱 주의해야 한다"며 "최근 관련 신고가 많이 들어오는데 현장에 나갈 때마다 긴장을 늦추지 말자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웃경찰'로 산 26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
지난 24일 오후 2시 서울 강동경찰서 천호지구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한 손종협 경위(52). /사진=홍효진 기자
올해로 경찰 생활 26년째인 손 경위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시민들의 '이웃경찰'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자살기도자를 구하기 위해 광진교 일대를 수색해 무사히 구조해내기도 했다.

손 경위는 "밤 11시쯤 '남편이 자살하려는 것 같다'는 아내 분의 신고를 받고 광진교 밑을 수색하던 중 허리까지 물에 잠긴 남자 분이 울고 계신 걸 발견했다"며 "가까이 다가가 '아무리 괴로워도 이런 선택은 안 된다'고 설득하며 팔을 잡아당겨 구조했다. 누군가의 소중한 생명을 지켜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6년 전 2016년 12월, 서부경찰서 응암3파출소에 근무할 당시에도 손 경위는 항상 이웃 곁에 있었다. 당시 은평구 내 초등학교 3곳에 급식용 식자재를 운반하는 트럭차량이 도난됐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손 경위는 차량 회사에 도난 차량 위치 추적을 의뢰하며 발빠르게 움직였다.

손 경위는 서대문구 북가좌동으로 차량 위치가 확인되자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 범인을 검거했다. 체포 당시 범인은 술에 취한 채 차량을 훔쳐 본인 집 근처까지 운전해간 뒤 그대로 잠이 든 상태였다.

손 경위는 "당시 신고가 새벽 4시쯤 들어왔는데 7시쯤 도난차량을 찾아 범인을 잡았다"며 "그날 찾지 못했다면 아이들이 밥을 굶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손 경위는 제복을 벗고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시민들의 불편사항을 목격한 즉시 나서는 '해결사'다. 지난해 12월,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을 때도 차량이 눈 속에 박혀 오도가도 못한 채 방치된 한 시민을 손 경위는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기억을 더듬던 그는 "그때 경찰관이라는 사실을 밝히진 않았다"며 쑥스럽다는 듯 웃어보이며 "어려움에 처한 시민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은 근무 중이 아닐 때도 항상 갖고 있다"고 전했다.

시민 곁에 있는 경찰로 기억되고 싶다고 밝힌 손 경위는 "26년간 경찰의 삶을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할 만큼 타고난 경찰이다. 손 경위는 "무엇이 됐든 시민들께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행복하다"며 "언제든 신고해 주시면 시민 곁으로 달려가겠다"고 힘차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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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효진 기자 hyost@mt.co.kr, 강주헌 기자 z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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