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층 자녀엔 청년주택 배정 말라" "차별은 안돼"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 박모(28)씨는 작년 초부터 서울 관악구에서 보증금 500만원에 월 임대료 35만원을 내고 20㎡(6평)짜리 방에 산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다닐 때 저소득층에게 주는 국가장학금을 받아 등록금 대부분을 댔고, 기숙사에서만 살았다. 졸업 후 살 곳을 구하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청년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행복주택’ 청약에 지원했지만 연속 2번 떨어졌다. 박씨는 “월세 부담이 크지만 공부를 위해 고시 학원 근처에 집을 구했다”며 “매달 허리띠를 졸라 가며 지낸다”고 했다.
대학생 한모(28)씨는 서울시가 공급하는 역세권 청년주택에 당첨돼 작년 2월부터 서울 신촌에서 혼자 살고 있다. 아버지는 개인 사업을 하고 어머니는 고위 공무원이라 부모 소득이 월 1500만원이 넘는다. 그런데도 그가 청년주택에 당첨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이 무주택자인 데다 아르바이트로 개인 소득이 낮게 잡히기 때문이다. 한씨는 “스스로 중산층이라 생각하지만 부모님 도움 없이 독립하려면 보증금과 월세 부담이 큰 것은 마찬가지라 공공 주택에 들어가고 싶었다”고 했다.
작년 12월 말 서울 마포구의 한 역세권 청년주택은 공실을 채우려 입주자 2명을 모집하는 데 무려 1170명이 몰렸다. 경쟁률이 585대1이었다. 수년째 집값이 폭등한 탓에 전·월세 등 주거비가 함께 치솟으면서, 공공에서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는 청년 임대주택 입주 경쟁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청년 공공주택 제도가 한씨 사례처럼 부모 소득 정도와 무관하게 입주 신청을 할 수 있게 돼 있어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더구나 대선 후보들이 청년 주택 공급을 더 늘리겠다고 밝히고 있어 논란은 더 커질 전망이다.
현재 청년 공공임대는 LH가 전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복주택, 서울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서울시 역세권 청년주택이 대표적이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시세의 60~95% 수준으로 임대료를 매기고 임대보증금의 절반가량을 지원해준다. 만 19~39세 무주택자 청년을 대상으로 한다.
둘 다 청년 본인이 무주택자이고 본인 소득과 자산이 기준 이하라면 청년주택 청약에 지원할 수 있게 돼 있다. 자산은 약 2억5000만원 이하, 월평균 소득은 약 359만원 이하가 기준이다. 부모 포함 다른 가족의 주택 보유 여부나 소득 크기는 따지지 않는다. 젊은 층 사이에선 “주거 불안을 겪는 저소득층을 더 대우해야 한다”는 주장과 “가족 도움을 받을 수 있어도 취업난 등 청년으로서 겪는 어려움은 똑같다”는 반박이 오가고 있다.
청년 공공 주택 공급을 주관하는 국토교통부와 LH, 서울시도 고소득층 가정의 청년들이 입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부모 소득을 따지면 가정 형편과 무관하게 독립하려는 청년들 다수를 역차별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저소득 가정의 청년들에게는 주거급여 등 다른 지원 방안들이 별도로 있다”고 했다.
하지만 ‘수십~수백대1′의 청년주택 입주 경쟁을 뚫어야 하는 저소득 가정의 청년들 불만이 크다. 지난달까지 4번 연속 청년주택 청약에서 떨어진 김모(27)씨는 “세금은 절실한 사람부터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행복주택에 대형 TV 등 고급 가전제품을 들여놓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불공정하지 않느냐” 같은 문제 제기가 계속 올라온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청년층의 독립과 저소득층 지원이 모두 청년주택 정책의 목표로 돼 있는데, 이 중 뭘 더 우선순위에 둘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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