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안철수는 왜 야권 단일화 제안을 철회했을까

박원경 기자 2022. 2. 2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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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이하 호칭 생략)의 앞에는 세 가지 길이 있었다. 대선 완주와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 그리고 민주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 국민의힘 측 사람들 중에는 안철수 후보는 응당 국민의힘 대선후보(이하 호칭 생략)와 단일화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이유는 이랬다. 1월 말 2월 초로 접어들면 여론조사 지지율이 10%를 하회하기 시작한 안철수 후보. 대선을 완주하더라도 당선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선거비용도 보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대선에서 10% 이상 득표할 경우 선거비용의 절반, 15% 이상 득표할 경우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 받음) 때문에 대선 완주는 안철수 후보의 선택지가 아닐 것이라고 국민의힘 측 사람들은 예상했다.

그럼 민주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 (또는 연대) 연대 가능성은? '정권교체'를 출사표로 내걸었던 안철수 후보 입장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와 단일화 할 경우 정치적 명분을 잃게 된다. 민주당 후보로 단일화 돼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안철수 후보는 정치적 명분을 잃었기 때문에 정치 생명을 담보하기 어렵고, 대선에서 패배한다면 그 즉시 정치 생명은 소멸될 수 있다. 때문에 민주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는 안철수 후보의 머릿속에 없을 것이라고 국민의힘 측 사람들은 예상했다.

완주와 민주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를 제거하고 나면 남는 것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뿐이다. 단지 다른 선택지를 소거하고 남은 것으로서의 예측만은 아니었다. '정권교체'라는 가치를 위한 의기투합이기에 국민의힘 후보로 단일화 돼 대선에 승리할 경우, 안철수 후보는 전리품을 챙길 수도 있다. 만약 대선에서 패배하더라도 안 후보는 정권교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정치적 명분을 획득할 수 있다.

국민의힘 측 인사들이 안철수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단일화 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유는 대략 이랬다. 정치적 합리성에 기반을 둔 것으로 크게 흠잡을 게 없는 추론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예상하는 사람들이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한 게 있었다. 협상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라는 것, 그리고 상대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라는 것이다.
 

합리성을 벗어난 결정은 왜 발생하는가

 
돈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증명한다는 프로 스포츠. 하지만, 더 많은 연봉을 포기하고 다른 구단을 선택하는 일이 왕왕 벌어진다. 그리고 이런 일은 소위 등급이 높은 선수에게서 더 많이 벌어진다. 프로야구 투수를 예로 들면, 더 많은 연봉 보다는 얼마나 타선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구장이 투수 친화적인지 등이 더 많은 연봉을 포기하게 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번이 마지막 FA(자유계약신분)인지, FA 기회가 더 있는지에 따라서도 결정은 달라질 수 있다. 이번이 마지막 FA라면 금전적인 면에선 무조건 더 많은 연봉을 주는 구단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이지만, FA 기회가 한 번 더 있다면 좀 적은 연봉을 받더라도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는 구단을 선택해 다음 FA에서 또 한 번 기회를 엿보는 게 더 합리적일 수 있다. 계약 기간 역시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비금전적 변수가 비슷한데도 더 적은 연봉을 제시한 팀을 선택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럴 때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자존심'이다. 지루한 협상 대신 선수의 요구를 첫 협상 자리에서 수용했거나 구단의 협상 태도가 선수의 가치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듯 했다는 설명이 으레 뒤따른다. 구단이 선수의 자존심을 세워줬다는 취지다.
 

협상에서 안철수에게 중요한 것은?

 
안철수 후보의 여론 조사 지지율이 15%에 육박하던 올해 1월 초. 윤석열 후보 캠프 주위에서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한다면 지방선거 공천권 등 모든 것을 양보해야 윤 후보로 단일화가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이런 식의 합의를 통한 단일화는 '후보 매수죄'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고, 때문에 어떤 단일화 든 '공동정부' 내지 '공동가치' 등이 표면적으로는 단일화의 명분으로 제시될 수밖에 없긴 하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를 잘 안다는 사람들은 '안철수를 너무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는 반응을 내놨다. 안철수가 중요시 하는 건 지방선거 공천권이나 국무총리 등 직위가 아닌 다른 가치라는 이야기였는데, 다른 가치는 '자존심'이란 단어로 수렴됐다. 안 후보와의 협상은 협상 과정이 성패를 좌우할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도 있었다. 논의가 진행될 때, 안 후보는 자신이 논의를 주도하거나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는 예상이었는데, 역시 '자존심'과 연결되는 의견들이었다.

