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전입, 여러 대 사전예약..전기차 보조금 쟁탈전 '불꽃'

신수민 2022. 2. 2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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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선착순 보조금 언제까지
기아차에서 출시한 준중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6. [사진 각 사]
# A(52)씨는 지난해 하반기 여러 달에 걸쳐 현대 아이오닉5, 제네시스 GV60, 테슬라 모델3 등 전기차 6종을 본인 명의로 구매 계약했다. A씨가 거주하는 곳의 지자체는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출고등록순’으로 준다. 하나만 계약했다가 출고가 늦어져서 보조금을 못 받을까봐 불안해 여러 대를 사전예약해둔 것이다. 그런데 전기차 보조금은 한 사람당 1대만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A씨는 지자체가 ‘세대당 1대’라는 보조금 지급 조건은 내걸지 않았음을 확인, 6종 중에 2종을 골라 본인과 아내 명의로 하나씩 나눠 보조금을 지자체에 신청했다. 보조금 받을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A씨는 “1종은 사전예약을 취소했고, 나머지 4종은 보조금을 신청한 2종 중 하나에 대한 지급이 확정되면 (예약을) 취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B(43)씨는 지난해 10월 기아 EV6를 계약했다. 당시 딜러는 반도체 공급난이 심각하다며 출고 대기 기간 1년을 예상했다. 이후 지난 14일 충북 옥천군의 전기차 보조금 신청 공고를 본 B씨는 딜러에게 ‘취소차’를 알아봐줄 수 있는지 부탁했다. 옥천군은 ‘접수순’으로 보조금을 준다는데 B씨가 사전예약한 EV6는 출고 대기 3번이라 불안했기 때문이다. 취소차란 누군가가 계약한 차가 출고됐지만 단순 변심에 의해 구매 의사가 철회됐거나, 지자체 보조금이 다 떨어져 인수가 포기된 차량을 말한다. B씨는 “취소차가 구해져서 옥천군에 보조금 신청을 했더니 1주일 뒤 옥천군으로부터 지급 대상으로 ‘잠정’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지자체 대부분 출고등록순 보조금 지급

아우디의 준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트론. [사진 각 사]
올해 전기차 보조금 접수 신청이 시작되면서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선 이 같은 ‘보조금 쟁탈 대란’이 한층 뜨거워지고 있다. 지자체들이 보조금을 선착순으로 지급하다보니 1대만 구매할 예정인데도 여러 대를 사전예약하거나, 취소차 쟁탈전을 벌이는 등 변칙적 경쟁이 유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전엔 보조금 지급 조건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내건 지자체로 (소비자가) 주소지를 아예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온라인 전기차 커뮤니티엔 관련 문의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각 지자체의 전기차 보조금 지원은 지난달 19일 행정예고한 정부의 ‘2022년 전기자동차 보급사업 보조금 업무처리지침’ 개정안에 따라 시행된다. 올 들어서는 지난해 800만원이었던 최대 보조금(전기 승용차 기준)이 700만원으로 인하됐고, 6000만~9000만원이던 보조금 지급 상한액 기준도 5500만~8500만원으로 낮아졌다. 그런데 보조금 쟁탈전에 지친 소비자들은 이보다 지자체의 보조금 지급 대상 선정 기준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각 지자체는 올해도 ▶출고등록순 ▶접수순 ▶추첨순 가운데 선택해 보조금을 주는데, 결국 셋 다 소비자를 극한의 경쟁으로 내모는 선착순의 방식이어서다. 특히 대부분의 지자체가 택하고 있는 출고등록순의 방식은 소비자가 보조금 신청 후 지급 대상자로 결정된 날로부터 3개월 안에 차량이 출고돼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진 반도체 공급난에 출고 대기가 길어지면서 소비자들은 고민이 깊어졌다. 이 때문에 여러 대를 사전예약하는 식의 ‘작전’이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보조금을 받기 위한 기본 경쟁 자체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해진 것도 소비자들을 옥죄고 있다. 지난해 국내 전기차 신규등록 대수는 10만439대로 전년(4만6718대)보다 2배 넘게 증가했다.

