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김분권 씨의 희망이 실현되기를 /이선정

신문국 에디터 2022. 2. 13.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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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분권 개헌투표, 국회서 무산돼 '물거품'
차기 정부, 재추진 통해 '자치분권 2.0' 꽃피워야

기자는 2018년 1월 국제신문 신년기획으로 김분권(가명) 씨 기사를 썼다. 김 씨는 자치경찰제가 정착돼 치안 안정감이 높아지고, 낙동강 부산항 등 강과 바다의 권한·사무를 국가로부터 위임받아 중복투자·규제를 막고 관광·항만 경쟁력을 개선하는데 집중하는 등의 ‘2018년 6월 개헌 국민투표로 실현된 지방분권의 도시 부산시’에 살고 있었다.

지방분권 개헌 투표(2018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투표로 추진)를 목전에 둔 당시 시민의 여망을 담은 예정 기사였다. 이 기사에서 부산시는 더는 지자체(지방자치단체)가 아닌 중앙정부와 수평적 거버넌스를 이루는 강력한 ‘지방정부’였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하부 조직이 아닌, 독립 권한과 재정을 갖춘 자치정부로서 지역민의 삶에 더 깊이 천착할 수 있는 근간을 지방분권 개헌을 통해 부여받았다. 지방분권은 단순히 지방정부에 권한을 더 준다는 차원이 아니라 국토의 12%밖에 안되는 수도권에 절반이 넘는 인구가 몰린, 비정상적인 중앙집권화로 인한 국토불균형, 이로 인한 지방소멸을 막아 대한민국 전체를 살리는 ‘생존’의 문제라는 하나의 시대정신이었다.

하지만 이 기사는 아쉽게도 희망에 그쳤다. 그해 3월 문재인 대통령이 지방분권을 포함한 개헌안을 발의했지만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반대로 5월 국회에서 무산돼 개헌 투표는 시행조차 되지 못했다. 19대 대선 후보 당시 지방분권 개헌에 찬성 입장을 밝혔던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돌연 태도를 바꿔 “헌법에 지방분권이 선언돼 있어 관련 법률만 손보면 지방분권은 완성된다”며 몽니를 부렸다.

제1 야당의 주도적 반대(한국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등이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불참해 의결정족수 미달)로 2018년 지방분권 개헌이 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가 날아갔다. 사실 당시만 해도 지방분권 개헌 시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 한참 늦었다.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했던 프랑스는 2003년 헌법 제1조에 ‘국가조직은 지방분권화돼야 한다’고 명시하는 개정을 통해 지방자치시대를 시작했다. 이웃 일본 역시 2006년 자치입법권 확대를 골자로 한 지방분권개혁추진법을 제도화하고, 세원을 과감하게 지방에 이양하는 등 내용의 ‘삼위일체’ 개혁을 시행하면서 지방분권 실현을 본격화했다. 강력한 자치권을 바탕으로 한물간 조선산업도시에서 문화도시로 재생에 성공한 프랑스 낭트, 항만자치 및 재정분권의 모범 독일, 일본의 활발한 광역연합(현재 출범을 앞둔 부산 울산 경남 메가시티의 모델) 등 선진사례를 취재, 기획시리즈로 보도하면서 기자는 ‘지방분권은 우리가 지체 없이 나아가야 할 길’임을 확신했다.

사실 이런 추세에 맞게 우리나라도 2000년대 초중반부터 지방분권을 통한 국가균형발전을 꾸준히 시도했다. 노무현 정부가 포문을 열었다. 2004년 1월 지방분권특별법을 제정, 분권에 관한 기본 방향과 내용을 정했고, 행정수도 및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 강력한 드라이브로 국가균형발전 시대를 개막했다. 주춤했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지나 문재인 정부가 시작되면서 지방분권·균형발전에 관한 기대는 다시 높아졌다.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개헌을 통해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강제하겠다고 공약해 ‘균형발전 시즌 2’가 전망됐다. 비록 정권 초기 지방분권 개헌이 어이없이 무산됐고,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역시 흐지부지됐지만 그래도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종전 8 대 2에서 7 대 3으로 조정돼 자치재정의 발판이 마련됐고, 특히 32년 만에 전면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지난달 13일 시행돼 부울경 메가시티 등 지방 초광역권이 국가균형발전을 주도하도록 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렇게 어렵게 첫걸음을 뗀 ‘자치분권 2.0’ 시대를 차기 정부는 제대로 키워야 한다. 21세기는 국가 단위가 아닌 광역경제권(도시) 간 경쟁 사회라는 점을 인식하고 지방분권을 시대정신, 그리고 최우선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 때 실패한 지방분권 개헌을 시작으로 해서 말이다. 국제신문이 20대 대선을 한 달 앞두고 균형발전 전략을 후보들에게 물었는데(지난 8, 9일 자 1·4면 등 보도) 전반적으로 지방분권에 관한 후보의 의지가 19대 대선 때보다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아 안타깝다. 그나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분권 개헌 로드맵(여야 합의 가능한 것부터 개헌)과 자치재정(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6 대 4로 조정), 독자적 초광역 단일경제권 형성 등 공약이 연속성 측면에서 점수를 줄 수 있겠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연방제형 지방분권을 위한 ‘독일식 차등 공동세 도입’ 등도 좋은 제안으로 보인다.

차기 정부의 주인공을 가릴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부디 4년 전 허무하게 무너졌던 김분권 씨의 분권 개헌 희망이 차기 정부에서는 실현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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