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자주포 수출' 이집트 대출, 계약도 안 됐고 과정도 엉성하고
설날이었던 지난 1일 저녁, 한화디펜스의 K-9 자주포 이집트 수출 계약 체결 소식이 방사청 보도자료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계약 금액이 2조 원을 넘는 K-9 최대 규모 수출의 쾌거라고 방사청은 밝혔습니다.
한화디펜스의 K-9 이집트 수출과 연계해 이집트 정부는 계약 금액의 80%인 1조 6천억 원을 수출입은행으로부터 빌리기로 했습니다. "돈 꿔주고 무기 수출한다"는 논란이 일자 정부는 "통상적인 수출 기법"이라고 반박했습니다. 통상적으로 대출 낀 수출의 성사는 업체의 수출 계약, 은행의 대출 계약을 모두 마무리한 상태입니다. 옵션, 가격 등을 자동차 딜러와 정하고 할부 기간, 금리 등을 캐피탈과 확정해야 자동차 계약이 완성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반면 K-9 이집트 수출을 위한 수출입은행과 이집트 정부의 대출 계약은 아직 체결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장기간 협상을 벌여야 합니다.
정부는 "사인만 안 했을 뿐 대출 협상이 사실상 끝났기 때문에 수출 계약을 발표했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대출 당사자인 수출입은행 측은 "이집트 정부의 합의 의사는 간접적으로 전달된 이집트 당국자의 말뿐"이라고 확인했습니다. 이집트 정부 당국자가 한화디펜스 측에, 한화디펜스 직원은 수출입은행 직원에게 각각 말로만 대출 조건 동의의 뜻을 전달한 것입니다. 법적 효력 있는 대출 관련 문서는 단 한 장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집트의 누군가 '말'로만 의견 전달했을 뿐…
별다른 진전이 없다가 지난달 대통령의 이집트 순방을 계기로 변화가 생겼습니다. 수출입은행은 대통령 순방 직전 대출 의향서를 이집트에 다시 보냈는데 반응이 온 것입니다. 순방이 끝난 지난달 말 이집트 국방부 당국자가 한화디펜스 측에 "의향서에 동의한다"는 뜻을 구두로 전달했고, 한화디펜스 해외 영업 직원은 수출입은행 담당 팀장에게 이 말을 전화로 전했습니다. 수출입은행 고위 관계자는 "이집트의 의사가 문서로는 오지 않았고, 한화디펜스 직원을 통해 구두로만 간접 전달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수출입은행과 이집트 정부 간 의사소통의 전부입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방사청의 보고를 인용해 "대출 협의는 사실상 모두 끝났고 사인만 남은 단계라서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했는데 온도 차가 큽니다. 수출입은행은 이집트 당국자의 말을 한 다리 건너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 사인만 남은 국면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정부 주장과 달리, 다음 절차는 사인이 아니라 협상입니다. 수출입은행의 대출 실무자는 "이집트 정부가 대출 요청서(Loan Request)를 보내오면 그때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유사 사례들…수출 계약 · 대출 계약 모두 체결돼야
10년 전 대우조선해양과 한국항공우주가 인도네시아에 각각 잠수함, 훈련기를 수출할 때도 비슷했습니다. 수출입은행, 대우조선해양, 한국항공우주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우리 방산업체들은 인도네시아 국방당국과, 수출입은행은 인도네시아 재무당국과 각각 협상했고, 투트랙의 협상이 모두 마무리된 뒤 수출이 성사된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이와 달리 이번 이집트 건은 대출 계약 체결은커녕 제대로 된 협상조차 시작되지 않았는데 업체를 제치고 정부가 나서서 수출 계약 체결을 발표한 것입니다. 방사청 박근영 대변인은 "실물 계약을 하고 뒤이어 대출 협상을 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대출 협상의 순서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대출을 낀 수출의 성사 여부는 대출 계약이 체결된 뒤에 따질 일입니다.
제인스, "한-이집트, 자주포 수출 MOU 체결"
영국의 권위 있는 군사전문매체 제인스(Janes)는 지난 2일 'Egypt signs for K-9 howitzers' 제하의 기사에서 "이집트 국방부 대변인에게 확인했다"며 "이집트가 K-9 자주포의 공동 생산 양해각서(MOU)를 한국과 체결했다"고 보도했습니다. MOU와 계약은 천지 차이입니다.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약속입니다.
모 기관을 통해 해당 기자 측에 MOU라고 쓴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은 비공식적으로 계약(contract)이라고 언급하지만 한국과 이집트는 이번 딜을 MOU라고 표현했다"는 답이 왔습니다. 제인스의 기자는 한화디펜스의 수출 계약은 체결됐지만 수출입은행의 대출 계약은 체결되지 않은 상황을 취재해 MOU라는 결론에 도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대출 계약도 안 됐는데 정부가 다급하게 수출 계약을 발표했는지 의문입니다. 진득하게 기다리다 대출 계약까지 합리적으로 맺고 이집트 자주포 수출 성사를 발표했으면 어땠을까? 기업적, 국가적으로 더 유익했을 것이라고 방산업계 사람들은 입을 모읍니다.
[반론보도] 2022. 2. 12.자 <[취재파일] '자주포 수출' 이집트 대출, 계약도 안 됐고 과정도 엉성하고> 기사 관련
SBS는 2022년 2월 12일 인터넷의 <[취재파일] '자주포 수출' 이집트 대출, 계약도 안 됐고 과정도 엉성하고> 제하의 기사에서 이집트의 K-9 자주포 수출 계약에 대해 "10년 전 대우조선해양과 한국항공우주 해외 수출의 경우 실물 협상과 함께 금융 협상이 마무리된 뒤 수출이 성사된 것으로 평가됐다", "제인스의 기자가 해당 계약을 MOU라고 보도했고, 이는 수출입은행의 대출 계약은 체결되지 않은 상황을 취재해 내린 결론 같다"라고 보도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방위사업청은 "2011년 12월 대우조선해양의 잠수함 수출 계약 건과 한국항공우주산업의 2011년 5월 훈련기 수출 계약 건 모두 수출 계약이 체결되고 상당한 기간 이후 금융 계약이 체결됐으나 두 사례 모두 수출 계약이 체결된 직후에 수출 성사가 발표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 밝혔습니다. 또 방위사업청은 "제인스의 기자가 계약 체결일에 방산군수협력 MOU가 동시에 체결된 것을 모르고 기사를 작성해 오해를 불렀고, 제인스의 해당 기사는 '수출 계약 체결'로 정정됐다"고 전해와 이를 알려드립니다.
이 보도는 서울남부지법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oneway@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FIFA가 금지한 무지개 완장, 영국 방송 해설자가 착용
- 잉글랜드, 이란에 6대 2 완승…양국이 던진 '정치 메시지'
- “죽으란 건가” 불만 고객에 부의 봉투 보낸 롯데제과
- 이번엔 '흙 신발 절임'…중국, 또 식품 위생 논란
- 후크 권진영 대표, 입 열었다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책임지겠다”
- 여성 파일럿의 해고, 과정 들여다보니 '규정 절차 무시'
- 여경 '무릎 팔굽혀펴기' 폐지…채용시험서 모두 정자세로
- 잉글랜드 그릴리시 '지렁이춤', 11살 뇌성마비 팬과 약속 지켰다
- 분주한 유통업계…월드컵 마케팅 '원 톱'은 역시 손흥민
- '놀라운 회복력' 손흥민, 부상 후 19일 만에 헤더 훈련도