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물가 3.1%·성장률 3.0% 전망..금리 동결 러·우크라 충돌시 물가는 더 오르고, 성장률은 떨어질 듯 국제유가 10% 더 오르면 물가상승률 최대 0.25%p 상승 美 제재 강도에 따라 성장·물가 영향 편차 커 '차기 총재 없어도' 이르면 5월 금리 인상 재개 전망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출처: 한국은행)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한국은행이 올해 물가상승률을 3.1%로 예측하며 석 달 만에 1.1%포인트나 상향 조정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무력 충돌이 임박하면서 전망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이미 브렌트유 기준으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미국 등 서방국가의 러시아 제재 강도에 따라 성장률, 물가상승률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게 달라져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무엇보다 ‘물가 안정’에 통화정책의 초점을 맞출 때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 본인은 3월말 임기 종료로 떠나지만 올 연말 기준금리 수준은 1.75~2.00%가 적절하다며 차기 총재에게 숙제를 남겨뒀다. 이에 시장에선 이르면 2분기, 5월께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전망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러·우크라, 원자재 몰려 있는 금싸라기 땅에 전쟁이라니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4일 정기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금통위원 만장일치로 연 1.25%로 동결했다. 작년 8월, 11월에 이어 올 1월 반 년새 세 차례나 금리를 올리면서 금리 인상의 파급효과를 지켜볼 필요성이 커진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임박에 경제·물가·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예단하기 어렵단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을 3.0%로 작년 11월 전망치를 유지한 반면 물가상승률은 성장률보다 높은 3.1%로 제시했다. 2011년(4.0%) 이후 11년래 최고 상승률이다. 성장률에 대한 자신감은 떨어졌고 물가상승률은 상방 위험이 크다고 언급했다. 한은은 통방 문구에서 1월엔 올해 3% 수준의 성장률이 전망된다고 밝혔으나 2월엔 3%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며 3%에서 소폭 하향 조정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사실상 성장률, 물가상승률의 흐름은 러·우크라 전쟁과 이에 따른 경제적 제재 및 보복 조치 등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천연가스, 원유, 밀, 구리, 팔라듐 등 각종 원자재가 나오는 금싸라기 땅이라 전쟁시 전 세계 성장, 물가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양국이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쟁시 원자재 수급 불균형이 나타날 것이고 이는 국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서방 국가에서 경제 제재 수위를 상당히 높인다면 글로벌 교역까지 위축돼 국내 생산, 수출도 위추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은은 양국간 긴장 관계가 지속되는 상황만을 고려해 성장률, 물가 등을 전망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발표되는 전면전 가능성, 경제적 제재 확대 등을 고려하면 한은 전망보다 성장률은 더 낮아지고 물가 상승률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미국에선 러시아에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등 고강도 제재 조치 또한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렸으나 제재시 유럽 국가들의 피해가 크기 때문에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은 카드로 판단된다. 스위프트에서 러시아가 퇴출되면 러시아는 사실상 무역이 중단되는 것과 같아 유럽 등이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공급 등을 받을 수 없게 돼 유럽의 손해가 더 크다. 양국의 무력충돌 우려가 지속되면서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어 150달러를 찍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은이 원유 도입 원가 배럴당 85달러를 전제로 물가상승률 3.1%를 전망했는데 한은 과거 분석에 따르면 유가가 10% 올라가면 물가는 0.19~0.25%포인트 상승한다. 단순 계산해보면 원유 도입 원가가 전제치보다 20% 올라 102달러에 달한다면 물가는 3.5~3.6%로 높아지고, 40% 올라 119달러가 된다면 4%를 육박하게 된다. 반면 유가 등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성장률은 떨어지는 쪽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환석 한은 부총재보는 “우크라 사태가 전면전으로 인해 제재가 강하게 나온다면 원자재 수급 불균형이 심화될 것으로 보여 전망보다 물가를 올리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며 “어떤 제재가 나오느냐에 따라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 사태 추이를 지켜본 뒤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싱크탱크인 국립경제사회연구소(NIESR)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경제 성장률이 1%포인트 가까이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통화정책, 물가 상승에 집중해야…금리 더 올려야
이주열 총재는 통화정책은 무엇보다 물가 상승 대응에 집중해야 한다는 데 무게를 실었다. 이 총재는 “잠재 수준의 성장세로 회복한다고 하면 물가가 상당히 중요한 이슈”라며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지속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는 것이 금통위원 다수의 의견”이라고 밝혔다.
즉,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각각 3.0%, 2.5%로 전망되는데 하향 조정되더라도 잠재성장률(2.0%)보다 높다면 물가 상승 우려를 고려해 금리를 조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물가가 공급 측면에서 뿐 아니라 식료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도 2.6%로 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물가 상승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근원물가 전망이 현실화되면 이 역시 2011년(2.6%) 이후 11년 만에 최대 상승이다. 이에 이주열 총재는 연말 기준금리가 연 1.75~2.00%가 될 것이란 시장의 기대가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시장에선 기준금리가 이르면 5월부터 인상이 재개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3월 9일 차기 대통령이 선출되고 문재인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과 논의해 신임 총재를 추천한 후 인사청문회를 거친다면 5월 26일 금통위 전까지 임명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차기 총재 없이도 금리 인상이 가능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추가 금리 인상 시점을 7월에서 5월로 변경하겠다”며 “3월 금통위 전까지 신임 총재 인선 절차 완료에 물리적 시간이 부족할 것으로 보이지만 물가 안정이 시급하고 ‘합의체 의결기구’인 금통위 성격을 고려하면 5월 인상 단행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JP모건도 4~5월 중 추가 인상 가능성을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