앞서 안철수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단일화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 국민의힘 측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하나의 전제를 깔고 있었다. 단일화를 한다면 현재 여론 조사 지지율에서 앞선 후보에게 다른 후보가 단일 후보를 양보해야 한다거나 현재 여론 조사 지지율이 높은 후보가 당연히 단일 후보가 될 것이라는 전제다. 바꿔 말해 안철수 후보는 누가 됐든 단일화를 시도한다면, 후보직을 양보할 것이라는 가정이었다. 이런 암묵적 전제는 '자존심'을 중시하는 안철수 후보와의 협상에서 기본적인 걸림돌이 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부분이 어떻게 발현이 됐는지는 뒤에서 좀 더 살펴보자.
 

안철수, 야권 후보 단일화를 공식 제안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안철수 후보 (측)와 협상을 해 봤다는 사람들은 안 후보의 의중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많이 호소한다. 협상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견을 좁혀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면, 협상을 위해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 생각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기본적인 생각일 수도 있고, 내가 제시하는 선택지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안철수 (측)와 협상을 해 봤다는 사람들은 이 두 가지 모두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잘 진행되는가 싶던 협상이 막판에 난관에 봉착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대선 후보 등록 첫날인 2월 13일. 안철수 후보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제안했다. 단일화의 문을 안 후보가 열었는지, 1,2위 대선 후보의 여론 조사 지지율이 박빙인 상황에서 후보 단일화는 당연히 진행될 것이라는 정치권과 언론의 타성이 단일화를 유도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안 후보의 제안으로 결국 야권 단일화의 문은 공식적으로 열렸다.

안 후보의 제안으로 2가지가 분명해 졌다. 민주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은 소거됐고, 안 후보의 단일화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 확인됐다. 안 후보는 여론 조사를 통한 단일화를 제안하면서 양보를 바란 국민의힘 측 인사들과는 생각이 다름을 분명히 했다. 동등한 위치에서의 단일화 논의 제안, 어쩌면 자존심을 중시하는 안철수의 당연한 결정이었다. 대선 후보인 자신이 제안을 했으니 응답은 대선 후보인 윤석열 후보가 직접 하라는 안 후보의 요구도 '자존심'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안철수 후보의 제안은 본심이 아닐 것이라는 해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해석보다는 '기대'가 더 적절할 지도 모른다) 여론 조사를 통해 단일 후보를 결정하면, 윤석열 후보가 승리했을 때 경쟁에 의한 승리이기 때문에 안철수 후보에게 대한 부채가 없어지게 되는 셈인데, 정말 여론 조사를 통해서 단일 후보를 결정하자고 했겠느냐는 정치적 합리성에 기반을 둔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여론 조사 지지율이 4,5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 안 후보도 진심으로 여론 조사를 통해서 단일 후보를 정하자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당위론적 기대도 혼재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들은 '자존심'을 중시하는 안철수의 개인적 성향을 도외시한 것들이었다.
 

'내각제 개헌 추진'이 전제가 됐던 DJP 연합

 
이후 국민의힘 측에서는 '여론 조사 단일화는 본심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 하에 양보를 위해 어떤 조건을 제시할 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 공천을 보장한다거나 지방선거 공천의 일정 부분을 양보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들이 나오기도 했다. 윤석열 후보 측 관계자는 "윤석열 후보는 여론조사만 빼면 안철수 후보에게 많은 것을 양보 또는 배려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 연합과 같은 단일화 방식도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그런데 국민의힘 측의 DJP 연합 논의는 자리에 대한 이야기만 있을 뿐 DJP 연합 성사의 가장 기본이 되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되거나 간과되는 경우가 많았다. DJP 연합은 결국에는 공수표가 됐지만 김대중과 김종필이 '내각제 개헌' 추진에 합의한 것이 두 세력 연합의 전제였다. 하지만, 국민의힘 측은 이런 공동 가치에 대한 논의는 없이 어떤 자리, 어떤 조건을 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만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안 후보의 자존심을 세워줄 수 있는 방안, 협상을 성공으로 가져갈 수 있는 방안을 지나친 것이다.

이렇게 조건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제기되는 사이, 윤석열-안철수 양 측 간의 공식적인 접촉은 없었다. 어쩌면 단일화 논의에서 공식 접촉은 논의의 마지막 단계에서만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윤석열 후보의 직접 답변을 요구한 안철수 후보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 전개일 수도 있었다. 이 사이 양측의 비공식적 접촉은 진행됐는데, 후보 양측의 위임을 받아서 움직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단일화 필요성을 부정하거나 안 후보의 그 동안의 정치 여정을 폄훼하는 듯한 이야기들이 국민의힘 측에서 나왔다.
 

