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창균 노동경제학회장 "일자리 질 악화..文정부, 40대 고용위축 손 놓았다"
"40대, 인구 감소보다 취업자 수 감소가 더 커
공공 일자리, 60대 이상 취업자 수 끌어올려
평생 학습 체계 구축해 근로 역량 올려야"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정부를 자처했는데,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고용 실적은 좋지 않았다. 상당히 부족한 성적표다. 40대 고용률의 하락은 굉장히 우려스러운 부분인데, 정부는 인구 감소 탓만 하며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손을 놓고 있다.
한국노동경제학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채창균 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4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고용의 내용 측면에서 뚜렷한 회복세”라는 정부의 지난해 고용 시장 진단에 대해 이같이 반박했다. 정부의 진단이 잘못됐다는 의미다. 정부가 공공 일자리로 60세 이상, 청년층에서의 양적 일자리 감소는 방어했지만 핵심 노동 연령층인 40대의 고용률 하락을 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채 학회장은 “2016년 고용률은 60.6%였는데, 2021년엔 60.5%로 고용률은 소폭 떨어졌다”며 “여성, 청년, 고령자는 일자리가 양적으로 늘기는 했지만 남성과 핵심 연령대로 볼 수 있는 40대의 일자리가 많이 줄어서 전체적으로는 별로 증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자리의 질이 악화된 양상이 뚜렷하다고도 분석했다. 채 학회장은 “비정규직 증가가 통계적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
채 학회장은 40대의 고용률이 문 정부 들어 하락한 것에 대해 우려하며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라고 평가했다. 그는 “40대는 전 연령대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고, 일터의 핵심인 연령대이며 가정에서도 핵심적인 가장 역할을 한다”며 “가계 소득이 확 줄고, 소비가 줄고, 기업 생산이 위축돼 고용이 다시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채 학회장은 우리나라 노동 시장에 가장 필요한 과제는 ‘유연 안정성’이라고 꼽았다. 그는 “우리나라 노동 시장에는 유연성도, 안정성도 부족하므로 둘다 끌어올려야 한다”며 현재 유력 대통령 선거 후보들의 노동 시장 공약은 유연성 또는 안정성 한 쪽에만 쏠려 있어, 이 같은 고민이 엿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 관계자들은 경제학자들이 고용 시장에 내재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강조한 것은 고용의 양적 개선, 즉 지난해 전체 취업자 수의 증가였다. 그는 “지난해 연간 고용동향은 지난 12월 취업자 수(2757만명)가 사상 최고치라는 점을 봐야 전체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면서 고용 시장의 상황이 좋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채 학회장을 비롯한 많은 경제학자들은 고용 통계에서 나타나는 우리나라 노동 시장의 현황을 분석하고,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채 학회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동경제학자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일자리, 고령화, 교육 부문에서 대통령 자문 위원회에 참여해왔다.
-일자리의 질이 악화된 원인은 무엇일까.
“일자리의 질이 악화된 영향은 코로나19 뿐 아니라 정부 일자리 사업의 영향도 컸다. 정부의 직접 일자리가 100만명이 넘어가는데, 이들은 비정규직이며 좋은 일자리가 아니다. 물론 인구 문제도 있을 것이다. 고령 인구들은 비정규직을 자발적으로 선호하는 측면도 있다. 젊은 사람들은 시간제를 희망하지 않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희망할 수도 있다. 산업 구조가 바뀐 영향도 있을 것이다. 사회복지, 돌봄 서비스 관련 업종의 일자리가 많이 늘었는데, 이 업종의 일자리 질이 썩 좋지 않다.”
- 정부의 ‘공공 일자리’로 60대 이상 취업자 수가 대폭 늘어나는 효과가 있었다.
“그건 통계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이다. 60세 이상은 고용률이 2016년에 39.5%였는데 2021년에 42.9%로 3%P 이상 늘었다. 30대나 50대도 1%P가 안 되는 정도로 소폭 늘었고, 15~29세 청년층 고용률도 2.5%P 늘었다. 노인 일자리가 늘어난 건 분명히 정부 일자리 사업 영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정부 일자리 사업만이 원인은 아닐 것이고, 고령화에 따라 노인 돌봄 수요가 확대되는 변화도 작용했을 것이다.
-반면, 핵심 노동 연령층인 40대는 오히려 고용 상황이 악화됐다.
