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훈 인터뷰②] 김영광의 21년 프로생활 원동력 8가지 "아빠 3골 먹었네, 다음엔 2골만 먹어"

김진선 2022. 2. 13. 13:4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포탈코리아] 김진선 기자= <①편에 이어> 그가 21년이란 시간을 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2002년 프로 생활을 시작한 김영광은 올해로 데뷔 21년 차를 맞았다. 전남 드래곤즈를 시작으로 울산현대, 경남FC, 서울 이랜드FC를 거쳐 성남FC의 골문을 지키고 있다. 그는 K리그 통산 556경기를 소화하며 리그 최다 출장 기록 2위에 올라있다. 1위 김병지(706경기)의 뒤를 잇고 있다.

김영광은 지난 1999년 18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 처음 발탁된 뒤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에 뽑힌 그는 주전 수문장으로 제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후 2006 FIFA(국제축구연맹) 독일 월드컵 ,2007년 아시아 국제축구연맹(ACL) 아시안컵, 2010 FIFA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등 굵직한 대회에 대표팀 일원으로 참가했다.

선수로서 20년 넘게 뛴다는 건 도통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지금까지 뛸 수 있게 해준 원동력 8가지를 소개했다.

▶ 가족들의 사랑

골키퍼라는 포지션이 진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힘 빠져서 집에 오면 딸들이 이렇게 말한다. ‘아빠 오늘 3골 먹었네. 괜찮아. 다음에 두 골만 먹으면 돼. 최선을 다했으면 된 거야’ 이 말을 들으면 '그래 다음에 더 안 먹으면 되지' 하며 긍정적이게 생각할 수 있더라. 멘탈적으로 너무 힘이 된다. 내게 두 딸을 보내주신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또 딸들이 내가 축구 하는 걸 되게 자랑스러워한다. 아빠는 축구할 때가 제일 멋있고 제일 자랑스럽다고 말해준다. 그게 오래 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딸들과 와이프한테 조금 더 멋진 아빠, 멋진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 팬들의 적극 지지

오랜 시간 나를 응원해준 팬들이 정말 많다. 오경이 누나와 은진이같은 경우 내가 청소년 대표 시절 때부터 응원해준 20년 지기다. 지금까지도 계속 연락하고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아직도 경기를 꾸준히 보러와 준다. 한 명은 벌써 두 아이의 엄마다. 함께 세월을 보냈다. 둘 다 내가 지금까지 오래 축구하고 있는 걸 너무 자랑스러워한다. 내 팬인 게 자랑스럽다고 말하더라. 그 말이 날 뛰게 하고 그 말에 보답하고 싶어 열심히 한다. 그 외에도 많은 골수 팬들이 있다. 유니폼도 다 갖고 계신 팬분들도 몇 명 있고 다들 너무 감사하다. 진짜 그 힘으로 버틸 수 있었다.

최근에는 ‘지기원정대’라는 유튜브에 출연해 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K리그 발전에 힘을 많이 쓰고 있더라. 굉장히 감사하다. 개인적으로 팬분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아와 주시고 관심을 보내주셔야만 리그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 주변 지인들에게 K리그에 대해 좀 더 많이 홍보를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 초심- 경기를 어떻게든 뛰겠다는 마음 하나

초등학교 4학년 때 공격수로 축구를 시작했었다. 1년 후에 순천에 축구로 유명하다는 학교에 가게 됐다. 갔는데 다들 정말 잘해서 밀리기 시작했다. 공격수에서 미드필더로 또 사이드로 수비까지 안 뛰어본 포지션이 없다. 그러다 아예 공만 줍는 신세까지 밀려났다.
근데 신기한 게 대회 앞두고 골키퍼 두 명이 다쳐 경기에 나설 사람이 없었다. 당시 경기를 어떻게든 뛰고 싶어 내가 무작정 해보겠다 했다. 부모님이 골키퍼 하는 걸 반대하셨는데, 김병지 선수처럼 엄청 유명한 선수가 돼서 꼭 국가대표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 꾸준히 경기에 나섰고, 국가대표도 뽑히고 또 지금까지 골키퍼로 뛰게 됐다.

▶ 정신력

축구 인생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때는 초등학교 시절, 골키퍼를 처음 시작했을 때다. 집에 가면서 거의 매일 울었다. 하루하루가 진짜 지옥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맨날 쌍코피도 터지고 그랬다. 볼 잡는 걸 배운 게 아니라 그냥 서서 공 맞는거만 했다. 너무 아픈데 오기가 생겨서 끝까지 참았다. 그러다보니 코치 선생님도 차차 훈련 방법을 알려주시더라. 아마 정신력을 테스트 해보셨던 거 같다. 테스트 통과하고 엄청 적극적으로 훈련해서 배운지 5~6개월 만에 유소년 상비군에 뽑혔다.

선수 생활해보니 골키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거는 정신력이더라. 그때 쌓은 그 정신력이 지금까지 힘들 때마다 버틸 수 있게 해줬다.

▶ 목표 의식

골키퍼를 시작한 이후 학생 때부터 항상 목표를 정했다. 그리고 그 목표를 하나하나 다 이뤘다. 주전으로 뛰는 것부터 연령별 대표팀, 그리고 국가대표까지 정말 목표를 세운 대로 다 이뤄졌다. 물론 월드컵에서 단 한 경기라도 뛰는 게 내 마지막 목표인데 그거 하나만 하지 못했다. 그게 좀 아쉽다. 하지만 다른 목표는 정말 말하는 대로 다 이뤄졌다. 목표를 이루겠다는 마음 하나가 여기까지 오게 해줬다.

▶ 승부욕

어릴 때부터 지는 걸 너무 싫어했다. 지면 분해서 잠을 못 잤다. 중학교 때부터 주전으로 안 뛴 적이 없다. 선배한테 밀리면 잠 안 자고 가서 더 했다. 그러다 보니까 선배들을 다 제쳤다.
처음 프로팀에 입단해 데뷔전을 할 때까지 거의 잠을 하루에 5시간 정도밖에 못 잤다. 데뷔전 하기까지 한 1년 반이 걸렸다. 그 기간 전혀 쉬지 않았다. 지고싶지 않았고 너무 어렵게 차지한 자리이기에 그거를 지키고자 더 열심히 했다.

▶ 다양한 운동 경험

생각해보면 골키퍼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을 다 겪었다. 초등학교 때 잠깐 머물렀던 지역이 있는데 축구가 없어서 다른 운동을 했었다. 배드민턴을 했는데 순발력이 되게 좋아졌고, 멀리뛰기도 했는데 점프력을 기를 수 있었다. 심지어 투포환도 했었다. 신기하게도 이것들이 다 골키퍼 하는데 연결돼 큰 도움이 됐다.

▶ 좌우명

내 좌우명이 ‘안 되면 될 때까지’, ‘하루하루 후회 없이’ 이 두 가지다. 그거 하나로 지금까지 버텼다. 정말 매 순간 모든 걸 쏟았다.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그 만큼의 열정을 쏟아부을 자신이 없을 만큼 30년 가까이 열심히 달려왔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당장 축구를 그만둔다 해도 후회 없을 것 같다.

사진= 스포탈코리아, 한국프로축구연맹
취재문의 sportal@sportalkorea.co.kr | Copyright ⓒ 스포탈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스포탈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