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바코 인사이드] '농구인 안준호'가 남긴 한 마디, "세상에 공짜는 없더라고요"

손동환 2022. 2. 2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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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2년 1월호에 게재됐고, 인터뷰는 2021년 12월 21일에 진행됐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과정 없는 결과는 없다. 특히, 누구나 인정하는 성과에는 생각했던 것 이상의 노력과 땀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과정’이라는 단어를 중요하게 여긴다.
농구 선수와 프로 구단 감독, 농구 행정가를 모두 경험한 안준호 전 KBL 전무이사도 마찬가지였다. ‘과정’과 ‘결과’에 관해 꽤 직설적인 말을 건넸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였다. 흘려들을 수 있는 평범한 말이었지만,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농구인 안준호’의 인생 철학과 농구 철학이 함축된 말이었기 때문이다.

감독 안준호 : 팬들의 추억에 남는 이름
안준호는 선수 그리고 감독으로서 최고의 성과를 남긴 인물이다. 남들보다 늦게 농구를 시작했지만, 1982 뉴델리 아시안게임에 대한민국 남자농구 대표팀의 선수 자격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KBL이 출범한 후에는 서울 삼성의 감독으로서 챔피언 결정전 우승 1회(2005~2006)와 준우승 2회(2007~2008, 2008~2009)를 이끌었다. KBL 역대 감독 중 최다 승수 11위(217승 202패, 승률 : 50.6%)를 기록한 명장이다.
성과도 성과지만, 캐릭터 있는 감독이었다. 다소 허당끼(?) 있는 작전 타임과 느닷없는 사자성어 투척, 경기 중 무릎을 꿇은 채 선수들을 바라보는 자세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농구인 안준호’가 팬들에게 아직도 추억으로 남아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진로 농구단(현 서울 SK)의 감독으로 KBL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지도자를 하던 1990년대에, 농구가 겨울 스포츠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덕분에, 농구대잔치가 프로농구로 이어질 수 있었죠. 프로농구가 초창기에 활성화된 이유이기도 했죠.
여러 기업이 프로농구단을 창단했고, LG와 제가 감독으로 있었던 진로도 창단을 결정했습니다. 당시 두 기업이 각각 하나의 대학교에서 선수를 데리고 올 수 있었는데, LG는 고려대를 선택했고, 저희는 서장훈이 있는 연세대학교를 선택했습니다.
고려대에는 많은 선수들이 있었고, 연세대에는 서장훈 외에 다른 선수들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서장훈 선수는 당시 유학을 떠났죠.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선수 구성에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엄청 열악했죠.
IMF 사태로 인해, 진로에 경제적인 위기도 있었습니다. 창단한 지 1년 정도 만에, SK로 합병이 됐어요. ‘진로’라는 이름으로는 창단식도 못했어요. 어쨌든 저는 SK의 감독으로 프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고, KBL도 10개 구단 체제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농구인 안준호’ 하면, ‘서울 삼성 감독’을 많이 떠올립니다.
저는 삼성에서 선수 시절을 보냈습니다. 친정 팀이라고 볼 수 있죠. 저의 피 끓는 젊음과 저의 꿈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삼성의 코치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부터 2011년까지 감독으로 있었고요. 다행히 제가 감독을 하는 동안, 저희 팀은 플레이오프에 모두 나갔습니다. 그 기간 동안 챔피언 결정전에 3번을 올라갔고, 우승도 한 번 했죠. 덕분에, 신명 나게 감독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운이 많이 따랐습니다. 이상민(현 서울 삼성 감독)과 서장훈, 우지원과 주희정(현 고려대 감독), 강혁(현 대구 한국가스공사 코치)과 이규섭(현 서울 삼성 코치) 등 최고의 스타와 함께 했거든요. 게다가 그 때의 삼성은 어느 구단보다 지원을 많이 받았습니다. 감독이 원하는 걸, 구단에서 다 해줄 정도였죠.
‘무릎 꿇어 앉는 자세’는 감독님의 상징과 같았습니다.
서서 선수들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됐지만, 밑에서 위를 보는 게 더 잘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경기 중에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구상할 수 있는 적합한 자세이기도 했고요. 저한테는 그 자세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꽤 오랜 시간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아프지는 않으셨어요?
네.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웃음)