“그렇다. 40대는 고용률이 2016년 79.4%에서 2021년 77.3%로 2%P 오히려 감소했다. 40대 고용률 감소를 정부는 주로 인구 감소로 설명하는데, 인구가 줄어든 비율보다 취업자 감소 폭이 크다. 인구 감소만으로는 40대 취업자 수를 설명할 수 없다. 정부 정책이 청년, 고령자에만 집중돼 있었고 핵심 연령대는 일종의 정책 사각지대로 남았다. 정부가 신경을 안 썼다는 말이다. 정책적으로 신경 쓴 부분은 단기 일자리로 양적 감소를 억제했다”
-40대 고용 상황이 악화된 게 왜 문제인가.
“40대는 전 연령대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고, 일터의 핵심인 연령대다. 한 가정에서도 핵심적인 가장 역할을 한다. 40대가 무너지면 타격이 크다. 가계 소득이 확 줄고, 소비가 줄고, 기업 생산이 위축돼 고용이 다시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굉장히 우려스러운 부분인데 정부는 인구 감소 탓만 하면서 정책적으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손을 놓고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노동 시장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교육서비스업 등 대면 서비스 관련 업종이 위축됐고 고용원 있는 자영업이 타격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배달 등 저소득 플랫폼 노동자가 많이 늘었는데, 이들은 법적으로도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아무 대책 없이 이 부문의 근로자가 대폭 늘어나는 것은 사회적 불안 요인이다. 다만 코로나19 확산 첫 해인 2020년과 2021년은 양상이 좀 다르다.”
-2020년과 2021년이 어떻게 다른가.
“특정 산업의 위축, 서비스 판매직 취업자와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의 감소 추세는 지속됐지만 2021년에는 이 같은 양상이 조금 완화되는 듯하다. 가령, 교육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는 2019년 수준은 아니지만 2020년에 비하면 많이 늘어났다.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의 일자리,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수는 감소세가 완화됐다.”
-코로나19 3년차인 올해는 노동 시장이 어떻게 변화할까.
“하반기 이후에는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 기조가 본격화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재택근무의 확산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직장인들이 재택근무를 상당히 원한다. 미국은 직장인들이 재택근무 가능한 일자리를 찾아서 이직하는 게 추세다. 기업 입장에선 좋은 사람을 계속 데리고 있으려면 이런 기조를 받아들여서 수용할 수밖에 없다. 기업도 실보다 득이 많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재택 근무가 가능한 일자리는 그렇지 않은 일자리보다 좋은 일자리일 확률이 높다. 좋은 일자리와 그렇지 않은 일자리의 근무 여건 격차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쉬었음’ 인구는 2만4000명 증가한 239만8000명(3.5%)으로 집계됐다. 쉬었음 인구를 연령대별로 보면 30대가 28만2000명으로, 전년 대비 11.1% 늘어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비경제활동인구 중 구직단념자는 62만8000명으로 전년 대비 2만3000명 늘었다. 이 같은 만성적 실업 인구의 증가세에 대해 채 학회장은 “노동시장에 복귀하고자 할 때 잘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제도로 갖춰져야 한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탈락하는 인구가 많이 늘어났다는 통계도 있다.
“쉬는 기간 동안 새로운 일자리를 위한 교육, 훈련을 받을 수 있으면 괜찮은데 그렇지 못하고 그냥 쉬고만 있으면 노동시장에서 계속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실직 자체는 괜찮다. 다만 노동시장에 복귀하고자 할 때 잘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도로 갖춰져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평생 직업능력 개발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평생학습 참여율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중간 수준이며, 특히 직업 관련해 배우는 참여율은 OECD에서 중하위권이다. 우리 국민들의 역량을 OECD 회원국들과 비교하면 30대까지는 굉장히 높은데, 이후 연령대에서 급속히 역량이 하락한다.”
-평생학습 체계 구축을 통한 국민 역량 하락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조사 결과 평생 학습 체계가 잘 안 갖춰지는 이유는 재직자의 경우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장기 유급 훈련 휴가를 제도적으로 활성화 시켜서, 내가 재직 중이지만 뭔가를 꼭 배워야 하는 상황이면 유급으로 휴가 내서 배울 수 있게 하는 식이다. 비용 부담은 내일배움카드를 활용해야 하는데, 현재 체제는 취지는 좋고 방향도 맞지만 모든 국민이 생애에 필요한 시점에 희망하는 바에 따라 교육받을 수 있는 체계는 아니다. 현재 영세한 민간 훈련 기관에 비해 인프라가 충분한 대학이 양질의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해외에서는 대학이 평생학습을 담당한다.”