20일을 공식 협상 실행 일로 판단한 이유

 
국민의힘 측에서 후보 단일화와 관련된 본격적인 움직임, 나아가 큰 틀의 결단은 1차 법정 토론회 하루 전인 어제(20일) 진행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선거에 임박한 시점에 진행되는 법정 토론에서 후보들이 맞붙으면 서로에게 험한 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게 되면 단일화 논의가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안 후보가 후보직을 양보한다면 20일에 결단을 내리고,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제 오전 윤석열 후보가 안철수 후보에게 직접 전화 연락을 했던 건 이런 일련의 기대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는 국민의힘의 예상 또는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안철수 후보는 대선 완주를 선언했다. 일주일 전 야권 후보 단일화 제안을 스스로 거둬들인 것이라서 능동적으로 대선 완주를 선언한 것인지, 대선 완주 선택지를 집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는 사람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지만, 안 후보의 결정으로 야권 후보 단일화는 사실상 어렵게 됐다. 안 후보는 어제 평소에 비해 거친 표현들을 사용하며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음을, 그리고 그것이 결심의 이유 중 하나였음을 숨기지 않았다.
 

안철수 후보 역시 협상의 속성을 잊은 건 아닌가

 
단일화 협상 결렬은 안철수라는 개인의 성향을 국민의힘이 간과했던 게 많은 영향을 준 걸로 보인다. 국민의당은 사실상 '안철수 1인 정당'이라는 점에서 안철수 개인에 대한 파악이 더 필요했는데, 일반론적 접근을 했던 게 협상의 결렬로 이어진 게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협상을 상대가 있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협상 결렬의 책임은 안철수 후보에게도 동등하게 물어야 한다.

다자 대결 여론 조사에서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윤석열 후보의 4분의 1 내지 5분의 1 수준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결선 투표제가 없는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선거는 다자 대결이 현실이다. 그런데 안 후보는 야권 후보 단일화 조사에서 윤 후보에게 우세를 보이기도 하는 가상의 여론 조사 결과를 근거로 여론 조사에 의한 단일화만 고집한 것은 아닐까. 현금이 아닌 어음을 손에 쥐고, 현금보다 더 값을 받아야겠다고 한 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자신이 제안을 했으니 윤석열 후보가 직접 대답을 해야 한다는 요구를 고수한 것도 마찬가지다. 단일화 협상에서 자신이 주도권을 쥐며, 마치 윤 후보의 삼고초려를 강제하겠다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협상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없었던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데, 이것이 안 후보가 원했던 상황 전개와 협상 결과 도출에 걸림돌이 됐을 수도 있다.
 

역사는 단일화 협상 결렬을 어떻게 평가할까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 결렬에 민주당은 표정 관리 중인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하는 것 보다 4자 대결로 가는 것이 윤석열-안철수 후보의 표가 분산돼서 여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이유다. 하지만, 단일화 협상의 결렬이 여당에 유리한 결과를 낼지는 확실치 않다.

그동안 안철수 후보의 여론 조사 지지율은 이재명-윤석열 후보 지지율의 댐과 같아 보였다. 독자적 지지층도 분명 있겠지만, 다른 대선 후보의 지지율의 여집합으로서의 의미도 상당히 있었다. 특히, 윤석열-안철수 후보 지지율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최근의 흐름은 정권 교체를 바라지만 윤 후보에게 실망한 사람들이 안철수 후보에게로 갔다가 다신 윤 후보에게로 돌아오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런 측면에서 윤 후보의 행보에 따라 언제든 지지층의 일부가 안 후보에게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안 후보의 대선 완주는 윤 후보 입장에선 분명한 위협이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 지지율은 이재명 후보 지지율의 여집합으로서의 의미도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는 사람, 그리고 윤석열 후보에 대한 반감은 크지만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안철수 후보에게 가 있을 수도 있다. 진영 간 총 결집이 예상되는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의 완주는 이재명 후보의 입장에서는 지지층 결집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안 후보의 완주 결정에 민주당이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는 이유다.

국민의힘 측은 단일화 논의는 끝날 때 까지는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극단적으로 투표일 하루 전까지도 단일화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사실상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는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향후 역사는 최근의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를 어떻게 평가할까. 그리고 논의에 관여 된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까. 옳고 그름을 떠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결국 대선 결과가 현재를 평가 할 것인데, 대선까지는 이제 16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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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경 기자seagu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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