코트를 떠난 명장(名將), 코트 밖 세상에 나서다
‘감독 안준호’는 2010~2011 시즌 종료 후 코트를 떠났다. 하지만 ‘농구인 안준호’는 코트를 떠나지 않았다. 2011년 9월부터 KBL의 경기이사로 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KBL에 몸을 담았던 안준호는 2014년 미국으로 떠났다. 농구의 본고장에서 또 다른 세상을 경험했다. 농구인으로서 농구 선배로서 걸어야 할 길도 알게 됐다. 코트 밖 세상에 나선 명장(名將)은 돈 주고 사기 어려운 다양한 경험치를 획득했다.

2011년 9월 1일, KBL 경기이사에 임명됐습니다.
미국 유학을 준비했습니다. 그 때 KBL의 새로운 집행부가 탄생했습니다. 한선교 총재님께서 “나와 함께 KBL을 발전시켜보지 않겠냐?”라는 제의를 했습니다.
그렇게 KBL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경기이사를 먼저 했지만, 나중에는 전무이사를 맡았습니다. KBL의 전반적인 운영 방향과 홍보, 중계권 계약 등을 지휘했죠.
제 농구 인생에 선수와 지도자뿐만 아니라, ‘농구 행정가’라는 이력이 추가됐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을 했기에, 더 영광스러운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KBL에 있을 때의 기억도 크게 남아있는 것 같아요.
KBL에 있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KBL에 있는 동안, 대한민국 남자농구 대표팀이 2013 FIBA 아시아선수권과 2014 FIBA 농구 월드컵,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나섰습니다.
당시 저희 KBL이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위해 20억 정도를 지원했습니다. KBL에서 이사회를 할 때, “너무 많이 주는 것 아니냐?”는 반대 여론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 나라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린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나라 남자농구 대표팀이 우승을 하는 것과 못한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금메달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이상이라고 본다. 최소 100억의 가치는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대표팀을 맡았던 유재학 감독(현 울산 현대모비스 감독)이 금메달로 화답해줬고요.
안타까웠던 일도 있습니다. 2012~2013 시즌에 터진 강동희 전 감독의 승부 조작입니다. 파장이 컸죠. 농구 붐을 일으키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잘 극복해서 마무리했던 기억이 납니다.
KBL에서 임기를 마친 후, 미국에 있는 세인트 존스 대학교로 갔습니다.
제가 예전에 UCLA로 연수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감독님이 스티브 래빈이었고, 그 분과 잘 알고 지냈습니다. 그 분께서 세인트 존스 대학교의 감독이 됐고, 저는 객원코치로서 선수들과 호흡할 수 있었어요. 홈 경기를 위한 훈련과 어웨이 경기를 위한 훈련, 홈 경기와 어웨이 경기 모두 참가했죠.
많은 분들께서 아시겠지만, 미국은 농구의 본고장입니다. 또, NBA와 NCAA는 미국 겨울 스포츠의 문화로 자리매김했고요. 그런 곳에서 새로운 농구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걸 느끼셨나요?
먼저 많은 구단과 학교가 심리적인 요소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느꼈습니다. 어느 팀이든 어느 학교든, 스포츠 심리학 박사가 팀의 스태프로 꼭 있더라고요. 그 정도로, 멘탈에 관한 요소가 발달했다고 느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팀 분위기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자율적인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팀에 속한 구성원 모두 내재된 규칙을 꼭 지켰습니다. 무엇보다 감독과 코칭스태프, 선수 모두 ‘태도’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농구를 대하는 태도 말입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태도가 행동과 결과를 결정짓는다는 생각한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그런 요소는 인간의 삶에도 적용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미국 농구인들이 농구를 접하는 태도가 더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또, 미국에서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은 기부 문화를 일반적인 요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조언을 해줬던 미국의 한 농구 관계자도 “기부하는 사람한테는 1%의 가치일 수 있어도,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100% 이상의 가치로 다가온다”며 기부 문화의 의미를 설명하더라고요. 그걸 듣고, 우리 프로 스포츠에도 그런 문화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프로농구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또, 예전에는 농구가 겨울의 핵심 컨텐츠였지만, 지금은 겨울에도 즐길 수 있는 게 워낙 많잖아요. 많은 컨텐츠와 경쟁하기 위해, 농구만의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점이 미국에서 깨달은 핵심인 것 같아요.