-우리나라 노동 시장에 가장 필요한 과제가 무엇인가.
“유연성도, 안정성도 부족하므로 둘다 끌어올려야 한다. 유연 안정성을 제고하는 게 정말 중요한 과제다. 실업급여가 적절히 지원돼 생계 걱정이 없고 실업 기간 중에 적절한 직업 훈련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일자리를 연결시켜주는 고용지원 서비스 잘 발달해 있는 상황이 유연 안정성이 갖춰진 노동 시장이다. 이렇게 되면 근로자들이 실업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고, 그렇게 된다면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도 근로자들의 별다른 저항 없이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유연 안정성이 달성된 나라가 있나.
“덴마크는 유연 안정성이 갖춰진 대표적인 국가다. 근로자들은 해고될 가능성이 높은데, 근로자들 스스로는 고용이 불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덴마크가 고용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한 기업에 근무하는 기간이 다른나라에 비해 짧다. 사회 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기업도 편하게 해고하고, 근로자들도 해고돼도 언제든 역량 다시 키우거나 직장을 새로 알아볼 수 있다.”
-차기 대권 후보들의 노동 공약에 대한 견해는. 이재명 후보는 노동이사제를 약속하고 주4일제 근무에도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등 비교적 친노동 노선을 선포했다. 윤석열 후보는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발언과 최저임금제 비판, 중대재해법 손질 등을 예고하는 친기업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후보는 공약이 구체적으로 나와있는데, 노동시장 격차 해소 관련 다양한 방안이 나와있다. 주로 안정성 제고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유연성 확대에 대한 고민이 안 담겨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윤 후보는 사실 어떤 공식적인 공약이 나온 건 아니어서 본인 발언만 가지고 판단해보면, 유연성 제고 관련 발언을 많이 한다. 안정성을 제고하지 않고는 유연성을 끌어올리는게 어렵다. 안정성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유연성을 끌어올려도 사회적 부작용이 굉장히 클 것이다.”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저출산 해소 정책이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인구 정책을 보다 강조하고 중시하는 접근을 취해야 한다. 원론적으로 생각해보면, 인구 정책을 모든 사회정책, 경제정책보다 위에 두고 어떤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인구 문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평가해서, 그 평가 결과에 따라서 긍정적이면 하고 부정적이면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참여정부 때부터 저출산 고령화를 이야기 했는데 상황은 나빠지기만 한다.”
-우리나라 노동 시장의 중장기적 과제는 무엇일까.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를 해소하는 것이다. 핵심은 중소기업에서도 좋은 일자리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기업과 공정한 거래 질서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의 생산성 제고도 굉장히 중요하다. 또 지금 우리나라의 노사 관계가 대기업 위주로 돼 있다. 노동 조합의 근로자 보호 기능이 소수 대기업 근로자에게만 국한돼 있다. 외연을 어찌 확대할건가 고민해야 겠다. 확대하려면 대기업 근로자들이 양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노조가 10%의 근로자만 대변하고 있는데, 100%를 대변해야 그 안에서의 격차 줄어들 것이다.”
◇채창균 한국노동경제학회장은
채창균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33대 한국노동경제학회장이다. 1976년 창립한 한국노동경제학회는 노동시장과 고용정책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의 모임이다. 대학의 경제학 교수들과 공·사립 연구기관, 기업체 및 정부의 경제학분야 박사학위 소지자 등이 회원이다.
채 연구위원은 서울대 경제학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졸업하고 1993년 현대경제연구원을 거쳐 2001년부터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현재까지 노동경제학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초빙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채 연구위원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일자리, 고령화, 교육 부문에서 대통령 자문 위원회에 참여해 온 대표적인 한국의 노동경제학자다. 단독 저서로는 ‘인구 충격과 한국 평생교육의 새로운 모색’이 있다.
▲1964년 출생 ▲서울대 경제학 학사·석사·박사 ▲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초빙교수 ▲대통령자문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 전문위원 ▲2005년 대통령자문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 전문위원 ▲대통령자문 사람입국일자리위원회 전문위원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청년고용협의회 공익위원(간사) ▲플로리다 국제대학교 초빙교수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 ▲사람투자·인재양성 민·관 전문가 협의회 위원 ▲교육부-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정책 공동TF 위원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평가자문단 위원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 ▲고용노동부 청년고용포럼 위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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