전기차 보조금은 국비와 지방비가 함께 지급되는 형태다. 국비는 동일하지만 지방비는 지자체 간 천차만별이다. 가령 전기 승용차 기준 서울시민이 200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때 부산에선 350만원, 전남 진도에선 최대 95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지자체마다 가용할 수 있는 전체 예산 규모가 달라서 그에 맞게 전기차 쪽의 예산과 물량 편성을 하기 때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자체별로 재정 자립도가 다르고 인구 구성 등에 따라 (전기차) 수요의 성격이 다를 수 있다”며 “세세한 부분까지 통제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에 지자체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다보니 일부 소비자가 전기차 보조금을 더 많이 받으려는 마음에 ‘위장전입’을 했다 적발되는 등의 문제도 있었다.

미국선 구매 후 리베이트로 보조금

테슬라의 중형 전기 세단 모델3. [사진 각 사]
이런 문제를 최소화하려면 현 전기차 보조금의 ‘선지급’ 방식을 ‘후불(후지급)’ 방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영석 한라대 교수(스마트모빌리티공학부)는 “현재 불필요한 출고 전쟁으로 소비자들까지 고생을 하고 있다”며 “차량을 구입해 1~2년 주행한 뒤 그때 보조금을 후불 형태로 준다면 지금 같은 보조금 쟁탈전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상훈 제주연구원 박사는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지금의 보조금 체계는 단점이 더 많이 부각되기 시작했다”며 “수요가 제도에 의해 단절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보조금을 선지급으로 단번에 주기보다, 쿠폰을 지급하거나 연말정산 세액 공제 항목으로 정하는 식으로 정책을 바꿔 행정적 부담을 덜고 소비자들도 보다 쉽게 혜택을 받도록 시도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해외 사례를 참고할 필요도 있다. 미국 주정부에선 소비자가 친환경차 구매 후 일정 금액을 돌려받는 리베이트 형식으로 보조금을 지급한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주는 최대 4500달러의 보조금을 리베이트 형식으로 지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지자체별 보조금 지급 기준이 천차만별인 데 따른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보조금에서 지방비를 없애는 방안도 고민해봄직하다고 전한다. 손 박사는 “지금 방식은 지자체가 더 과감하게 친환경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지만, 지자체 간 혜택 불균형을 심화시킨다는 단점이 있다”며 “보조금에서 지방비를 없애고, 지자체들이 그 예산을 (충전소 확충 등) 전기차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쓰도록 하는 게 소비자에게 더 효과적 정책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지금의 지급 방식을 큰 틀에선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자동차공학과)는 “현재 보조금 지급 정책은 얼마나 많은 친환경 자동차를 나오게 하느냐가 최우선 목적이기 때문에 출고대기순으로 선지급하는 게 옳다고 본다”며 “다만 하루이틀 차이로 보조금을 못 받는 등의 극단적 경우를 방지하려면 전체 지자체 지원 대수 중 80~90%는 출고등록순으로 하고, 10~20%는 후순위를 부여해 지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국산·수입 전기차 보조금 동일…전문가 “국산 인센티브 줘야”

「 현행 전기차 구매 보조금은 국내 제조사와 수입사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지급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국고를 털어 해외에서 제조된 전기차에 너무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국내 차종에만 보조금을 지급할 순 없다. 이 경우 세계무역기구(WTO)의 보조금 및 상계조치에 관한 협정,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 등 국제 규범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호성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기차 보조금 정책엔 환경적 가치 외에도 신산업 분야 선점에 따른 ‘실익’ 개념이 엄연히 포함된다”며 “세계 주요국에선 보조금 지급 때 자국의 실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중국은 정부가 장려하는 배터리 교환 서비스(BaaS) 기술이 적용된 전기차의 경우 보조금 가격 기준(30만 위안 이하)에서 예외로 둔다. 일본은 자국 내에서 생산된 순수 전기차(BEV)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PHEV) 대부분에 재난 발생 때 비상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외부 급전 기능이 장착된 점을 고려, 외부 급전 기능이 탑재된 전기차엔 추가로 보조금을 지급한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미래자동차학과)는 “정부가 국내 기업의 전기차 관련 연구개발(R&D) 비용을 지원하거나, 국내 생산 전기차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제조 과정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영석 교수는 “자국 기업의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엔 보조금을 더 지급한다거나, 배터리를 재활용하는 것에 대한 국내 기준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국산과 외제 전기차를 차별하진 않지만 (국산 차에 대한) 여러 인센티브를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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