“스포츠는 공짜가 없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든, 거저 얻을 수 있는 건 없다는 뜻이다. 노력과 땀이 있어야, 원하는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스포츠인들에게 더욱 다가오는 말이다. ‘개인 경기력 향상’과 ‘팀 승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연구와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력과 땀 없이 얻을 수 없는 성과이기도 하다.
‘농구인 안준호’의 철학을 알 수 있는 어구이기도 했다. ‘최선’이라는 단어를 먼저 언급한 안준호는 인터뷰 말미에 “특히, 스포츠는 공짜가 없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자신보다 현직에 있는 농구인들에게 응원을 부탁했다. 그게 ‘농구인 안준호’의 마지막 말이었다.

2014년 이후 근황을 알 수 없었습니다.
한국프로스포츠위원회 전문위원으로 1년 정도 있었습니다. 7개의 스포츠 단체가 스포츠 토토로 얻은 수익금을 분배하고 관리하는 단체였죠.
또, 문화체육관광부가 스포츠윤리센터를 만들기 전에, 스포츠 부정 방지 교육 팀을 꾸렸습니다. 저는 그 팀의 장으로서 부정 방지 교육을 했습니다. 각종 스포츠 연맹과 각종 구단에 있는 분들, 그리고 선수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했죠.
어릴 때부터 많은 땀을 흘려 프로까지 온 선수들이 한 번의 실수만 범해도,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인성에 관한 걸 더욱 강조했습니다. 또, 경희대 겸임교수로서 1주일에 3번 스포츠 윤리와 체육 세미나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지난 해부터는 경희대학교 총동문회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2019년이었나요? 뉴스를 통해, 잠깐이나마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잠실에 위치한 한 아파트의 입주자 대표 회장이 됐다는 뉴스였습니다.
맞습니다. 잠실의 L 아파트 입주자 대표 회장을 맡았습니다. 5,671 채의 아파트를 관리해야 하기에, 해야 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또, 검은 손과 비리, 법적인 문제들이 많은데, 이를 정화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장을 잠시 맡았죠.
그렇지만 역시나 쉽지 않았습니다. 농구는 3~40년을 했기에 대부분의 농구인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지만, 아파트 입주 대표 회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 이뤄진 조직이었고, 철학도 맞지 않았죠. 그런 이유로, 먼저 그만두겠다고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웃음)
‘농구인 안준호’를 돌아봐주세요.
제가 좋아하는 사자성어에 맞게 행동하려고 했습니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을 먼저 하려고 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道理)나 정도(正道)에는 거칠 게 없다는 뜻이죠. 또, 불광불급(不狂不及)을 실천하려고 했습니다. ‘미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 후에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한 후,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을 생각했죠.
돌아보면, 위에 언급한 사자성어대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죠. 최선을 다한 만큼, 행운도 따라줬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니, 행복도 따라온 것 같아요.
무엇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특히, 스포츠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에는 땀 흘린 만큼의 대가가 꼭 따라오거든요. 지금도 그런 철학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흡을 다할 때까지, 저는 ‘영원한 농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농구인 안준호’를 추억으로 삼는 분들한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저를 추억으로 삼지 말아야죠.(웃음) 물론, 저를 기억해주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프로농구와 아마추어 농구를 더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팬들께서 더 많은 격려와 더 많은 응원을 보내주시면, 농구인들이 더 훌륭한 컨텐츠를 팬들한테 제공할 겁니다.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농구’를 팬 여러분들에게 제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제공 = KBL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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